2017.08.15 18:05
간만에 재방으로 보는데 정말 재밌습니다. 지적이면서 술자리 사담같은 재밌는 이야기. 정말 저 분들 입담 하나는 대단하다 싶더군요. 사실 방송국 예능 프로이다 보니 물론 멤버들의 사적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만 역사, 문화, 예술, 과학, 경제, 정치 등등 뭔가 '주제'하나를 설정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 참 재밌게 잘 하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매주 하는 책읽기 모임이 저 '알쓸신잡'같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더군요. 물론 제가 그런 분위기를 유도하긴 했습니다만 원칙은 하나였죠 - 어떤 주제로 얘기해도 괜찮지만 사담은 안된다 -
모임을 1년 반 넘게 하면서 깨달은 점 하나는 바로 사람들이 이른바 '지적인 교양'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딱 정해놓고 자, 이 시간만큼은 여러분이 평소 관심이 있었던 역사와 정치 그리고 문화예술이나 사회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규칙을 정하고 자리를 마련했더니 사람들이 호응이 정말 컸던겁니다. 어느 날 한 분이 말씀하시길, 이 모임 너무 좋아요. 세상에 어딜 가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어요. 동감입니다. 정치 이야기는 워낙 민감한터라 제가 적당히 눈치를 봐서 중간에 끊기도 합니다만 일단 제가 중점을 두는 건 회원간에 사적인 이야기를 못하게 잘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 사적인 이야기가 무서운 것이, 서로 나누고 있을 땐 마냥 재밌지만 돌아서면 찝찝함만 남게 된다는 겁니다. 서로에게 말이죠. 그러니 안 하는게 상책.
언젠가 제가 일이 있어서 모임을 불참했을 때 회원들끼리만 서로 모임을 가진적이 있었는데 - 결국 말이 나오더군요. 어느 분 말씀이, 모임 시간 반을 그냥 사적인 수다로 보냈는데 집에 오는 길에 정말 후회되더랍니다. 내가 이 귀한 시간 뭐했나 싶고…이 얘기 듣고 있는데 제가 모임 방향 하나는 그동안 잘 잡았구나 싶었습니다. 역시 이런 문제는 모임 장이 해결을 해야…
어제 간만에 듀게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들 모임도 몇 년이 지났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분위기가 완전 알쓸신잡입니다. 진짜 재밌어요. 역시 어디 나가서는 하기 어려운 얘기들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역시 <알쓸신잡>을 보고 있는데 김영하 작가가 - 소설가답게 - 예술가들의 영감의 의인화인 '뮤즈'에 대해서 재밌는 얘기를 했습니다. 스티븐 킹이 한 말을 인용해서 이른바 뮤즈가 수시로 찾아올 수 있도록 매일 정해진 시간을 두고 글을 써야한다는 얘기였죠(결론은 마치 일터에 나간 직장인들이 일을 하듯 글을 써야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소리) 여하간 김영하 작가나 정재승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이 사람들이 표현력 하나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지루하게 설명조로 풀릴 이야기들을 어쩌면 저렇게 재밌게 할 수 있는지…?
사실 요며칠 무작정 앉아서 글만 쓰다 보니 심리적 안정감이 커서 그건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머릿속에서는 착상이 뒤엉켜서 정리가 안되던 것들이 막상 키보드를 두들겼더니 정리가 되기도 해서 정말 신나기도 했구요.(형체도 잡히지 않았던 상념들이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술술 풀려 나오는건 정말 즐거운 경험이죠)
<스캔들 세계사>의 작가 이주은 선생은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저는 삘! 삘을 받아야 글이 써집니다." 정말 동감을 했는데, 진짜 삘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만났을 때 그게 흥미를 확 당겨야 비로소 글이 써진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가 정말 뮤즈 하나는 제대로 만났구나 싶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로베스피에르나 나폴레옹이나 엘리자베트 황후같은 뮤즈가 있긴 했는데 프리드리히 대왕만큼 다채로운 소재를 제공해준 뮤즈는 없었거든요.(전에는 사실 그들이 뮤즈인지도 몰랐…)
어렸을적에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어른들 말씀이 소설을 쓰려면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린 마음에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했더니 바로 이 뮤즈에 대한 이야기였다는걸 알게됐습니다. 여신이 찾아온다고 생각해보니 정말 재밌네요(물론 그 여신이 언제나 꼭 여자일 필요는 없지만 말입니다 ㅎ)
2017.08.15 18:44
2017.08.15 20:12
예능이니까요. 그런데 예능이니까 저런 얘기들을 재밌게 듣는 것이지 일상에서 저런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죠. 일단 교양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저런 소재나 주제로 일상에서 이야기를 한다는것 자체가 실례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입니다. (어떤 분 얘기로는 남자들 술자리에서 저런 얘기들 꺼내면 몰매 맞을거라고…)
2017.08.15 20:36
2017.08.15 21:09
2017.08.15 22:22
대학시절에는 술잔과 함께 그런 얘기를 밤새 하다가 늦게 일어나 수업은 안 들어가고 해장하러 가면서 부터 또 어제의 이야기가 이어지곤 했었죠. 드라이브를 가서도 얘기하고, 만나면 무슨 책을 봤다면서 벤치에 앉아서 그 얘기를 하고 듣기 싫은 척도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관련된 다른 이야기로 확장하고...
2017.08.15 22:27
2017.08.15 23:01
2017.08.15 23:30
2017.08.16 10:19
일단 아재 한남을 비하의 의미로 쓰신거라는 전제(재 인가 헷갈리네요)하에 '유시민','김영하' 가 '아재 한남'의 범주에 들어간다니 놀랍군요...
2017.08.16 15:03
2017.08.16 15:31
2017.08.15 18:50
2017.08.15 20:13
2017.08.16 00:18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보았던 프로그램이죠, 보면서 참 저 사람들 많이들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아는척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나름 한분야의 전문가들이라고 칭해도 별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들분야의 이야기는 그 분야를 섭렵하지 못한 저 같은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죠.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누가 대화중 아는척을 해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겁니다. 어차피 내가 모르는 전문분야, 1도 모르는 이야기인데 뭘 알아야 상대방이 아는척을 하는지 아니면 전문분야 이야기를 하는지 구분이 가죠.
2017.08.16 00:24
2017.08.16 08:14
알쓸신잡은 안봤지만 10년 넘는 절친들이랑 그렇게 대화를 해요! 만나서 12시간 내내 술 한잔 안마시고 얘기를 해도 끝이 안나요. 개인적인 얘기들도 물론 하지만, 연예인 루머에서 복잡한 윤리 이슈까지, 심리, 정치, 사회, 과학, 문화 주제를 가리지 않고 물흐르듯 대화가 흘러요. 서로 뽐내고 어쩌고 할 필요 없는 사이니까 그저 '함께 소리내어 생각'하며 점들을 잇는 거라 정말 즐거워요.
그게
맞아서 친구인 것 같아요. 이해관계 상관없이 세상 많은 것들 그 자체에 흥미를 가지는 호기심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하는
대화가 사적인 얘기, 특히 남 이야기 위주로만 흘러가면 그게 되게 지루하다고 느끼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 대화를 들으면 저런 게 무슨 상관이고 뭐 그리 재밌나 싶을것 같기도 해요 ㅎㅎㅎ
2017.08.16 12:52
좋은 친구들 두셨네요. 친구란 재산과도 같은거라고 했는데 갈수록 실감하고 있습니다.
정말 친구라는 건 '가치관' 혹은 '성향'이 맞아야 한다는 것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런데 제 경우는 친구들이 아닌 모임 사람들 - 작년 초에 모임 시작하기 전에는 1도 몰랐던 사람들인데 - 알쓸신잡 분위기로 끌고 갈 수 있다는게 넘 놀랍고 기뻤지요.
2017.08.16 13:36
김영하, 정재승, 유시민 세 사람 덕분에 재미있게 봤지만 아재들 잘난 체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싫다고 하는 의견도 이해는 돼요. 실제로 90년대 술자리에서 주워 듣고 푸코니 데리다니 하면서 잘난 체 하는 사람들 있었거든요.
2017.08.16 14:35
2017.08.16 15:33
2017.08.16 16:46
사람이 만나서 교분을 나누는데 일상 대화가 전혀 없을 수는 없죠. 그렇지만 사적 대화라고 해서 그것이 지적인 대화가 아니라는 건 편견입니다. 일상의 경험을 나누면서 충분히 지식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걸요. 이를테면 누가 회사에서 있었던 어려움을 토로하고, 어려움에 공감하고 함께 의논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필요할 경우 관련된 법 조항을 살펴보는 이야기들이, 무의미한 사적 대화일까요?
제 경우만 해도 주변에 친구 무리가 크게 나눠서 넷-다섯 정도 있는데(그 중에 둘은 듀게 파생이네요!) 대부분 오래된 관계고 필요할 경우 서로의 사생활도 공유하지만, 온갖 잡다한 분야에 대한 지적인 토론도, 인생의 어려움과 즐거움도 나누고 있습니다. 양자는 충분히 함께 갈 수 있어요.
알쓸신잡에 대한 것은 그냥 여러모로 한국 대중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티비가 아직도 계몽의 역할을 자임하고, 사람들은 또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직접 생각하고 고민하기보다는 남이 떠먹여주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요. 하긴 그러니 아직도 방송가에 교수 직함단 가짜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거겠죠.
2017.08.16 18:17
사적인 이야기 금지 사항은 우리 멤버들이 작년 초에 독서모임으로 처음 만나기 전까지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겁니다. (아무래도 서로가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연령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 회원들이 30대부터 60대까지 - 아주 다양한터라 그런 것이죠. 대부분 기혼자들이라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시댁 얘기부터 자녀들 키우는 이야기로 끝이 없거든요. (대부분 직업이 학교 선생님들이라서 직장 얘기를 해도 교육에 대한 이야기)
문제는, 당사자들이 막상 얘기를 한 뒤에는 아주 찝찝해 하는 경우를 여러번 봤길래 제가 모임장의 권한으로 사적인 이야기는 될 수 있는 대로 안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게 좋겠구나 하고 그렇게 잡고 있고 결과가 아주 훈훈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운 좋게도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모임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는 서로 취향도 맞아야합니다. 현재 회원이 10명 남짓인데 사실 20명 정도에서 절반이 줄었죠. 처음 시작할 때도 연락하신 분들 중에 반만이라도 남으면 다행이려나 싶었었는데 예상대로 되더군요.
2017.08.16 19:21
예능은 예능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알쓸신잡이 교양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이건 어디까지나 관심있는 교양 분야에 대한 재밌는 얘깃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요. 진지한 역사나 사회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는 구분을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