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안소니 홉킨스와 안젤리나 졸리가 성우을 맡았던 '베오울프'를 다시 보았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몰랐는데, 여왕 역할이 로빈 롸이트였더군요. 언퍼스 (조언자) 역이 존 말코비치인 건 알고 있었지만요. 어쩐지 여왕 얼굴이 낯이 익더라니. 영화에 매혹되어 원작 책을 읽어보려고 시도했었는데, 워낙 길기도 길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니까 이해가 안되는 점이 있어요. 베오울프의 아들인 황금용이, 마을을 습격하면서 언퍼스에게 이렇게 전언을 남깁니다. "아버지의 죄가 찾아왔다고 전해라"


아니 그런데 베오울프가 용과 잔 게 뭐가 잘못이예요? 뭐가 문제라서 잘 살다가 아버지 나라를 찾아와서 사람들을 불태우고 그러죠? 자기가 크는 동안에 아버지가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는 잘못이라면 납득이 가요. 그럼 뭐 황금을 바치라고 하든지. 왜 사람들을 죽이고 그러냔 말이예요. 첨부터 그렌델/황금용의 어머니는 '아이를 만들어달라'고 했을 뿐이잖아요. 혹시 이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중간에 악과 타협한 영웅들에 대한 메타포인가요? 어느 누구나 좀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악마와 타협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결과는 죽기 직전에 찾아오더라, 라는. 


2.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는 지금도 나오고 있죠? 10권까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중간에 보면 영국인 헨리 스밋스의 안내인 알리가 자기 사연을 설명합니다. 자신을 차남이라서 결혼할 돈이 없다. 자기네 집안에서는 장남 하나 결혼시키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대상 호위일도 하고 돈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고요. 


이런 이야기를 작년에 한국에서 들은 일이 있어요. 어머니는 70이 되기 전까지 식당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집안이예요. 자식은 딸 둘에 큰 아들 하나. 아들은 꾸준히 돈이 나오는 직장이 있지만 고소득 직종은 아니고, 서울에서 집을 사는 건 어려운 상황이죠. 딸 둘도 돈을 벌고 있지만 큰 돈을 버는 직장은 아니예요.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면서 차곡차곡 번 돈이 있었는데, 아들은 이걸 갖고 주식으로 크게 불려서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꿈을 꾸었던 거죠. 그렇게 큰 돈을 날렸고, 결국 딸 둘이 모아둔 돈과, 어머니가 밝히지 않고 숨겨놨던 오천만원, 그리고 아들이 모아둔 돈을 합해서 일산에 집을 얻습니다. 자식 셋 다 결혼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우리 넷이서 늙도록 살자고 합의한 거죠. 그리고 일산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이 어려우니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차도 한 대 뽑아요. 


그런데 큰아들 입장에서는, 경기도지만 자기 명의의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하니,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 거죠. 사귀는 여자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여동생 둘과 어머니에게 나가 살라고 요구한다고 해요. "결혼할만한 남성 (marriageable men)"이 된 거죠. 지금 그 어머니는 고민중입니다. 귀한 손주를 보는 대신 자기와 딸들은 길거리로 나가야하나, 아니면 지금같이 넷이서 살면서 큰아들을 늙혀야하나 하구요. 물론 딸 둘은 지금 펄펄 뛰고 있지요. 오빠는 차만 사면 서울-일산 출퇴근 늘 시켜준다고 하더니 결국 지하철 타고 다니게 되더라.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고 일산에 집을 구하자고 한 거 아니냐 하고요. 


평균적으로 남자가 결혼자금을 많이 부담한다는 사실이, 남자가 차별당하는 사회라는 증거일까요? 


3. 하하하님이 올린 '결혼시즌이 돌아왔네요'란 글을 읽고, 캔자스 대학 김창환 교수의 옛날 포스팅이 문득 기억나서 뒤져보았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강혼 (hypogamy)'이란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글이 두 개 나와요. 첫번째에는 '여성의 교육과 소득 향상에 따라 강혼 (하향결혼)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첫번째 포스팅의 결론은 간단해요. 


강혼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려면 학력이 낮은 남성이 학력이 높은 여성을 서포트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함. 현모양처, 엄부자모 모델에서 탈피해 소울메이트로써의 배우자 상이 확립되어야 여성의 교육 강혼이 보편화될 수 있을 것. 


두번째 포스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남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경제적 이득을 더 본다고 주장하고 있죠. 


여성의 교육이 증가하고, 여성의 개인 소득이 증가한 결과, 생활수준의 향상 면에서 가장 크게 혜택을 받은 사람은 여성 자신이 아닌 그 여성과 결혼한 남성임...중략...  남성 입장에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사회현상에 대한 태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특히 고학력 남성은 그 경제적 이득이 큼. 


이 이야기가 우엉차 님의 "남자가 괜찮으면 여자가 본인 명의 아파트만 해가는 게 아니라 남자 명의로도 집 해갑니다"는 말이나 soboo님의 "결혼을 경제적 거래가 아니라 수평적인 동지적 관계로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를 만났어야죠~"라는 말과 많이 다를까요? 


신부쪽에 결혼비용 더 내놓으란 이야기는, 남자쪽에서 강혼(하향결혼)이 아니라 승혼(상향결혼)을 하겠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남자가 승혼 (여자쪽에서는 강혼)을 원한다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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