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을 예정입니다만. 뭐 전체적인 흐름 정도는 짐작 가능할 수 있으니 현명한 판단(?) 부탁드립니다.



1. 


장르물을 제대로 만든다는 거, 그리고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죠.

이 영화가 속한 장르인 케이퍼물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머리 속엔 케이퍼물이라고 하면 해피 엔딩/배드 엔딩 두 루트로 나뉘어서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다 공식이 입력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에 한참 거리를 두고 관찰 모드로 관람을 하게 되고 그래서 어지간히 잘 만든 경우라고 해도 큰 감흥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모범적으로 케이퍼물의 기본 공식을 따라가는 와중에도 관객들을 주인공에게 몰입시키는 재주를 보여줍니다.

전 정말 클라이막스의 '크게 한 탕' 씬에서 이렇게 주인공에 몰입해서 긴장하며 보게 되는 케이퍼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몰입도의 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주인공과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관객들이 이입할만하게 만들어 보여주는 것.

사실 마지막의 그 큰 한 탕이란 게 발각된다고 해도 사망은 커녕 감옥도 안 갈 만한 범죄이고 총 칼 폭력 뭐 하나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주인공의 상황에 이입이 되니 긴장감이란 것이 아주 강력하게 밀려옵니다. 


물론 각본과 연출도 아주 좋구요. 주인공이 컨닝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부분부터 그 사업이 확장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한 번 사업을 접었다가 원치 않았던 큰 일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드는 과정들이 모두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데 그 내용들이 굉장히 장르 공식 그대로이면서도 공식따라 흘러간다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그 일은... 엄밀히 따지면 구멍이 많은 작전이고 감독도 그걸 의식했는지 좀 무리수다 싶은 부분은 은근슬쩍 '양해 좀 부탁요. ㅋㅋ' 같은 느낌으로 넘기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중요한 장면들은 아주 깔끔하면서도 적절한 연출로 충분한 긴장감을 부여해줍니다.

사실 엔딩 직전 한 인물의 변화는 좀 과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영화가 의도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무리짓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암튼 두말할 것 없이 잘 만든 영화이고, 정말 재밌습니다.

관심 있으셨는데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여건 되면 꼭 보세요. 이번 방학을 맞아 본 수십편 중의 영화들 중 재미로는 거의 최고였습니다.



+ '실화에 바탕을 두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홍보를 했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그 '실화'라는 게 바로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사건이고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아주 짧게 언급이 됩니다. 허허허 자랑스러워라...


++ 주인공 역할 배우가 너무 멋지고 매력적이에요. 연기도 괜찮았지만 일단 화면 속에서 뭘 입고 어떻게 나와도 모델같이 폼이 나길래 모델 출신인가 하고 찾아봤더니 정말 모델 출신이네요. 그럴 줄 알았지. ㅋㅋ 그냥 딱 봐도 모델이 아니라면 심한 인생의 낭비겠다는 생각이 드는 비주얼이라서. =ㅅ=;;



2.

넷플릭스 영화인 캠걸스... 는 예고편이 거의 스포일러 파티 수준이라 링크하지 않겠습니다. 관심 생기시면 그냥 보세요. ㅋㅋ

그리고 원제는 '걸스'가 빠진 그냥 '캠'이네요. 뭔가 좀 저렴해진 느낌이긴 합니다만,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러합니다.


야시시 성인bj로 벌어 먹고 사는 어여쁜 젊은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어떻게든 순위를 높이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별 짓을 다 해가며 발버둥치던 어느 날, 자신의 계정을 누군가에게 빼앗겨 접근도 못 하게 되었는데 방송을 보니 그 누군가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심지어 방송을 하는 장소도 자기 집이네요. 분명히 내 집엔 나 혼자 있고 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데 저기 있는 나는 내 집에서 방송을 하고 있으며 방에 참여해서 채팅 메시지를 보내보니 답장까지 해주네요. 미치겠습니다... 라는 이야기지요.


전래동화에까지 흔히 등장할만큼 유서 깊은 설정에다가 돈에 눈이 멀어 별 짓을 다 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을 비벼 넣고 거기에 호러 톤을 입혀 만들어진 물건인데.

의외로 완성도가 꽤 좋습니다. 비판을 핑계로 자꾸만 등장하는 야한 장면들(...)과 함께 빠르게 달리는 이야기가 상당히 긴장감이 있고 또 몇몇 장면들은 꽤 그럴싸하게 섬찟하구요.

말이 되고 이치에 맞게 마무리하기가 불가능한 설정이다 보니 중간중간 거칠게 대충 넘겨 버리는 부분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속도감에 묻혀 그렇게 거슬리지 않습니다.

다만... 상당히 교훈적인 우화로 잘 마무리되는가 싶었던 이야기가 끝 장면 하나로 좀 괴상해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네요. 

그래도 심심풀이 땅콩으로 고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서 꽤 훌륭했으니 만족합니다.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거부감이 들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만 거슬리지 않는다면 꽤 짭짤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호러 소품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주인공은 왜 그리 1위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어요.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이미 부족함 없이 아주 잘 살고 있던데 말입니다(...)



3.

iptv에 중국 영화 '침묵의 목격자'와 그것의 한국 리메이크 '침묵'이 모두 무료이길래 한 번에 몰아서 봤습니다. 원작 먼저요.

간단한 이야기와 설정을 소개하자면, 추리물입니다. 홀아비 재벌 아저씨가 키우는 젊은 딸이 아빠의 애인을 차로 치어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아요. 재벌 아저씨는 딸을 구하기 위해 실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노리고 쫓고 있는 유능하고 열정 넘치는 검사가 그냥 잡아 죽여 버릴 것 같은 기세로 압박을 해 오네요. 그리고 재판 과정은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먼저 원작인 '침묵의 목격자'는 뭐랄까.

되게 얄팍하고 요란법석이지만 시간은 참 잘 가는 준수한 오락물입니다.

이야기 하나를 보여준 후에 시간을 되감아서 같은 상황을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반전의 재미를 전달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애초에 반전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느낌이 노골적이라 굉장히 인공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매번 중요한 장면마다 무슨 헐리웃 블럭버스터 영화 185번의 예고편 테마 같은 음악을 틀어대면서 카메라를 빙글빙글 돌리는 식이라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어쨌거나 심심할 틈 없이 몰아치는데다가 마지막 반전의 아이디어가 나름 재밌어서 기분 좋게 속아줄만한 수준은 충분히 됩니다.


그리고 정지우 감독의 '침묵'은... 엄...

일단 구성을 싹 다 바꿔버렸네요. 반전이 주는 재미에 충실히 작동하던 원작의 '시점 바꿔 시간 돌리기' 형식을 깔끔하게 내다버리고 그냥 시간 순서대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에게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연들과 동기, 감정들을 부여해 놨어요.

또 원작에서 좀 무리수로 보였던 내용들을 대부분 수정, 삭제하고 말이 되는 이야기로 수선을 해 놓았지요.

덕택에 원작보다는 훨씬 말이 되는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가운데 나름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고, 원작에선 걍 흥미진진 수수께끼로만 존재했던 살인 사건이 나름 불행한 비극의 위치를 부여받습니다. 그러다보니 결말이 주는 정서적 효과도 원작보다는 훨씬 낫구요.


근데 재미가 없습니다. orz


일단 원작의 이야기란 게 워낙 공허한 이야기이다 보니 거기에다가 나름 디테일을 붙이고 감정을 불어 넣고 해도 여전히 공허합니다. 괜히 배우들이 헛고생하는 느낌.

게다가 추가된 이야기들이 딱히 재밌지도 않으면서 전체적 이야기 안에서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류준열의 캐릭터는 도대체 왜 만들어 넣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쓸 데 없이 계속 튀어나오고 박신혜는 뭐... 원작 변호사의 깜짝쇼를 자연스럽고 말이 되게 만들기 위해 캐릭터를 뜯어 고친 것 같은데 역시나 별로입니다. 오히려 원작 변호사보다 더 이해불가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드라마에 헛된 공을 들이는 와중에 원작이 집착했던 '반전의 재미'가 대부분 날아가 버렸다는 겁니다.

원작의 히트 포인트였던 최종 반전과 그 트릭은 거의 원작 그대로 살아 있지만 그게 리메이크의 진지한 드라마랑 잘 안 맞아요. 드라마와 반전이 서로의 재미를 깎아 먹는 느낌.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궁서체로 진지하던 드라마인데 막판에 황당한 반전이 있네?'라는 애매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흥행 멸망한 게 충분히 이해가 가요.


뭐 그래도 덕택에 이수경이라는 배우를 알게 되어 '용순' 같은 재밌는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으니 그렇게 험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냥 리메이크 계획 자체가 판단 착오였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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