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듀나님께서 리뷰에다 적어 놓으신 정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당연히 듀나님은 '이건 스포일러도 아니다. 왜냐면 어쩌고저쩌고' 라고 설명을 하셨고 그 설명을 보면 틀린 얘기 하나도 없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게 제작진의 핵뻘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미리 밝혀둡니다. 이 영화를 추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보실 맘이 있으시다면 이 글도 듀나님 리뷰도 읽지 않으시는 게 훠어어얼씬 좋아요. 아마 그래도 스스로 스포일러를 눈치채실 확률이 대단히 높긴 하겠지만요(...)



 - 때는 1992년. 이유를 알 수 없게 자기 집에서 머리를 다친채 기절해 있던 김윤진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곧 지하실에서 살려달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주방에서 부엌칼을 집어 들고 달려가 보니 남편이 칼에 찔려 죽어 있어요.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울고 있던 아들은 갑자기 정체 불명의 무언가에게 붙들려 어두컴컴한 문짝 뒤로 사라집니다. 김윤진은 결국 남편과 (실종된) 아들을 살해했다는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데, 25년 후인 2017년에 건강상의 문제로 교도소를 나와 가택 연금상태로 예전 그 집에 돌아와 혼자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쌩뚱맞게 동네 젊은 신부가 찾아와 '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라고 묻고서는 당시 사건을 캐고 다니기 시작하고, 혼자 집에 갇혀 있는 주인공에겐... 뭐 당연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겠죠?



 - 옛날에 유행하던 숫자 퀴즈들 있잖습니까. 아무 숫자나 막 적혀 있는 듯한 종이를 던져주고 여기에 무슨 규칙 내지는 공식이 있으니 찾아보라던. 대략 그런 모양새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한 시간 사십분 남짓 되는 영화인데 런닝 타임이 삼십분 남을 때까지 계속 그냥 퀴즈를 던져요. 이건 뭐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게? 저 존재는 무엇이고 이 집에 나타나는 저 놈들은 정체가 무엇이고 왜 저러는 거게? 그러다 종료 전 삼십분 지점에서 이 모든 떡밥들을 하나로 묶어 해결해주는 하나의 공식이 드러나고, "아하 그렇구나!"라는 깨달음 속에 지나간 떡밥들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주는 거죠.

 보통 이런 퀴즈에서 해답이 되는 공식은 심플할 수록 좋죠. 이렇게 간단한 걸 내가 몰랐다니! 라며 더 감탄하게 해주니까요. 이 영화의 '반전'도 그렇습니다. 굉장히 심플하고 다들 익히 알고 있는 그것인데 각본상으로 훼이크를 잘 쳐 놔서 영화의 내용 전개를 따라가면서 바로 그것을 떠올리기가 그리 쉽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꽤 잘 쓰인, 효과적인 반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반전에 놀랐을 사람은 아마 열 명 중 한 두 명이 될까 말까... 일 거라고 봐요. 왜냐면 제작진이 굉장히 혁신적인(!) 방법으로 그 반전을 스스로 관객들에게 까발려주거든요. 그리고 듀나님께서 리뷰에서 당당하게 언급하고 계신 그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ㅋㅋㅋㅋ


 그래서 망했어요. 말하자면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를 알고 보는 식스센스 같은 건데, 문제는 식스센스는 반전을 잊고 봐도 꽤 근사한 드라마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이 '시간 위의 집'의 드라마는 거기에 비교하는 게 민망한 수준인지라... 그래서 더더욱 반전이 주는 재미가 중요한 건데 그걸... 제작진들이 스스로... orz



 - 나름 관객들을 주인공들에 몰입시키려고 감독이 애를 쓴 흔적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냥 감독이나 작가가 그런 쪽으로는 역량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식스센스나 이거나 비슷하게 부모 자식간의 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고 '시간 위의 집' 쪽이 그런 부분에 대해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보여주는데도 결과물이 그래요. 꼭 80~90년대 신파극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 같은 느낌이고 그래서 별다른 감동 없이 축축 늘어지고 지루합니다. 김윤진이 노인 분장까지 해가며 나름 연기 투혼(?)을 보여주지만 애초에 각본이 별로인 데다가 김윤진 외의 다른 배우들도 별로 보탬이 안 되구요. 다 보고 나면 좀 안타깝습니다. 주인공들의 드라마만 설득력 있게 보여졌어도 반전을 눈치 채든 말든 재밌게 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 근데 뭐 그럼 되게 재미 없냐... 고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이어지는 호러 분위기의 긴장감이 나쁘지 않고 또 종종 튀어나오는 '놀랬지!' 장면들도 꽤 잘 먹혔어요 저에겐. 진상을 이미 알고 보는 기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소소한 부분들까지 전부 다 짐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미스테리도 아예 실종되진 않았구요. 다 보고 나서 정리해보면 초반에 주어진 떡밥들도 굉장히 성실 & 깔끔하게 다 회수해내구요. 다시 말하지만 '진상'을 너무 일찍 눈치 채 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름 머리 굴리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어차피 드라마에 재능이 없는 감독이었다면 차라리 그 쪽을 쳐내버리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막판의 신파 파트를 좀 덜 끈적거리게 만들면서 분량도 조절해서 런닝 타임을 10분 정도 줄여서 내놓았으면 훨씬 보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만. 이미 다 만들어져 나온지 2년된 영화를 두고 이런 생각 해봐야 뭐하겠습니까.



 - 결론을 내자면, 망작까진 아닙니다. 뻣뻣하고 공감 안 되는 드라마, 별 재미 없는 캐릭터들과 극도로 인공적인 냄새를 풀풀 풍기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미스테리에는 나름 힘이 있고 호러 효과도 없지 않으며 준비한 반전도 깔끔하고 효과적이에요. 듀나님도 이래저래 비판하는 쪽으로 리뷰를 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두 개 반은 주셨고 제 생각에도 딱 그 정도는 되는 영화입니다. 이래저래 모자라지만 장점도 분명히 있는.

 하지만 애초에 반전을 눈치채지 못하기가 어려운 처지의 영화이고 워낙 그 반전에 대한 의존도가 큰 물건이다 보니...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뭐 여기까지 글 읽으신 김에 '내가 그 반전을 눈치를 채나 못 채나' 확인해보는 재미(?)로 한 번 보셔도 괜찮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냥 인터넷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을 짤로 만들어진 스토리 요약글이나 찾아서 한 번 쭉 스크롤해보고 나서 잊어버려도 크게 아쉽지는 않을 영화에요.



 - 근데... 이렇게 '떡밥 살포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도 디테일한 떡밥들은 정말 깔끔하게 잘 관리해내지만 큰 틀에서는 되게 근본적이면서 해결이 불가능한 구멍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말을 보고 나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주인공 김윤진씨는 저엉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거죠. 어떻게 그렇게 딱 적절하게... 음... 설명은 생략. ㅋㅋ

 암튼 막판에 캐릭터 본인의 입을 통해 '이게 다 내 운명이었나 싶어...' 라는 대사를 뱉는 장면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작가의 양심 고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김윤진의 원맨쇼 영화이지만 그 다음으로 비중 큰 역할로 옥택연이 나오는데, 내용상 30대 중반은 되어야 하는 역할인데 너무 젊어 보이더군요. 역할이 신부인데 당연히 견습 사제 같은 상황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촬영 당시 실제 나이가 30이었는데 거의 20대 초반처럼 보여서. ㅋㅋ 역시 한국 아이돌의 얼굴이란!




 - 그러고보니 '나름 스포일러' 경고를 적어 놓고도 그 얘긴 꺼내지도 않고 소감을 끝내 버렸네요. 이러면 안 되죠. 그래서 아래에 그 스포일러를 공개할 테니 지금이라도 피하고 싶으신 분은 피해주세요.


















 아아니 도대체... "알고 보니 이게 다 시간 여행이었다!!!!" 라는 게 반전인 영화의 제목을 '시간 위의 집'이라고 지어 놓는 센스는 무엇입니까. ㅋㅋㅋ 원작 영화의 영어 제목을 보니 한국 제목과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좀 뉘앙스가 다르더라구요. 한국 제목 쪽이 훨씬 노골적입니다. 도대체 제목 누가 지은 겁니까. 당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제목을 보고 당연히 시간여행물일 거라고 생각하며 재생을 누른 저같은 사람들은 진짜... 하하.

 어이가 없어서 개봉 당시 보도자료나 인터뷰들도 찾아 읽어봤는데 그나마 다행히도 이게 시간 여행 이야기라는 걸 스스로 밝히지는 않았더라구요.

 시사회에서 '도대체 제목은 누가 지은 겁니까?' 같은 질문을 받지 않았다는 게 신기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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