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해방구)

2019.07.21 16:20

안유미 조회 수:1126


 1.이번의 프듀 모임은 매우 재밌었어요. 사실 이 모임 저 모임 해보려다가 나가리되서 프듀모임으로 바꾼 건데 결과적으론 제일 나았어요. 생파를 하려다 프듀모임을 하게 된 건데...이건 오늘의 주제가 아니니 다음에 써볼께요. 어쨌든 프듀 막방 모임은 뭐랄까...어렸을 때 갔던 교회 수련회를 보는 듯 했죠.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 수련회 청년부의 청년들은 뭐랄까? 평소엔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없거든요. 늘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다니고 욕설이나 나쁜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어린 나를 보면 늘 인자한 웃음을 띄며 먼저 아는 척 해오곤 했어요. 인자하다고 해봐야 실제론 10~20살 차이가량이었지만요.


 한데 어느날...교회에서 수련회를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한번 어정어정 따라갔어요.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편하게 놀고 올 수 있겠지 싶어서요. 



 2.그 예상은 절반만 맞았어요. 낮에는 역시 늘 보던, 그 교회 청년부의 형과 누나들이었죠. 문제는 밤이었어요. 밤이 되자...갑자기 다들 모여서 무슨 기도회 같은 걸 시작했는데 갑자기 장르가 호러로 바뀌고 관람가는 전체관람가에서 19금으로 바뀌어버렸어요.


 그들이 기원전의 샤머니즘 의식처럼 다들 소리지르고 울고 신을 외치면서 서로를 끌어안고 날뛰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여기 남자 녀석들, 여자랑 스킨쉽은 하고 싶은데 그럴 건덕지가 없어서 여기 와서 이러는 것 같은걸? 하나님은 그냥 핑계고.'



 3.왜냐면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어쨌든 그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게 갑자기 세 명의 청년부 청년들이 다가왔어요. 그들의 얼굴에 지금까지 그들의 얼굴에서 본적 없던 표정이 드리워져 있는 걸 보고 '이거 좋지 않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도 왠지 알 것 같았어요. 왜냐면 사실 나는 교회를 그냥 재미삼아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아무리 기도 시간에 기도를 하는 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들 역시 내가 교회를 재미삼아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겠죠. 이윽고 그들이 나를 삼면으로 둘러쌌어요. 그리고 그중 한명이 내게 말했어요.


 '은성아, 오늘 형이랑 약속해 줄 수 있겠니?'



 4.휴.


 

 5.그야 20년후의 내가 저런 질문을 받았다면 '너희들의 신을 믿어 달라고 말하려는 거지? 내가 하나 가르쳐 주지. 나야말로 신이다.'라고 받아쳤겠지만...그때의 나는 20년 전의 나였죠. 슬프게도요. 그래서 그냥 듣고 있었어요. '오늘 진짜로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꾸나.'라는...제안인지 협박인지 잘 모를 말을요. 말의 내용은 제안이었지만 표정은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걸 거절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야 신경질적이고 독설가인 듀게여러분들은 저런 말을 쉽게 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글쎄요. 그때 그 분위기에서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을 봤다면 꺼지라는 말이 쉽게 안나왔을걸요.



 6.뭔가 그 자리를 모면할 만한 대답을 하려는데...분위기가 한단계 더 달아오르면서 누군가가 방언을 하기 시작했어요. 솔직이 방언이 아니라 겉멋든 아마추어 랩퍼가 랩하는 것 같았지만, 그걸 지적하는 건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요. 여기서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하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갔을 때 얘네들이 떡볶이 하나라도 사 주겠지...하는 계산으로요.


 계속 구석에 있고 싶었지만 그들은 곧 나를 무리의 중심으로 이끌고 갔어요. 그들이 울면서 기도하는 걸 열심히 따라할 수밖에 없었어요. 


 프듀 모임에 대해 쓰려고 한건데 어째 옛날 얘기로 빌드업만 이만큼 했네요; 이 수련회 얘기는 나중에 써보고 프듀 모임 얘기를 해보죠.



 7.프듀 모임에 오는 여자들이라면 전에 쓴 것처럼 '꽁냥거리기 좋은'사람들이예요. 평소에 프듀 모임을 할 때처럼 유쾌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점점 그때 그 교회 수련회와 느낌이 비슷해져 갔어요. 수련회라기보다는 부흥회라고 해야겠군요. 목사는 안준영이었고요.


 하긴 그럴 만한 구성이긴 했어요. 맨 처음에 강민희가 발표되자마자 초식동물인줄 알았던 한 여자가 흉폭성을 드러냈어요. 무매력 무존재감인 저런 놈이 어떻게 10위안에 들 수 있냐고요. 강민희가 저기 있다는 건 원래 저기 '있어야 할' 누군가가 밀려난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9위가 차준호로 발표되자 다른 사람들도 술렁대기 시작했어요. 절대 안 될줄 알았던 2명이 됐다는 건 그녀들이 원하는 연습생이 밀려났을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8.그리고 이한결이 발표되었는데...나는 기쁨의 환성을 지르려다가 재빨리 급브레이크를 밟았어요. 내가 기쁨의 환성을 지르려는 것보다 더 빨리 여자들이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거든요.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목숨이 조금 위험할 수 있을 분위기라서 카톡으로 그 자리에 없던 이한결 팬과 기쁨을 나누는 걸로 만족했어요. 그리고 그들을 더욱 빡치게 만드는 조승연의 합격이 기다리고 있었죠.


 사실 나는 그 여자들을 좋아하지만, 그녀들을 좋아하는 것과 그들의 분노를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건 별개니까요. 그들이 날것의 분노를 드러내는 걸 특등석에서 구경하니, 호텔 방값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어요. 아, 다만 그녀들의 분노가 나를 향하지는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같이 화내는 척은 열심히 했어요. '안준영 죽어.'라는 말을 디씨가 아니라 현실에서 들으니 매우 새롭더라고요.


 한승우가 발표됐을 때가 그녀들의 분노가 정점에 달한 순간이었어요. '데뷔조 좆창났어. 못 품어.' '씨발 데뷔조 처 망했어.'같은...여기에 쓸 수 있는 욕설과 여기에 쓸 수 없는 욕설들이 난무했어요.



 9.그리고 마지막 발표때 더한 분노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다음엔 체념과 슬픔이었어요. '내가 진혁이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어.'라거나 '나같은 년 때문에 민규가 떨어졌어.'라고 울먹거리는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야 그들의 슬픔을 유발한 건 내가 아니지만, 그 슬픔을 구경거리 삼고 있다는 것 자체가요.



 10.사실, 내가 날것의 것들을 구경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두개뿐이었어요. 물욕과 정욕뿐이죠. 어쨌든 화류계에서 만나거나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돈에 대한 욕망과 이성에 대한 욕망은 다들 금방 드러내니까요. 


 생각해 보면,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들을 보는 건 힘들어요. 애초에 성인이라면 그런 감정들은 스스로 컨트롤해서 드러내지 않기도 하고...슬픔이나 분노라는 건 '욕망'이 아니니까요. 욕망이란 건 트리거 없이도 계속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이지만 감정은 다르거든요. 그 감정을 유발하고 극한까지 몰고 가기 위해서는 트리거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구 발산한다는 건 또 다른 일이고요. 이번에 프듀 모임을 해보고 그런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11.왜냐하면 나는 이제 해방구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닌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해방구를 찾기 위해 위에 쓴 교회청년들처럼 헤매거나, 레이어를 위에 한겹 깔 필요도 위장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이제 원하는 건 해방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해방구를 마련해 주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이제 나 혼자를 위한 해방구는 어떻게든 되는 편이예요. 문제는, 남들에게 내가 해방구를 제공해 줄 수 있느냐죠. 그건 꽤나 힘들어요. 혼자 노는 것보다 훨씬 돈도 들겠지만 드리블도 잘 해야 하니까요. 아직은 그냥 생각만 어렴풋이 하는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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