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썰렁하니 예고편이라도 슬쩍.)


- 스포일러랄 게 없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스포일러 없어요.

 

 

- 전 괴상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멀쩡하게 잘 만들었지만 무난한 이야기보단 좀 덜컹거리고 못 만든 티가 나도 튀거나 괴상한 이야기에 더 끌리고 더 호감을 느끼죠.

그리고 호흡이 긴 이야기를 잘 못 견딥니다. 그래서 하나의 줄거리가 몇 시즌에 걸쳐 이어지는 드라마들은 어지간하면 일단 패스. 그래서 드라마보단 영화를 좋아하고 드라마의 경우엔 에피소드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하나씩 완결되는 형식을 좋아하구요.

 

이 드라마를 발견하게된 건 그냥 우연이었네요.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 이런저런 섹션을 돌아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재생했는데 그게 위의 조건에 모두 맞는 물건이었던 거죠. 고맙습니다 넷플릭스. 기특하구나 나의 잉여로움이여.

 

 

-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태국 드라마입니다. 편당 40분 남짓에 전체 13화로 되어 있고 시즌 1이라고 적혀는 있는데 2가 나올지 안 나올진 모르구요.

 매 에피소드마다 이야기의 패턴은 거의 일정하게 반복이 됩니다평범하고 멀쩡해 보이는’ 학교에 평범하고 멀쩡하지만 마음 속에 살짝 비틀어진 욕망을 가진 평범한 학생(대놓고 나쁜 놈도 종종 나옵니다)이 등장하고 그 옆에 짜라잔하고 '난노'라는 미모의 전학생이 나타나서 오만가지 방법으로 그 학생의 어두컴컴한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거죠그리고 그 결말은 당연히 파국.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난노라는 여고생 캐릭터가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고 매번 배경이 학교이긴 하지만 에피소드별로 연결되는 부분은 그것 뿐입니다. 1화의 난노와 2화의 난노가 같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또 배경이 되는 학교와 등장인물들은 매번 바뀌어요.

 

 뭐 태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했네 뭐네 그러던데 별 의미 없는 얘깁니다. 걍 홍보하려고 과장하는 걸 거에요. 보다보면 저얼대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이야기들이 태반이고 나머지 이야기들도 생각해보면 그냥 다 보편적인 소재들이거든요. 예쁜 여학생들 성추행하는 변태 교사, 페이스북 좋아요에 목숨 걸고 가짜 연애 하는 사람들, 연애질이나 성적으로 인한 친구끼리의 질투, 영재가 되고픈 학생들간의 과열 경쟁, 빈부 격차 등등등.

 그냥 십대들과 학교를 소재로한 환상특급 내지는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시면 대충 맞습니다.

 

 

- 에피소드식으로 이어지는 어두컴컴하고 좀 특이한 환타지물. 이라는 것 외에 이 드라마의 차별화 포인트가 있다면... 제목 그대로 난노라는 캐릭터입니다. 별 고민 없이 대충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정말로 작가 편할 대로 아무렇게나 막 나가는 캐릭터(데우스! 엑스!! 마키...) 인데 그게 매력이에요.

 매번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전학생처럼 등장해서 친구들을 돕거나, 아님 나쁜 놈들에게 피해를 당하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엄청 부자연스러운(...) ‘깔깔깔깔깔깔깔!!!!’ 하는 웃음과 함께 본색을 드러내며 주인공들을 파멸로 이끄는데... 이게 굉장히 바보 멍청이 같으면서도 매력이 있습니다. ㅋㅋㅋ

 

중요한 포인트는 이 양반이 자기가 파멸로 이끄는 상대방이 진짜 악당인지 아닌지 같은 건 신경도 안 쓴다는 거에요. 처음 몇 에피소드에선 분명히 악인을 벌하는 것 같았는데, 몇 회 지나고 나면 주로 무난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옆에서 흔들어서 나쁜 일에 빠뜨려 놓고 인생을 망쳐 놓고서 깔깔거리는 게 일입니다. 가끔은 착한 일도 하구요. 그냥... 뭐랄까. 작가들이 '대충 이런 이야기'라는 식으로 틀을 잡아 놓은 후 막히는 부분들은 다 이 캐릭터로 땜빵해버린 느낌?

 이렇게 보니 이야기들의 완성도는 사실 좀 구린 감이 있는데, 반면에 캐릭터와 이야기가 예측 불허가 되면서 완성도 대비 좀 더 재밌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차피 이 난노는 현실 세계의 캐릭터도 아니고 그 정체나 내면이 이야기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그러니 이해가 안 돼도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예쁩... (쿨럭;)

 

 

- 오해하실까봐 강조하는데, 그렇게 잘 만든 드라마도 아니고 이야기가 되게 괜찮고 참신한 것도 아닙니다. 앤솔로지 형식 드라마가 다 그렇듯이 에피소드별로 퀄리티가 튀는데, 그 중에서 괜찮은 에피소드 기준으로 따져도 그냥 평범하게 괜찮은 정도. 나쁜 에피소드는 저엉말 별로구요.

 

하지만 평소에 별로 접할 일이 없는 태국 컨텐츠라는 거.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아주 깔끔하고 내용 측면에서도 한국 드라마들보다 딱히 모자랄 게 없으니 이런 환상특급, 기묘한 이야기류의 드라마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시도해보실만 합니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특징인데. 초반 에피소드가 비교적 강도가 세고 소재도 선정적입니다. 사람들 낚아서 계속 보게 만들려면 뭐. ㅋㅋㅋ 계속 보다 보면 아, 1, 2화가 정말 작정한 낚시였구나... 싶어요. 전체적으론 다크한 톤인 게 맞지만 보다 보면 중간중간 별 자극 없이 무난 건전 발랄한 에피소드도 있고 나름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있고 그렇습니다. 앤솔로지니까요.

 

 

- 태국어를 전혀 모르니 배우들 연기에 대해선 뭐라 하기가 좀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난노 역할의 배우는... 연기를 딱히 잘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ㅋㅋㅋㅋ 하지만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난노들은 애초에 내면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기계 장치의 신 같은 역할이라 크게 거슬리진 않구요. 최대한 괴상하고 기이해 보여야 하는 캐릭터니까 또 그런 연기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마치 터미네이터 1편의 주지사님 캐스팅 같은 느낌이랄까.

 


 - 위에도 말했듯이 구린 에피소드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구려서. 혹시라도 관심 생기신 분들의 시간 절약을 위해 개인적으로 폭탄을 골라내 드리자면 9, 10, 11 에피소드는 최악입니다. 3도 별로였구요. 2, 4, 6, 7, 8이 그래도 괜찮았네요. 어차피 이어지는 줄거리 같은 건 없는 시리즈니까 호기심 생기신 분들은 저것들 먼저 보세요. 마지막 에피소드는 안 됩니다. 나름 시즌 피날레라고 전체 시즌 스포일러가 한 방에 몰아서 나오거든요. ㅋㅋㅋ


 ...하지만 안 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주 명작 같은 거 아니에요. ㅋㅋ 그래도 왠지 시즌 2는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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