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제는 펜션이란 걸 검색해 봤어요. 최근 다닌 술집에서 한 여자애가 요즘 펜션에 곧잘 놀러간다는 말을 듣고요. 이제 휴가철도 끝이지만.


 사실은, 펜션이란 게 대체 얼마나 구린곳일지가 궁금해서 검색해 본 건데 놀랐어요. 그야 사진빨이 없진 않겠지만 좋은 펜션은 정말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몇 시간을 들여 지방에 지어진 펜션들을 이리저리 검색해 봤어요. 



 2.그러고 나니 성공한 연예인들이 부모님들에게 펜션을 지어주곤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펜션 사업이란 건 카페와 함께 꽤 가오잡을 수 있는 사업 같아 보여서요. 객실 수는 좀 적게 만드는 대신 하이엔드급으로 뽑아놓으면 객실마다 돈도 많이 받을 수 있을테고 관리도 비교적 쉬워 보이더군요. 3~5개 정도의 객실만 놓고 운영하면 자영업으로 괜찮을 것 같았어요.



 3.나는 미래를 구상하는 걸(걱정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예요. 10~30년후의 미래요. 왜냐고요? 10년 후의 미래는 10년 후면 현재가 되니까요. 여러분도 알겠지만,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어느새 현재가 되어버린 미래가 좆되고 말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나이가 먹어버리고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비참한 나의 미래도 구상해보곤 하죠.


 하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이리저리 구상해 보니 펜션 사업은 역시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나는 도시형 인간이고 벌레를 싫어하니까요. 그리고 펜션 사업을 하면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하이엔드급으로 펜션을 꾸며놔봤자 투숙객 놈들이 고장내거나 비싼 물품을 가져가 버릴 게 뻔하잖아요. 역시 나중에 자영업을 하게 되면 카페뿐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카페를 차리면 식기나 포크를 훔쳐가는 놈들만 잡아 족치면 되니까요. 펜션보다는 간단하잖아요?


 그야 내겐 자영업이 성미에 안 맞아요. 하지만 완벽하게 외톨이 노인이 되고 만 나는 자영업이라도 해야 할거거든요. 그래야 사람들이 내가 머무는 곳으로 올거니까요. 노인이 되어버린 내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건 사람들에게 매우 추하고 역겨운 일일거니까요. 그런 걸 왜 벌써부터 걱정하냐고요? 그냥 버릇이예요.



 4.휴.



 5.가끔 술을 마시고 잘 때, 꿈속에서 학창 시절로 돌아가기도 해요. 그건 꿈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재생에 가깝겠지만요. 장래를 대비하던 시절의 꿈을 꿀 때마다 몇가지 무서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이거예요. 그 장래가 이미 와버렸다는 거죠.



 6.그래요...내가 그토록 대비하고 준비하던 '장래'라는 것이 와버린 거예요. 어렸을 때 걱정하던 '장래'가 5년 남은 것도 아니고 1년 남은 것도 아니고...바로 지금이라는 거죠. 어렸던 때의 내가 걱정하던 '장래'를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장래가 와 보니 할게 없어요. 그냥 새로운 여자를 보고 익숙한 음식을 먹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예요. 열심히 장래를 준비한 것 치고는 별거 없는 인생이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당연한 미래인 것 같기도 해요. 원래 어떤 시기를 준비한다는 건 그 시기가 왔을 때 '까먹을'것들을 마련해 둔다는 거잖아요? 그동안 마련해 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까먹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이게 소위 말하는 '장래'인거죠. 



 7.장래를 대비하기 위해 하루에 손과 두상을 열장씩 그리고 바이올린 연습을 할 때도 있었죠. 그러나 내겐 이제 대비할 미래도 없어요. 언젠가 올 장래를 준비하며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야만 하죠. 그리고 오늘의 삶의 질은 까먹을 것들을 얼마나 많이 마련해 놨느냐에 달렸고요. 그야 까먹는 속도보다 불어나는 속도가 빠르도록 조절은 해야 하지만요.


 

 8.이제 30년정도 지나면 아마 나는 과거를 추억하며 살게 되겠죠. 그 점을 생각해 보면 오늘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기는 지금뿐인 것 같기도 해요.


 왜냐면 어렸을 때는 장래를 대비하느라 오늘을 못 살았고, 노인이 되면 오늘을 살기엔 너무나 추한 몸과 마음을 갖게 됐을 거니 오늘을 살지 못할 거거든요. 노인이 되면 카페나 하나 차려놓고 과거를 추억하며 살겠죠. 오늘을 살 수 있는 지금...살 수 있는 만큼 살아 둬야 해요. 뭔가 미친짓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둬야 하고요.



 9.하지만 역시...노인이 될 때까지 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나에게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게도 말이죠. 전에 썼듯이 나는 매우 끔찍한 놈이 될 수 있거든요. 지금이야 행복하게 사니까 얼마든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하다못해 무해한 사람이라도 될 수 있죠.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동안은 남을 해칠 마음이 안 드니까요.


 그런데 노인이 된다는 건 매우 불행한 일이란 말이죠. 내가 노인이 되어버린다면 뭔 짓을 저질르고 다닐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카페 같은 거라도 하나 차려서 나를 그곳에 가둬야겠죠.


 생각해 보니까 커피를 내리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니...아마 카페를 차린다면 캔커피를 놓고 팔 것 같네요. 아니...그때쯤 되면 AI커피머신이 1급 바리스타보다 커피를 더 잘 만들려나요. AI커피머신에 대화 기능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외로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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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니 미래를 걱정하는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멈출 수가 없는 것에 가깝겠네요. 


 하아...아무리 출근 시간을 기다려도 9시가 안오네요. 그래서 일기나 하나 더 썼어요. 아참, 전에 망고빙수를 어디서 파냐고 물어본 댓글이 있었죠. 남산에 있는 신라라운지예요. 한데 사실상 내겐 오늘이 망고빙수를 올해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날이예요. 망고빙수는 8월31일까지 파는데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도저히 갈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평일 저녁도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견딜 수 있을만큼 많으면 좋겠지만 견딜 수 없을만큼 많아서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올해 망고빙수를 먹을 수 있는 남은 시간은 사실상 오늘...8월 30일 오후뿐이라는 거죠. 이따 10시쯤에 잘 건데 그러면 망고빙수를 먹을 수 있는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기상할 수 있겠네요. 지금 번개를 모집해 봤자 무리겠지만...어쨌든 같이 갈 사람은 쪽지주세요. 빙수는 반띵하고 샴페인은 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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