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터넷에서는 '이건 맞고 저건 틀렸다'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라고 말하는 게 쉬워요. 왜냐면 당장 겪고 있지 않는 일이면 쿨하게 흑백으로 나눌 수 있으니까요. 흑백론자인 척 하는 게 폼도 나고요.


 하지만 세상일이란 건 어떠한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니라 농도와 밀도가 문제란 말이죠. 어떤 상태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상태가 얼마나 심하느냐가 문제인 거예요. 대부분의 사례에는요.



 2.노키즈존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시끄러운 놈은 시끄럽다고 말하죠. 맞는 말이예요. 한데 문제는 이거예요. 어른이 시끄럽게 굴면 반쯤 죽여 놓으면 되거든요. 그야 '반쯤 죽여 놓는'단계까지 가본 적은 거의 없어요. 어른들은 욕하거나 소리질러주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상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알아서 조용해지니까요. 


 이렇게 글로 읽으면 뭔가 나빠 보이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나도 떠드는 놈들에게 소리지를 때는 참다 참다 참다가 하거든요. 왜냐면 그런 건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암묵적인 합의를 얻어야만 하는 거니까요.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제는 더이상 못 참겠다...누군가가 나서서 저 놈들을 입다물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먹을 단계까지는 가야만 그러는 거죠. 그래서 사실, 내가 나서기 전에 인내력을 잃은 다른 사람이 먼저 나서는 경우가 많죠.



 3.그러나 아이들은 무적이예요. 위에 썼듯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합의할 만한 지점이 있거든요. 상대가 어른이라면 누군가 나서서 저 놈을 욕해줬으면 하는 지점, 누군가 나서서 쥐어박아 줬으면 하는 지점, 누군가 나서서 반쯤 죽여 줬으면 하는 지점은 분명히 있단 말이죠. 하지만 아이가 소란스럽기 굴기 시작하면 한계점이 없어요. 아무리 사람들을 열받게 하는 지점을 넘어서도 그 지점에 맞는 제재를 가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이가 소란스럽게 굴기 시작하면 그냥 참던가, 아니면 그냥 그 장소를 떠나던가 둘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는 거죠. 사람들 말마따나 아이만큼 시끄러운어른도 물론 있지만, 제재할 수 없는 사람과 제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요.



 4.휴.



 5.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예요. 전에 썼듯이 내가 호프집보다 50배 비싼 술집을 가는 이유는 50배의 즐거움을 사러 가는 게 아니거든요. 50배의 조용함을 사러 가는 거죠. 나는 아이들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싫어하니까요. 그리고 일반적인 식당이나 카페에 갔을 때 시끄러운 아이가 있다면 그냥 그 자리를 포기하고 나가면 되죠. 겨울왕국 같은 영화는 애들이 절대로 안올 시간에 보러 가면 되는거고요. 


 그러나 아이들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은 기분이 매우 좆같을거란 말이죠. 사회인이라면 일하는 시간이 대개 일원화되어 있고 식사나 차,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 또한 거기서 거기예요. 그건 그들이 아이들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시간을 뺄 수 없다는 뜻이고요. 


 그러니까 노키즈존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건 아니예요. 나야 사람들의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피해다니듯이, 아이들이 올 만한 시간이나 장소를 피해다니는 걸 계속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필요할걸요. 노키즈존을 차별이나 혐오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해요.



 6.어쨌든 그래요. 뭔가 노키즈존에 대한 얘기가 됐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농도와 밀도예요. 사람들은 내가 페미니스트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거든요. 그게 뭐든지 너무 심한 건 싫을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돈도 그래요. 백억원 가진 사람이 백억원만큼 나대는 건 재밌고 귀여워요. 한데 10억 가진 놈이 50억 가진 것처럼 나대거나 백억 가진 놈이 2백억만큼 나대는 건 가소로운 일이죠. 마찬가지로 너무 나대는 페미니스트나 너무 나대는 환경보호론자, 너무 나대는 채식주의자 같은 놈들은 싫은 거죠. 왜냐면 그런 놈들은 적절한 주장이나 표현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대는 걸 원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돈이 제일 나은거예요. 돈이란 건 그걸 가진 사람이 얼마만큼 나대도 되는지, 확실한 숫자로 판정해 주니까요. 사람들은 내가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예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7.휴...한숨 자고 일어나니 일요일 오후네요. 요즘 연말모임을 하다보니 역시 '진행자'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어요. 나는 사람들을 모아놓는 것까지는 잘 하지만 모아놓고 무언가를 '진행하는'건 정말 못하거든요. 


 그야 이미 친한사람들끼리 모이면 알아서 놀면 되니 굳이 무언가를 진행할 필요가 없긴 해요. 한데 딱히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을 때마다 할 말이 없어서 난감해지곤 하죠. 그럴 때마다 '나에겐 진행자의 자질이 없구나...'라고 느끼곤 하는 요즘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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