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짧은 감상

2020.05.12 03:25

보들이 조회 수:723

뒤로 갈수록 연결성이 투박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수십년의 격변의 시대를 담아낸 점을 생각하면 캐릭터와 서사가 비교적 균형을 잘 이룬 것 같았어요.

장면 장면의 연출이 참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첸 카이거 감독이 이제는 당 선전 영화나 찍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지만, 장국영에 의한 장국영을 위한, 좀 더 정확히는 청데이라는 캐릭터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데이의 아역배우들 또한 연기도 잘하고 외모도 어찌나 맞춤인지.. 캐릭터 완성에 장국영만을 언급하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강렬하더라구요.

사실 모든 아역배우들이 훌륭했던 것 같네요.


두지(장국영 아역)가 특정 대사를 계속 잘못 말하는 건,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을 흉내내며 살아야 하는 그 현실적인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결국 정체성의 갈등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흔들리는 정체성을 향해 '나는 사내다'를 스스로 되뇌어 왔던 것 아닐지..

시투(장풍의 아역)가 담뱃대로 두지의 입을 쑤셔서 피가 날 때 그건 꼭 처녀성을 잃은 순간의 모습 같은, 혹은 시투에 의해 비로소 두지가 '계집'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장면이었어요. 

그 뒤에 이어진 '나는 계집으로 태어나...'라는 대사를 제대로 해내는 모습은, 전혀 슬픈 얼굴도 아니었고 오히려 환희에 찬 얼굴처럼 보였으니까요.


샤루(장풍의)와 주샨(공리) 사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고, 두지는 장대인에게 강간 당하던 날 아기를 줍게 되고..

꼭 샤루와 데이의 자녀 같은 모습으로 후계자가 될 것 같았지만, 아기는 자라서 홍위병이 되어 세대 갈등의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슬픈 대목이었어요.


샤루는 매력있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던지는 데이나 주샨을 위해 한 번도 완전한 희생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한국영화에도 좋은 작품이 많아졌는데, 이런 영화를 보면 또 갈 길이 멀구나 싶기도 합니다.

시대와 예술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장대하고 또 울림 있게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31
123108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5] catgotmy 2023.05.03 245
123107 [영화바낭] 맷 데이먼, 톰 행크스가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 궁금해요(레인메이커 짧은 후기) [11] 쏘맥 2023.05.03 387
123106 프레임드 #418 [4] Lunagazer 2023.05.03 113
123105 El phantasm del convento/El vampire negro daviddain 2023.05.03 108
123104 어쩌다 마주친, 그대 왜냐하면 2023.05.03 300
123103 남자와 여자 군대와 여고 [3] catgotmy 2023.05.03 429
123102 점심 장사는 이득일까? [2] 여은성 2023.05.03 637
123101 이번 주의 책은.. [4] thoma 2023.05.02 352
123100 에피소드 #35 [2] Lunagazer 2023.05.02 95
123099 프레임드 #417 [4] Lunagazer 2023.05.02 113
123098 [넷플릭스바낭] 소문만큼 망작은 아닌 것 같... '클로버필드 패러독스' 잡담입니다 [8] 로이배티 2023.05.02 399
123097 (영화 바낭) 문폴을 재밌게 봤어요. [1] 왜냐하면 2023.05.02 269
123096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어린이날에 재밌는 행사를 하네요! (어린이 두신 가족분들! :D) [2] 젤리야 2023.05.02 304
123095 칸트에 대해 catgotmy 2023.05.02 159
123094 디스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1] Sonny 2023.05.02 533
123093 [핵바낭] 그냥 옛날 노래들 몇 곡을 동반한 일상 바낭 [15] 로이배티 2023.05.01 420
123092 아이고~ 아조시~ 1절만 하세요~ 1절만~ [2] ND 2023.05.01 729
123091 [넷플릭스] '종이달'. [4] S.S.S. 2023.05.01 583
123090 아르헨티나 영화 La bestia debe morir 4분 보다가 daviddain 2023.05.01 164
123089 프레임드 #416 [4] Lunagazer 2023.05.01 10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