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3 21:25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아서 그런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제법 살 만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아름다운 것을 대면했을 때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지한 듯, 영원 같은 순간들,
그런 순간들을 계속 느끼며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는 아름다운 시, 음악, 그림, 영화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으니
얼마나 고맙고 좋은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어요.
인간은 기껏 발견해 놓은 아름다운 것들을 계속 아름답게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계속 새로운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요.
똑같은 아름다움이 되풀이될 때 인간은 금방 무덤덤해지죠.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황홀함도 겨우 며칠, 길어야 몇 주 지속돼요.
매일같이 반복해서 들으면 그 음악에 대한 느낌이 점점 무뎌지죠.
(멜로디나 구성이 단순하면 더 빨리 질리겠죠. 물론 한동안 안 듣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들으면
잠깐 아름다움이 되살아나기는 하겠지만...)
어떤 아름다운 것이든 되풀이될 때 조금씩 그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우리는 또 다른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힘들여 찾아봐야 해요. 이건 대상이 갖는 문제가 아니라 수용자인 인간이 갖는 문제라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뭔가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줄 아름다운 것을 찾고 싶은데 한 번 찾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되풀이해서 계속 보는데 항상 아름다워보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익숙해진 대상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물론 인간은 음악이나 그림과는 달리 변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사랑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죠.
(밀고 당기고 일부러 거리를 유지하고 띄엄띄엄 만나는 것도 낯섦을 통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한 가지 방법이겠죠.)
하지만 결국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위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애써 그 대상에게서 거리를 유지해서 띄엄띄엄 보거나 듣는 것, 그게 안 되는 사람은 질릴 때까지 줄창 보고 듣다가
새로운 아름다운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죠.
어느 쪽을 선택하든 힘든 건 마찬가지예요. 보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조금씩 아껴 보는 것도 힘들 테고
한때 아름다웠던 대상이 아무 느낌이 없어져서 계속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도 힘들 거예요.
결국 문제는 수용자가 대상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노력, 혹은 새로이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그만둘 때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별로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아름다운 걸 계속 찾아내는 것도 힘든 일이고,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힘든 일이에요.
다행히 컴퓨터와 인터넷의 도움, 무엇보다 구글신의 도움으로 찾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찾기 위해서는 키워드를 알아야 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느끼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것을 깊이 알아 나가야 해요.
에너지도 마찬가지예요.
이미 이런저런 일로 지쳐 있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병자에게 열심히 운동하면 몸이 튼튼해진다는 말만큼이나 멀고 아득한 말이겠죠.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널려 있지만 그것을 찾아서 느끼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한 번 아름다운 것을 찾았다고 그것이 계속 아름답게 느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 슬퍼요.
사랑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아름다워보이려면 수용자가 그 사람에게서 계속 새로운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거나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야 하겠죠.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어제와 비슷한 해질녘 풍경이 어느새 오늘은 조금 시들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슬프고, 며칠 전 온 마음을 사로잡았던 음악이 어느 새 조금 평범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슬퍼요.
가을이 되니 뭔가 아름다운 걸 보고 싶고 듣고 싶어서 여기 저기 찾아봤는데 이상하게 제 마음을 움직이는 걸 발견하지 못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글이 나오네요.
다행히 오늘은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찾았어요. 아름다운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 인터넷 라디오!!!
https://www.jazzradio.com/vocallegends
그래서 결국 오늘의 결론은 인터넷 라디오 청취인가요... ^^
(최소한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찾기 위해서는 인터넷 집단지성을 이용해야 하는 걸까요??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그런 SNS가 도움이 될까요??)
2017.09.03 21:47
2017.09.03 22:13
2017.09.03 22:20
말씀하신 언니네이발관의 노래 찾아서 듣고 있어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선택하게 되는 길은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 아니면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
(저는 아무래도 쾌락주의자 쪽인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쾌락주의자가 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해서
힘들고 슬프다는 것이 본문의 한 줄 요약인 것 같기도 하네요. ^^)
2017.09.03 22:34
1.아련한 글이네요.
2.
2017.09.03 22:57
벚꽃이 살랑살랑 흔들리니 예쁘네요.
저도 만만치 않게 슬픈 노래들이 많은 앨범 하나 ^^
Billie Holiday - <Lady in Satin>
2017.09.03 23:25
재즈 전문이군요 피츠제럴드의 헬로 달리가 나오네요.
다 꿈이죠 꿈에서도 좋아하니까 꿈이 생시가 되겠습니다.
아름다운걸 찾다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니까 아름다운거죠.
2017.09.03 23:53
이제 가을이고 밤이니까 센티멘탈한 앨범으로 채워보죠. ^^
Ella Fitzgerald - <Intimate Ella>
2017.09.04 01:38
반대로 익숙하기에 아름다운 것들도 있지 않나요? 저는 동네 개천변에서 산책을 즐겨 하는데, 수천 번은 더 걸었을 그 길과 그 물가가 갈 때마다, 볼 때마다 아름다워서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음악도 새로운 음악보다는 사춘기 때 감수성 폭발하던 시절 듣던 음악들을 여전히 즐겨 듣습니다. 그때의 감성이 살아나는 듯도 하면서 변함없이 저에게 감동을 주네요... 그냥 뭔가에 쉽게 질리지 않는 제 성격과 새로운 것에 다소간은 무뎌진 나이듦(ㅠㅜ...) 때문이려나요... underground님도 익숙한 아름다움도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2017.09.04 02:14
생각해 보니 저는 이제까지 두 번 본 영화도 거의 없고 두 번 읽은 소설은 딱 한 권이네요. ^^
좋아하는 음악도 열심히 듣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안 듣게 되는 것 같고...
똑같은 걸 되풀이하는 걸 안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운동처럼 반복 훈련을 통해 발전하는 게
느껴지는 일은 상당히 오랫동안 꾸준히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해요.
아름다움을 찾는 방법도 성격 따라 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역시 인생을 즐기려면 문학이나 예술보다는 스포츠/운동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
John Coltrane Quartet - <Ballads>
2017.09.06 12:53
저는 세탁기를 쓸 때마다 매번 감탄합니다. 어쩜 이렇게 고마운 기계가 있지.. 하구요. (다른 기계엔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데 유독 세탁기의 아름다움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네요. ㅋ)
2017.09.06 18:11
기계에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생각 중인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네요. ^^
(몹시 생각해 내고 싶은데... 나중에 생각 나면 추가할게요.)
에디뜨 피아프는 가슴 속에 불덩이가 있었던 사람 같아요. 프랑스의 여자 김광석이라고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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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생각났는데 예전에 학부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잠깐 배웠는데 그때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던 것 같아요. ^^ (써놓고 보니 아름답다고 느꼈던 게 아니고 그냥 좋았던 거네요.)
댓글 달리기 힘든 글을 썼다고 느낄 때 불러내는 노래 친구 ^^
Ella Fitzgerald - I'm Glad There I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