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30 12:00
사실 십여년 전에 (아마도 제 백수 시절...;) 만화방에서 단행본으로 두 권 정도 봤던 것 같은데.
그러다 취업을 한 건지 아님 돈이 없어 만화방도 못 가게 되었던 건지 암튼 완결을 못 보고 중단했던 것을 얼마 전에 괜히 생각이 나길래 찾아보고, 4권짜리로 나와 있는 걸 구입해서 한 번에 다 읽었습니다.
작가의 개성이 살아 있는 옛날 만화 정도의 느낌으로 시작하더니 중반엔 갑자기 청소년 교양 모험 만화 분위기로 바뀌었다가 막판엔 스펙타클한 신화로 마무리되는 희한한 작품입니다만. 관련 정보를 찾아 보니 중간의 청소년 교양 모험 파트는 후일에 추가된 것이었군요. 왠지 납득이.
암튼 여러모로 '원조'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생수'가 거의 이 작품의 스핀오프 수준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된 게 나름 쇼킹했구요.
(완성도만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기생수가 낫다고 생각은 하는데 핵심적인 부분들에서 워낙 대놓고 데빌맨을 참고한 게 역력해서. 기생수 작가가 감추기는 커녕 일부러 티를 못 내서 안달하며 만화를 그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ㅋㅋ)
베르세르크, 에반게리온도 이 만화가 없었으면 나오지 못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흡사한 구석들이 보이면서 심지어 클램프의 'X' 같은 만화까지 떠오를 지경이니 후대에 미친 영향이 장난이 아닌 수준인 것 같더라구요.
후반의 전개는 생각도 안 해 놓고 그냥 막 던지는 식으로 시작해서 이렇게 마무리를 지은 거라는데 이게 편집자의 탁월한 능력인지 나가이 고의 재능인지는 몰라도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막판에 나름 큰 반전이 있는데 잘 뒤져 보면 앞 뒤 안 맞는 구석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대충 큰 틀에선 아귀가 맞아 떨어지거든요. ㅋㅋㅋ
동시에 막 나가는 잔혹 & 성적인 묘사들도 참.
여러모로 일본 망가계의 막장극들은 죄다 전설적인 선배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데츠카 오사무도 그렇고 나가이 고도 그렇구요.
암튼 에피소드별로 퀄리티도 들쭉날쭉하고. 또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여성 캐릭터 묘사라든가 여러모로 모두에게 추천할만한 물건은 아닙니다만.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일본 만화계의 역사와 흐름 같은 걸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교양(?) 필수 도서 정도는 되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족.
덤으로 결말도 결말이지만 막판 주인공(이 살던 친구네) 집이 습격 당하는 부분은 정말 요즘 기준으로 봐도 후덜덜하더군요.
작가가 좀 미친 상태였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ㅋㅋ
+ 아무 관련 지식도 관심도 없는 분들을 위해 살짝만 부연하자면 '마징가' 시리즈와 '큐티 하니'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입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막 나가는 설정과 표현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어찌보면 한국 학부모들에게 일본 만화가 욕을 먹는 요소들의 상징이자 선구자 같은 존재(...)
2017.10.30 15:10
2017.10.30 15:15
창작 시기를 생각하면 에반게리온도 귀여워 보일 정도로 절망적인 게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것 같습니다.
정말 마지막 장면은... 허허허.
2017.10.30 16:30
보기 시작했는데 만화 보던 시기가 생각이 나네요.
그땐 만화 한장을 금방 안넘기고 한참을 봤는데.
이 만화 구미에 딱 맞아요 그림을 한참 보고 있습니다.
2017.10.30 20:43
만화 대사가 참 옛스럽네요.
2017.10.31 09:38
네 옛날 만화 티가 팍팍 나죠. ㅋㅋ 거의 고풍스러운 느낌.
2017.10.30 20:01
잔혹&성은 거의 일본의 전통 문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더라구요.
바퀴벌레랑 싸우는 만화나 사람이 식량이 되는 만화 같은 건 그냥 최신 때깔만 입힌 고전의 동어 반복이라능.
2017.10.31 09:41
일본 만화들이 처음으로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쇼킹했던 게 그런 부분이었죠. 아니 애들 만화가 왜 이리 야해. 아니 일본 만화들은 왜 하나 같이 잔인해? ㅋㅋ 근데 고전들에 잔혹 & 성적 묘사가 생각 보다(?) 강한 건 사실 어느 나라든 비슷한 것 같은데 왜 유독 일본은 이리도 전통을 사수(!?)하는가... 라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2017.10.30 21:50
나가이 고는 기독교도는 아닌것 같지만 어렸을 때 단테의 신곡을 보고 충격 받은게 평생을 갔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중에서도 지옥편.
내용은 이해 못해도 거기 실린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영향을 받아 나온 대표적 작품이 데빌맨이고, 그밖에 다른 만화들도 기독교 종말론과 단테의 지옥 이미지를 비틀어서 만든 것들이 많죠. 만화에 도레의 신곡 삽화 구도를 그대로 갖다 쓰기도 했습니다.
아예 신곡 만화판을 내기도 했죠. 역시나 지옥편만 정성들여 그리고 연옥편은 대충, 천국편은 휘리릭 날려버립니다.
2017.10.31 09:43
마지막 말씀에 웃었습니다. 대충, 휘리릭. ㅋㅋㅋㅋ
그러고 보면 악마 & 지옥에 꽂혀서 천사를 사실상 악역으로 설정하고 악마들이 주인공 역할로 도전하여 피 튀기는 식으로 흘러가는 내용도 데빌맨이 (적어도 일본에선) 오리지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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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주인공들의 성적긴장감(?)연출도 파격적이고요.
시대를 앞선 작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