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에 앞서 - 먼저 도발적인 글을 올린 바람에 무슨 과격한 설정주의자 내지 근본주의자로 보시는 것 같은데 변명하자면 저는 라스트 제다이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고 영화에 크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봇 평점 테러나 에피8을 캐넌에서 지워달라는 청원은 찌질하다고 생각하고요. 단지 이 영화의 설정 오류를 지적하는 글들에 적극 동감하고 있고 그렇게 설정 위배를 하지 않고서도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습니다만... 어쨌든 불씨를 당긴 책임이 있으니 조목조목 까는 식으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주공간에서 폭탄 투하
스타워즈가 중력을 좀 지멋대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이런 황당한 무기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이 폭탄 투하과정도 좋지 않은 게 폭격기 승무원들은 결국 다 죽기 때문이죠. 이번 에피소드에서 나온 첫번째 자살특공입니다.

■ 루크의 캐릭터 붕괴
루크는 다크 사이드의 끝까지 갔던 다스 베이더를 라이트 사이드로 되돌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제자이자 조카에게서 다크 사이드를 보고는 겁먹어서 자는 동안에 죽이려 했다고요? 개그만화 일화 생각나네요.

카일로 렌 "으아아아 굉장한 힘이 용솟음친다! 마스터 아니 엉클! 이건 대체..."
루크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참고로 위와 똑같은 장면이 레이가 루크 만날 때 나옵니다)

■ 제다이(라이트 사이드)/시스(다크 사이드)의 선악이분법 구도는 낡은 유물이라는 관점
위 루크의 캐릭터 붕괴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레이와 카일로 렌은 신진 포스 세력이고 루크와 스노크는 낡은 포스 세력이자 청산해야 할 적폐가 되어버립니다. 네, 세대교체하는 건 좋습니다. 근데 전편에서 카일로 렌은 다스 베이더 광팬이고 자신 내면의 다크 사이드를 강화하기 위해서 아버지까지 죽여버린 인물이었는데 이번엔 상관한테 좀 깨졌다고 냅다 가면을 부숴버리고 여태껏 라이트/다크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전편에서 한 솔로가 그런 식으로 퇴장하는 것에 좀 불만이 있었는데 그 죽음 조차도 카일로 렌의 캐릭터성을 구축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였다면 그의 죽음의 의미는 대체 뭔가요.
카일로 렌을 이렇게 바꾸다보니 루크는 무슨 다크 사이드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다크 포비아가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캐릭터 붕괴를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전편과 이어지면서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카일로 렌은 다스 베이더를 흠모했고 그처럼 강한 힘을 추구하다 스노크의 유혹에 넘어갔고 루크는 고지식하게 제다이의 절제를 강조하다가 렌이 다크 사이드로 가는 걸 막지 못해서 좌절감과 회한에 은둔했다는 식으로요.

더불어 루크는 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루크가 렌을 죽이려했다는 뜬금 설정이 들어가는 바람에 한 솔로의 죽음에 간접적 책임이 더욱 강화가 되어버렸는데도 말이죠.

■ 스노크의 죽음
죽은 거 자체에 대해서는 불만은 없는데 그 과정이 문제죠. 원격으로 라이트 세이버 스위치를 켜서 죽이는 바람에 "이제 광선검 결투할 때 2인 1조로 한명은 포스로 상대방 스위치 끄고 다른 한명은 칼싸움 하면 되겠다."는 농담이 나오는 실정입니다. 그러지 말고 렌이 라이트 세이버를 포스로 끌어당겨 레이에게 건네고 둘이서 친위대&스노크 상대로 싸우는 게 어땠을까요.

■ 그냥 완전체 캐릭터 레이
홍정훈 작가도 지적한 내용입니다만, 에피7에서 저항군이 생고생을 해가며 찾은 게 루크 스카이워커의 위치가 나온 지도였습니다. 근데 이번 에피8에서는 그 행위 자체를 뻘짓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루크가 틱틱대며 제대로 된 레슨을 안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레이는 아예 수련 자체가 필요가 없습니다. 메리 수 논란이 나오는 이유죠. 그래도 레이가 찾아간 덕분에 루크가 제정신을 차리고 마지막에 환영무쌍을 찍으며 저항군의 불씨를 살리긴 한다는 점에서나 찾아간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네요. 추가로 전 레이의 출신에 대해서는 불만 없습니다. 팔파틴의 딸이라는 예측이 재수없었는데 빗나가서 통쾌했고 스카이워커 가문도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레이아의 우주유영
설정충돌이긴 하지만 전 우주유영 자체에는 불만없습니다. 근데 문제는 우주에서 선내로 들어오는 장면이죠.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에어로크가 나온 적은 없지만, 이렇게 우주에서 선내로 다짜고짜 들어오는 장면도 없었습니다. 아예 안 만들었으면 좋았을 장면입니다. 레이아가 계속 지휘를 했으면 포가 항명 민폐를 저지르지도 않았을테고 홀도라는 뜬금없는 캐릭터가 스타워즈 최악의 막장 장면을 연출할 일도 없었겠죠.

■ 지루한 우주전
이런 어이없는 추격 우주전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너무 억지 설정이죠. 스토리적으로도 안 좋은 게 포 다메론처럼 잘하는 게 조종밖에 없는 인간한테서 전투기를 빼앗아버리자 에피소드 내내 민폐짓을 저지릅니다. 왜 격납고를 박살내서 활약할 여지를 제거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 하이퍼 스페이스 항적 추적
이 추적장치가 있어서 저항군을 추적할 수 있었다는 게 아니라 바이너리 비콘의 정보가 유출되어 추적할 수 있었다고 설정하는 게 그럴 듯 하지 않은가요? 추적장치 때문에 스노크는 자신 휘하의 부대가 어떤 걸 개발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무능한 리더가 되어버렸습니다. 핀이 바이너리 비콘으로 유출되는 걸 알아서 탈출포드로 빠져나가려다 로즈랑 만나서 티격태격 하면서 어떤 행성(도박행성이던 뭐던)으로 가고 그 쪽으로 퍼스트 오더가 따라오고 레이도 비콘 따라서 그 행성으로 오고 했어도 이야기가 됐을 겁니다. 지금은 저항군 실드 에너지 떨어지기 전의 짧은 제한시간 내에 항적 추적기를 끄기 위해서 핀과 로즈가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고 난관도 크고 복잡스럽습니다.

■ 하이퍼 스페이스 반자이 어택
이번 에피소드 최악의 장면입니다. 설정위배 말고도 장면 자체로 너무 끔찍하죠. 무슨 911 테러도 아니고... 이런 장면을 스타워즈에서 볼거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는 홀도가 우주선 항로를 돌릴 때 함선으로 방패가 되어 수송선으로의 사격 경로를 막으려는 건 줄 알았습니다. 기존에는 기껏해야 격추된 A윙이 추락하다가 함선에 들이박는 정도였는데 이건 너무 나갔습니다.
포스에 있어서는 제다이/시스의 선악이분법 구도를 탈피해야 할 것처럼 묘사해놓고선 이 장면에서 저항군이 퍼스트 오더에 하는 짓은 절대악에게나 저지를만한 그런 짓이었습니다. 그냥 충실히 전쟁했을 뿐인 다수의 퍼스트 오더 군인들은 무슨 죄인가요.
그리고 이런 게 가능했는데 의료선과 보급선은 왜 그냥 순순히 터져버리게 내뒀나요. 홀도 장군같은 미친 사람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가요?
더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이게 가능하다면 제국은 데스 스타를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들어봤자 쉽게 박살날테니까요.. 그리고 그 수많은 우주전이 다 쓸데없는 뻘짓이 되어버렸습니다. 뭣하러 X윙, 타이 파이터들이 지지고 볶고 싸우나요? 그냥 서로 함선 공간도약 돌격하고 끝내면 되죠. 사람이 문제가 되면 드로이드들에게 시키면 되겠군요. 이번 에피소드에서 나온 두번째 자살특공입니다.

■ 트랙터 빔은 어디로 갔는지?
츄바카는 밀레니엄 팔콘을 몰고 퍼스트 오더 함선 근처를 자유자재로 플라이 바이 하면서 레이의 탈출 포드를 뿌렸다가 회수했다가 합니다. 예전같았으면 트랙터 빔으로 팔콘은 퍼스트 오더에 나포되어 레이와 츄이 모두 체포되는 식으로 갔겠죠. 이게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스노크가 죽고 나서 레이가 츄바카를 구해서 같이 탈출하는 식으로 묘사하면 되는 겁니다. 한데 그러지 않았고... 아예 탈출 과정 마저 생략해버렸습니다.

■ 퍼스트 오더 백과사전 핀
전작에서는 그냥 청소병이란 설정이었는데 이번 작에서는 퍼스트 오더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습니다. 청소하면서 이곳저곳 다 들어갔나봅니다.

■ 핀의 자살돌격
이번 에피소드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자살특공입니다. 라스트 제다이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은 왜 다들 이렇게 툭하면 자살특공을 하려 하는지... 다행히 로즈에 의해 저지되었습니다만 그 뒤가 문제죠. 퍼스트 오더 코 앞에 추락했고 한명은 기절했는데 핀은 아무렇지도 않게 로즈를 데리고 저항군 기지로 귀환합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대충 이 정도로 정리하면 될 것 같군요. 전 위와 같은 단점들이 있는데도 [라스트 제다이]를 찬양하는 분들은 좀 신기합니다. 저런 것들이 눈에 밟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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