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에 썼듯이 금요일에는 호객 문자가 잘 안와요. 이유는, 내가 추리하기로는 두가지예요. 일단 금요일은 당일에 불러 봐야 안 올 거라고 생각될 테니까요. 다른 날은 몰라도 불금이라면 계획을 세웠겠거니...하고 나를 부르는 걸 포기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사장들은 주중에 미리 연락을 주곤 해요. 그야 오라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아요. 와달라고 직접 말하면 모양이 빠진다고 생각하나 봐요. '금요일에 룸 하나 비워 놓을까?'정도로 간을 보죠.


 두번째 이유는, 내가 가지 않아도 어차피 금요일엔 사람이 꽤나 올거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금요일에조차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가게라면 애초에 살아남을 수가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의외로 금요일에는 호객문자가 안 와요. 당일날 호객문자가 오는 건 주로 화요일에서 목요일이죠.



 2.그래도 뭐 아주 안 오는 건 아니니까...오늘은 누가 부르나 하고 기다려 봤어요. 한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마치 친구를 부르듯이 사람을 부르길래 가지 않았어요. 가끔 나를 친구처럼 대하려는 사장이 있는데 정말 기분이 나빠요. 친구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손님이잖아요. 왜 자꾸 나와 친해지려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들이 나를 친근하게 대하는 걸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어려워하는 걸 보려고 돈을 주는 거잖아요. 외상 한번 안 치고, 현금으로 내주면서도 1%도 안 깎고 내주면서 말이예요.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어제는 듀게에서 만난 사람에게 수제 양복 얘기를 들었어요. '요즘 양복점은 주문을 하면 재단사가 직접 치수를 재러 동네 카페까지 와준답니다. 형도 그거 하나 맞출 거면 우리 가게에 불러서 치수 재시져.'라고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술집은 정말 비싼 거예요. 맞춤 양복은 내가 사는 곳까지 치수를 재러 직접 와주고 원단까지 종류별로 가져와서 주의깊게 보도록 해준다고요. 게다가 기술과 노력을 들여 한땀한땀 열심히 만들죠. 한데 한 번 놀러가는 값이 그런 맞춤 양복과 맞먹거나 넘어서는 가격의 술집은 대충 얘기 상대를 해주고 술만 따라준다고요. 이건 말도 안 되는 마진률인 거죠. 완전 날로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지간한 건 넘어가 줄 수 있어도 친한 척 해오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술집에서 일하는 직원이 뭔 장난을 치든 대부분은 넘어가줄 수 있지만 친한 척 하려는 건 정말 기분이 잡치는 일이예요. 나를 상대로 날로 먹는 걸 눈감아주고 있는데 거기서 친한 척까지 하는 건 못 참죠.


 

 3.지하철에서 공주와 카톡을 잠깐 하고...광화문에 갔어요. 나중에 광화문 특집을 한 번 써볼께요. 그 때 설명하겠지만 광화문 쪽은 모종의 이유로, 금요일날 오히려 장사가 안되거든요. 


 광화문에는 그럭저럭 친한 사이인데 내게 가게에 오라는 카톡은 절대 안 하는 사장이 있어요.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이니 특히 더 손님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문득 지금 그녀에 대해 상상해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왔어요.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혼자 오도카니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니 도저히 안 갈 수가 없었어요.

 


 4.휴.



 5.사실, 그게 걱정되면 카톡을 해보면 돼요. '거기 좀 어때? 손님은 몇명?'이라고 카톡하면 답장이 올 거고 나의 의문은 쉽게 해소되겠죠. 하지만 이상한 고집인건지...심술인건지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절대 연락은 하지 않아요. 그냥 불쑥 나타나보고 싶어서요. 뭐 아마도, 내가 불쑥 나타날 때 놀라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겠죠.


 경복궁역으로 가면서 '역시 연락을 했어야 했나...'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금요일 손님은 하나도 없고, 내가 오는 줄 몰라서 그냥 일찍 가게를 닫아버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가게에 갈 때까지 연락은 안 했어요.


 다행히 가게는 열려 있었어요. 손님은 하나도 없었어요. 손님은커녕 직원도 안 나와서 그녀 혼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어요.



 6.종종 분노나 비관, 염세주의에 대해 쓰곤 하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 뻥이예요. 한국의 서울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데 염세주의자라니 말도 안 되죠. 염세주의자가 되거나 처지를 비관하려면 그럴 만한 일을 겪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그냥 그런 척 하면서 폼잡는 거예요. 


 물론 지나친 풍요로움에 역치가 너무나 낮아졌기 때문에 절망감을 느낄 수는 있겠죠. 상대적인 빈곤감도 느낄 수 있을거고요. 하지만 그런 것에서 오는 절망은 결국 얄팍한 거예요. 어떤 경지로 우리를 인도해주지는 않죠.


 분노도 뭐...사실은 분노할 만한 건덕지도 없어요. 한때 분노였었던 감정일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냥 앙금일 뿐이예요. 그런 건 분노가 아니라 심술이죠.



 7.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거죠. 특별한 감정도, 특별한 경험도 정 겪고 싶다면 이젠 구매할 수밖에 없거든요. 현실에서는 비용을 치르지 않고 유니크한 감정과 경험을 겪으려면 엄청난 우연이나 운이 필요하니까요. 현실에 그런 건 없거든요. 그런 유니크한 것들은 현실에서 먼 곳에 존재하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죠.


 뭐 나는 그래요. 일탈 축에도 못 드는 싸구려 경험을 조금 깔짝거리고 '나는 일탈을 해봤어! 야호!'라고 자위하며 살고 싶지는 않아요.


 

 8.사람들은 내가 살아가는 걸 보고 조언이란 걸 하려고 들죠. 하지만 글쎄요. 우리들은 이제 어른이 됐잖아요. 이제 우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파놓은 구덩이 안에서 살아야 해요. 어떤 구덩이에는 벌레가 있고 어떤 구덩이에는 악취가, 어떤 구덩이에서는 환청이 들리겠죠. 그러나 어쩔 수 없어요. 벌레나 악취나 환청이나...이미 생겨버렸다면 그냥 감수하고 갈 수밖에 없거든요. 거기엔 말뿐인 조언따위가 필요가 없어요. 그것에서 벗어날 실질적인 힘이 필요하죠.


 위에 썼듯이 현실은 재미가 없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좀 신기하긴 해요. 돈이야말로 현실에서 가장 현실적인 도구(Tool)잖아요. 그런데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가진 사람을 현실에서 멀어지도록 만들어준다니 이건 정말 이상해요. 이상하고 아이러니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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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생일파티예요. 한데 문제는 내 생일파티가 아니란 거죠. 나를 위해서 가는 파티가 아니라 파티의 주인공을 위해 가는 거라서 머리를 깎으러 나가야 해요. 잠잘 수가 없어요.


 미용실에 가면 나를 담당하는 미용사도 그렇지만, 나를 담당하는 사람을 담당하는 사람도 더 눈여겨보게 돼요. 미용사 여자는 자신을 보조하는 소녀를 한 마디 한 마디 후려치듯이, 매순간 서열을 상기시켜 주려는 듯한 어조와 목소리로 이야기하거든요. 재미있는 구도예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거기 있는 3인 중에 미용사만이 두 가지 역할을 해내는 거예요. 세명이 있지만 나는 미용사와만 상대하고, 미용사 보조도 미용사와만 상대하니까요. 보고 있자면 나를 상대할 때의 미용사는 지킬 같고 미용사 보조를 상대할 때의 미용사는 하이드 같이 느껴져요. 그런데 그 전환이 너무나 빨라서 보고 있자면 좀 기괴하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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