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문제.

2018.03.03 15:56

MELM 조회 수:1990

1. 민주화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한 호남의 투표를 희생을 강요당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87, 92, 97 그리고 07 대선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는 호남 출신 후보입니다.


한국 사회 그리고 정치라는 장에서 보면 여전히 호남이 약자지만, 

그 안의 하위 부문인 민주당이라는 장에서 보면 호남은 약자가 아니었습니다.

호남은 민주당의 주류였죠.  



2. 더 문제인 것은 당시 국민의당 선택이 이제는 사려져야할 "지역'이라는 이데올로기 복원에 일조를 했다는 겁니다.


실질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호남이 약자에서 벗어나는 길은 호남이 영남과 같은 지위를 차지함으로써가 아니라, 

지역 이데올로기 자체를 해체시킴으로써 호남이 호남이 아니게 될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선거연구가 제시하듯 2000년 이후 선거에서 실제로 지역의 중요성은 감소되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공론장에서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했고, 거기에 표를 던지는 것은 이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죠.



3. 민주당의 12, 17년 대선후보는 문재인이라는 "영남후보"였습니다.

그 결과 호남이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은 희생이라는 판타지가 공고해졌죠. 


이런 판타지를 자극한 것이 박지원이 문재인과 당대표 선거에서 붙으면서 던진

문재인(이라고 쓰고 영남패권이라고 읽는)이 당대표와 대선후보 둘 다 먹으려고 한다는 구호였습니다.   


박지원의 저 발언은 정치를 대의와 신념에서 이익다툼으로 강등시키는 것이고, 

호남은 물론 한국정치 전반을 퇴행시키는 발언입니다.

그렇지만 저 발언이 이후 호남정치의 프레임을 형성시켰습니다. 

호남도 "대의"가 아니라 "이익"을 말해야 한다는 김욱 류의 패러다임이죠. 


이걸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여성도 이제는 자신의 이익을 말해야하고, 

노동자도 이제는 자신의 이익을 말해야하고,

흑인도 이제는 자신의 이익을 말해야한다는 류의 주장이 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운동도 소수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주장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소수집단이 성공하는 길은 자신들의 이익이 곧 다수의 이익이라는 식으로, 즉 대의를 말 할 때 성공하는 법이죠.



4. 이익의 정치는 대의와 신념의 정치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특히 큰 선거에서는 말이죠.

 

실제로 호남도 지역이익에 기반한 투표를 해보자, 라는 국민의당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보세요.


국민의당은 붕괴했고, 국민의당의 미니버전인 민평당은 독자정당으로서의 미래가 없습니다.

나아가 대권 후보급의 중량감있는 호남 정치인은 모두 소멸했습니다.

이게 호남도 대의가 아닌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해야한다는 주장의 결과입니다.


DJ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호남 차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호남의 이익이라는 작은 틀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큰 틀에 녹여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작금에 호남 정신, 호남 정치 운운했던 정치인치고 대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어차피 그들은 큰 선거에는 관심이 없으니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2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8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82
123306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씬은 무엇인가요? [12] 말러 2023.05.29 528
123305 인어공주 박스오피스 [4] theforce 2023.05.29 554
123304 인어공주... [5] 메피스토 2023.05.29 730
123303 [웨이브바낭] '연기'를 하는 장 클로드 반담이 궁금하십니까. 'JCVD' 잡담 [3] 로이배티 2023.05.29 279
123302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견종 [1] catgotmy 2023.05.28 211
123301 네덜란드 어 배우고 싶을 때+<포스맨> 잡담 [6] daviddain 2023.05.28 255
123300 프레임드 #443 [4] Lunagazer 2023.05.28 98
123299 [바낭] 후... 나는 나 자신을 넘어섰다... 극장에서 졸지 않고 본 영화 [4] 스누피커피 2023.05.28 419
12329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때려치면서 [2] catgotmy 2023.05.28 243
123297 도르트문트는 너무 멍청해 우승 못 한다는 정치인 말이 진실일까요 [1] daviddain 2023.05.27 180
123296 [영화바낭] 몇 번째인지 모를 'E.T.' 재감상 아주 짧은 잡담 [20] 로이배티 2023.05.27 491
123295 프레임드 #442 [4] Lunagazer 2023.05.27 92
123294 하라 료 작가가 돌아가셨군요. [8] thoma 2023.05.27 451
123293 '자칼의 날' [12] thoma 2023.05.27 353
123292 [웨이브바낭] '리-애니메이터' 제작진의 공포 동화, '분노의 인형들'을 봤어요 [8] 로이배티 2023.05.27 350
12329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을 읽으면서 [2] catgotmy 2023.05.26 229
123290 프레임드 #441 [4] Lunagazer 2023.05.26 101
123289 파워레인저는 왜 여전히 인기가 있고 어른들도 좋아할까 [2] 가끔영화 2023.05.26 263
123288 해변의 카프카, 곡성 (둘 다 스포 함유) [6] 2023.05.26 398
123287 Kenneth Anger 1927-2023 R.I.P. [2] 조성용 2023.05.26 2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