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번 글을 쓴 적 있는데,


아버지께서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암 판정(수술불가)을 받으셨습니다. 건강함을 자랑으로 여기셨던 본인도 몰랐고, 가족 모두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닥친 일이었어요.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데...산을 넘으니 다른 산에 봉착하고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은 그렇게 의연하고, 삶을 해탈한 모습을 보여주던데, 현실이 그럴리가 없잖아요.

오히려 아버지께서는 삶에 대한 집착을 더 강하게 느끼시는 것 같고,나아가 모든 일에 분노를 쏟아내십니다.

원래 그렇대요. 암환자들은 일단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일단 굉장히 자존심 상해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어머니께 그러셨대요. '내가 이런 약한 사람의 보호와 간병을 받게 되는게 믿어지지가 않는다'(어머니가 잔병치레를 많이하시거든요)...

머리가 듬성듬성 빠지셔서 가발을 맞추러갈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들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자기 모습에 신경쓰시던 아버지 모습을 봤을때, 아...모든 일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구나..싶은 생각은 들더라고요.


어쨌든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본인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내고, 소리지르고 욕을 하고 그러세요. 매사 모든 일들이 본인에게는 불만족스러운거죠.


현재 형제들은 모두 직장을 다니고 있고, 쉽사리 간병을 병행하기 어려운 처지들이라 아버지를 맡는건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 되었어요.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머니께서는 작년에 퇴직을 하시고 집에 계시던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어머니의 상황도 정상이라고 할순 없습니다. 아버지의 병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작년부터 아버지의 신경증이 부쩍 심해지셔서 건드리기 조차 어려울정도로 화를 많이 내시곤 했는데, 그 때 어머니께서는 이혼까지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시기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쌓였던 둘간의 관계들이 있었겠죠. 어쨌든 어머니께서는 퇴직을 하면 자기가 그간 하고 싶었던 활동들도 하고, 좀 자유롭게 사시고 싶었던 것 같아요.그걸 가로막는게 아버지라면 이혼도 불사한다는 다짐이 있으셨죠.

그런다 갑자기 아버지가 꽝 하고 폭탄을 터뜨리시고, 한동안 어머니는 죄책감에 시달리셨던 것 같아요. 그 정신없는 기분으로 아버지에게 매달리셨는데, 점점 어머니께서도 울분이 차오르시는 것 같습니다.

신세한탄을 자주 하세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하는...때론 아버지 앞에서도...그리고 모든 일들에 대해 생색(이라는 표현이 너무 무례해보이지만)이 많아지셨습니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걸 알아줘! 하는 감정들을 뿜어내세요.


아버지께서도 문제가 있으신데, 어머니의 매일같은 간병을 고마워하셔야 할텐데, 트집잡고, 화를 내기 일쑤입니다. 사람 기운 떨어지게요. 그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왜 일을 그런식으로 하냐며 윽박지르는 모습을 많이 봐요.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욱

일을 추진하기 어려워하시고 스트레스 받으시죠.어머니는 자신이 아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의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헌신에 대해서도 어떤 보상을 받으시지 못하시는 거에요.


저희 형제는 못나서 직장에서 지금 굉장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중인데, 저는 일단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떄문에 더 집을 신경쓰기가 어렵더라고요. 게다가 이직에 성공하더라도 초기 회사에 정착할때까지는

어느정도 회사에 투자가 필요할텐데요. 저도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정신없는데 어머니께서 전화해서 왜 안오냐..아버지가 서운해하신다..나 너무 힘들다..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이해를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울분들이 생겨요.

그런데 항암관련 커뮤니티에 관련 글들을 보면, 또한 아버지 친구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자식은 회사 그만두고서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돈은 어떻게라도 벌수 있지만,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얘기로 가득합니다.

그 말에 동의가 되기도하면서도, 그렇다면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는건가. 모두 함께 공경에 처하자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나봐요.전...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가 헌신을 하는게 도리인가.에 대한 셈이 먼저 들거든요.


이런저런 상황들은 결국 드러날수밖에 없고, 아버지는 어머니께 자주 '가족들에게 서운하다..'는 얘기를 하시나봅니다. 왜 더 자신에게 올인해주지 못하는지, 왜 더 신경써주지 못하는지를 은연중에 내비치신대요. 큰 병에 걸리면 더 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되고, 더 가족을 갈구하게

되고 한다고 하는데...저희는 할만큼 한다고 하지만 성에 안차실것 같기도 해요.


이 모든 상황들이...그냥 모두의 신경증으로 표출되는 상황입니다. 히스테리로 가득하죠...

암판정을 받은지 한달만에 벌어지는 상황들입니다.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건지..아니면 더욱 곤혹스러워지는건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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