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생각이 많은 거랑 똑똑한 건 별개일까요? 이렇다 저렇다 확신할만큼은 잘 모르겠어요. 


 온갖 걱정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그래도 내가 원체 똑똑하니까 온갖 생각 때문에 힘든 거야. 똑똑하지 않았으면 이러지도 않았겠지.'라고 믿고 싶어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을걸요.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똑똑했다면 걱정이 많은 게 아니라 돈이 많을 테니까요. 그래서 걱정이 많은 거랑 머리가 좋은 건 별개라고 여기고 있어요.



 2.보통은 그래요. 걱정이나 트라우마가 생기는 원인은 실제로 겪은 경험 때문이죠. 그런데 때로는 상상력만 가지고도 공포를 겪을 수 있어요.


 요즘은 잘 안그러지만 예전엔 한참 신경이 날카로울 땐 그랬거든요. 귀가하면 도저히 마음놓고 눕거나 컴퓨터 앞에 앉을 수가 없는 거예요. 화장실에 누가 숨어있지 않은지, 뒤쪽 창고에 한참 도둑질을 하다가 집주인이 들어오는 걸 듣고 숨어있는 도둑이 있지 않을지, 옷장 안에 강도가 숨어있지 않을지...걱정되어서요. 그래서 귀가하면 다른 방들이랑 옷장을 일일이 열어본 후에야 마음이 놓이곤 했어요.


 그런데 걱정이 더 심해진 뒤엔 그걸 믿어버리는 상태가 되고 말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다른 방에 누군가가 숨어 있다면'그냥 문을 열 리가 없잖아요. 그냥 문을 열고 안심하는 건 그래도 '설마 정말로 누군가가 숨어 있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어느날부턴 귀가한 후 집안 곳곳의 문을 열어서 확인하기 전에 식칼을 손에 쥐고 문을 열게 됐어요. 정말로 그 안에 누가 숨어있다면 내가 문을 여는 순간 공격해 올 거니까요.  



 3.꼭 이런 거 말고도 일상의 온갖 문제 때문에 이런 방어적 행동들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잖아요. '실제로 도둑을 만나봤기 때문에'저러는 걸 거라고요. 하지만 실제로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본 적이 없어도 상상력만으로 공포를 얻을 수 있는 거죠.


 다행히도 신경증은 군대 면제를 얻고 나서 차차 나아졌어요. 아, 물론 합법적으로 받은 거죠.



 4.휴.



 5.어쨌든 이런 상상력은 돈 버는 데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나마 도움이 될 건덕지가 있다면 '돈을 잃지 않는'것에는 도움이 되겠죠. 어떤 주식을 추천받든 그 주식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 다섯 개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안되거든요. 주식은 축구가 아니니까요. 공격 안에 수비가 있고 수비 안에 공격이 있는 축구나 체스와는 달리 주식은 공격은 공격, 방어는 방어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안전한 공격도 최소한의 위험은 늘 존재하죠. 그리고 스포츠나 게임과는 달리 공격을 하지 않고 무승부가 나면 반드시 지는 게임이고요. 축구는 무승부를 해도 1점은 낼수 있지만 스포츠가 아닌 현실 세계에선 언제나 생활비가 실시간으로 나가고 있거든요. 인생을 산다는 건 가만히만 있어도 점수(돈)가 계속 깎이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공격을 시도해서 반드시 점수를 따야만 하는 거예요 인생이란 건. 상상력으로 하는 게 아니예요.



 6.상상력이 도움이 될 만한 분야는 이야기예요.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실제 자료를 수집해서 만들기도 하지만 상상력을 부풀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재밌는 거거든요. 물론 엇나간 방향으로의 폭주가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전이시키는' 상상력 말이죠. 사람들의 상상이 아직 미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의 상상력의 방향과 확실히 동조해냈다면 공감과 감탄을 이끌어 낼 수 있어요.  



 7.그래서 요즘은 오래 전의 경험을 살려서 혼자 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어요. 남자가 사는 집에는 얼마전부터 몰래 들어와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데, 남자가 천천히 그의 존재를 눈치채간다는 공포 이야기죠. 


 다만 여기서의 공포의 핵심은 남자가 눈치채는 부분이 아니라, 자기가 눈치챘다는 사실을 눈치채이는 부분으로 하고 싶어요. 이미 눈치챈 상태에서 눈치챘다는 사실을 숨어 있는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을 핵심으로 삼아보고 싶어요. 


 이런저런 구상을 해 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는 부분은 이거예요. 하우스 호러물을 보면서 늘 궁금했던 게 '이런 장르에서 가장 공포가 극대화되려면 혼자 사는 집의 크기가 얼마만해야 하나?'예요. 너무 넓으면 공포감이 덜해지고 너무 아담해도 거주자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확실해져서 또 별로거든요. 그 중간쯤의 어딘가여야 하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18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5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189
125968 프레임드 #763 [4] Lunagazer 2024.04.12 54
125967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 공식 예고편(이사카 코타로 원작, 안은진 유아인 등 출연) [2] 상수 2024.04.12 297
125966 칼 드레이어의 위대한 걸작 <게르트루드>를 초강추해드려요. ^^ (4월 13일 오후 4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 마지막 상영) [2] crumley 2024.04.12 142
125965 '스픽 노 이블' 리메이크 예고편 [4] LadyBird 2024.04.12 200
125964 리플리 4회까지 본 잡담 [3] daviddain 2024.04.12 218
125963 란티모스 신작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 티저,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놀란영화 12편 순위매기기 상수 2024.04.11 189
125962 [왓챠바낭] '디 워'를 보고 싶었는데 없어서 말입니다. '라스트 갓파더' 잡담입니다 [13] 로이배티 2024.04.11 329
125961 프레임드 #762 [4] Lunagazer 2024.04.11 56
125960 스폰지밥 무비: 핑핑이 구출 대작전 (2020) catgotmy 2024.04.11 91
125959 총선 결과 이모저모 [22] Sonny 2024.04.11 1386
125958 오타니 미 연방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9] daviddain 2024.04.11 410
125957 10년 전 야구 광고 [2] daviddain 2024.04.11 132
125956 22대 총선 최종 의석수(업데이트, 21대와 비교) [1] 왜냐하면 2024.04.11 510
125955 [핵바낭] 출구 조사가 많이 빗나갔네요. 별로 안 기쁜 방향으로. [14] 로이배티 2024.04.11 1157
125954 프레임드 #761 [2] Lunagazer 2024.04.10 75
125953 [핵바낭] 아무도 글로 안 적어 주셔서 제가 올려 보는 출구 조사 결과 [22] 로이배티 2024.04.10 1066
125952 [왓챠바낭]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의 영화 만들기 이야기, '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잠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4.10 179
125951 간지라는 말 [7] 돌도끼 2024.04.10 360
125950 우리말에 완전히 정착한 일본식 영어? [5] 돌도끼 2024.04.10 374
125949 메이헴 (2017) catgotmy 2024.04.10 9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