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캐릭터, 쐐기)

2018.04.06 05:07

여은성 조회 수:681


 1.빌어먹을 폭락을 몇번 맞고 나니 자살이 매우 땡겼어요. 짜장면을 먹으면 단무지가 땡기듯이 주식이 떨어지면 자살이 땡기는거죠.


 '젠장, 왜 미래를 보지 못한거야?'라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가 매우 쓸모없게 느껴졌거든요. 다른 건 다 못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미래를 보지 못하면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거거든요. 


 왜냐면 1000가지 중 999가지를 잘하지 못한다면 미래를 보는 거 하나는 해야 하거든요. 아니면 미래를 보는 걸 못하는 대신 999가지를 잘하거나. 그리고 나는 999가지를 잘할 자신은 없으니까요.



 2.그래서 친구에게 말을 걸어서 지금 기분이라면 확실히 자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친구가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해서 상심한 게 아니라 지겨운 거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친구는 '자네가 죽으면 자네 ??가 기뻐하겠지.'라고 냉정하게 말했어요. 그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3.친구가 말한 건 일기에 종종 쓰곤 했던 감나무의 감 이야기예요. 한데 내가 사라지면 그 감은 어떻게 될까요? 내가 사라진다면 감은 다음 순번인 대기자들이 기뻐하면서 가져가겠죠. 그걸 생각하니 갑자기 살아갈 의욕이 완전히 충전됐어요. '누구 좋으라고 지금 자살 타령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만 들었죠.


 그리고 씁쓸한 느낌이 들었어요. 내 행동의 결과로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걸 기분나빠하다니. 누군가에게 기쁜 일이 생기게 만드는 걸 나는 정말 싫어하는구나...라고 말이죠. 나도 내가 싫어하는 다른 찌질이들처럼 분노와 심술, 증오를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건가 싶었어요. 그야 뭐...분노나 증오 같은 선명한 감정은 더이상 없어요. 내가 가진 감정은 기껏해야 심술뿐이죠.


 헤헤, 이렇게 말해도 역시 죽을 일은 거의 없어요. 나는 착하니까요. 내가 착한 사람인 동안은 절대 죽지 않죠.



 4.휴.


 

 5.이젠 월급이 안들어오고 있어요. 만화 연재가 끝나서 말이죠. 그야 푼돈(상대적으로)이지만 그게 안 들어오니 기분이 좀 이상해요.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이상한 느낌이예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늘 하다가 안 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아니, 시간이야 늘 있고...의욕이 날 때마다 조금씩 만화를 그렸어요. 한 6년 정도 그리지 않았는데, 의외로 등장인물들은 6년 동안 멈춰있다가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게 자연스럽게 움직여 줬어요. 흐름대로요.


 

 6.뭐 이야기라는 건 그래요.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잖아요. 그들에겐 각자 목적이 있는거죠. 목표에 다가가다가 죽게 되는 놈도 있고 살게 되는 놈도 있어요. 


 여기서 공포스러운 건...이야기가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채로 내가 사라지면,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도 모조리 사라진다는 거죠. 그들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제대로 도착하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게 되는 채로 끝나는 거예요.


 

 7.그야 이야기 자체는 볼품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남이 보기에...평가하기에 말이죠. 그러나 이야기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캐릭터에는 생명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알려져야만' 일시적이 아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거고요. 내 머릿속에만 있는 그들이 해방되어 현실에 나타나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어 우주에서 계속 회자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거죠. 내가 사라진 뒤에도 말이죠.


 뭐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죽으면...내 머릿속에만 있는 녀석들 모두가 죽어 버린다는 느낌이요. 그들 모두가 목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들이 목적으로 가는 길에는 내가 준비해 놓은 고난이 있고요. 그들이 그걸 넘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지는 아직 몰라요. 그야 그들의 운명은 다 자아내 놨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면 이미 마련된 운명을 파괴하는 놈들도 있으니까요. 진짜로요. 원래라면 죽었어야 했는데 안 죽은 놈도 있고 원래는 살 거였는데 죽은 놈도 있죠.



 8.음...하지만 내가 주색잡기에만 빠져있는 이상, 이 녀석들이 다 해방될 날은 쉽게 오지 않겠죠.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죠. 열심히 살 수 있는 기회가 작년에도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뭐 생각해 보면 그래요. 감나무의 감이 내게 떨어지면 이 인생은 더 나쁜 방향으로 가게 되지 절대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지는 않을거예요. 왜냐면 일기에 쓰곤 하는 '감'은 리소스일 뿐이지 그 자체가 나침반은 아니니까요.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건 리소스가 아니라...무언가 다른 거죠. 인생이 옳은 방향으로 가려면 빼려고 해도 뺄 수 없는 쐐기가 필요하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은.


 그래요. 요즘은 어떤 쐐기와 결합을 해내야만 제대로 살 수 있을 거라고 느끼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그 쐐기가 아이일 수도 있고...누군가에겐 배우자일 수도 있고...누군가에겐 업적일 수도 있고...뭐 그렇겠죠. 휴. 나를 옭아맬 수 있는 쐐기가 꽃아넣어져야만 더이상 떠돌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요. 그야 제대로 사는 게 반드시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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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색잡기에서 잡기는 뺄까 하다가, FFBE랑 페이트 그랜드 오더도 잡기에 속하니 그냥 썼어요. 21세기니까요.


 그리고 사실 월급이 안 들어오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번 달까지는 들어올 수도 있어요. 한번 가서 확인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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