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편이 아니야 & 어머니 글2

2018.05.24 10:32

sublime 조회 수:1900

1. 숙제를 하랬더니 대뜸 이러네요.

'엄마는 내편이 아니야.
우리집은 어른이 4명이고 어린이는 나 혼자여서 아무도 어린이 편은 없어
엄마도 어른이어서 어른편만 들잖아.'

그래서 제가

'우리집에 어린이가 한 명 더 있어서 들레 편을 들어주면
우리 들레 조금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 했더니


'아니, 지금 그말이 아니잖아.' 라고 하네요.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



2. 지난 번 시어머니 글 올렸었는데 어머니께서 댓글반응 보시고 꽤 좋아하시더라구요.

하나 더 올려봅니다.


<참고 : 지난번 글 링크 : 손녀는.

http://www.djuna.kr/xe/board/13347154>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나는 가끔씩 혼자 어디론가 차를 타고 다니고 싶다. 시외버스를 타고 어디든 가고 싶으면 당일코스로 잠깐 다녀온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은 날은 아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터미널에 내리면 먼저 편의점에 들러 우유나 빵을 먹고 초콜렛 서너개를 사서 나온다.

 

이렇게 다니다 보면 운좋은 날도 있다.

장날이 되면 그 고장의 특산물들을 시장에 내다 팔고 집으로 가는 아주머니들이 짐들을 한아름씩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

어쩌다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를 만나 짐도 들어주고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면 어디서 왔느냐, 어디에 사느냐, 그러다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 마을까지 구경을 하고

편의점에서 사 두었던 초콜렛도 나누어 먹으며 마을의 정서와 동네 집 값, 논밭시세까지 알고 돌아오기도 한다.

한 번은 할머니 짐을 차에 실어주려고 들고가다가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소리질러 놀라고 무안할 때도 있었다.

 

재미는 이것 뿐 아니다.

기사 아저씨는 어느 승객은 이 마을, 어느 승객은 저 마을, 어디에 내리는 것 까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고 차를 세운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면 어그정 어그정 양손에 짐을 들고 내린다. 앉아 있는 손님도, 내리는 손님도, 기사님도 모두 느긋하게 기다려 준다. 앉아 있는 승객들은 잘가세이 너나 없이 인사를 한다. 모두가 한 집안 같다.

오고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가 아파서 서울 아들네 있는 병원 가면서 소밥 좀 주라고 해 밥 주고 나오다 대빗자루에 걸려 넘어져 지금 병원에 누워있다 거나,

또는 올해 깨가 잘돼서 우리 먹고 남을 것 같아 세 되 팔아가지고 호미 세 개 사고, 영감 허리끈이 없다 해서 한 개 사가지고 온다, 참깨 울매 받았노, 한 되 이만 삼천원 주더라, 잘 받았네...

 

나는 승객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 두고 눈을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을 멍히 구경한다.

어쩌다 흙담 넘어 칸나 단국화 키다리 꽃이 울을 친 장독대가 보이면 나무하러 가신 어머니 기다리던 내 어릴 때 모습이 그 집 마루 끝에 앉아있다.

남쪽 하늘에 해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빨리도 가고 있는데 어머니는 언제나 오실지, 노오랗게 빛바랜 얼굴로 동네 어귀 나서면 머리에 인 나무단을 먼저 만난다.

어머니 나무단 위에는 언제나 진달래 꽃가지 한 웅큼이 꽂혀 있다. 집에서 기다리는 막내 딸을 위해 꺾어 오셨으리라.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난 시골 버스를 탄다.

이미 이 세상에 게시지 않은 어머니를 가슴에 담은 채 지금 내 나이가 그 옛날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된 삶이 었는지를 알 수 있기에 가슴이 저며오며,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어디쯤 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내려놓고 버스는 산모퉁이를 쏜살같이 달아난다.

목적지 없는 길을 걷기 위해 호젓한 산길을 나는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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