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바낭] 에어콘이 시원치 않아요

2018.07.31 11:46

가라 조회 수:1576


0. 

저는 공장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합니다. 지은지 20년이 넘은 건물인데, 당시 사장이 워낙 돈을 아끼는 사람이라 대충 날림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앙 냉/난방기가 골골하지요.


1.

회사에 출근하면 사무실이 미지근해요. 출근시간 + 20~30분쯤 지나면 에어콘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비공식적으로 '출근시간 10분전에는 와야 정시에 일을 시작하지 않겠냐.. ' 라면서 냉/난방은 출근시간 지나야 시작되지요. ㅋㅋ

그리고 퇴근시간 1시간30분전~1시간전이 되면 어느새 에어콘이 꺼져 있습니다.  실내온도는 30도를 넘어 갑니다. 

서향이라 해질때까지 꽂히는 태양광에 사람들과 PC들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바깥보다 더 덥습니다.


2.

저희 총무팀은 냉/난방에 인색합니다. 점심때 냉/난방을 꺼버린다거나.. 위에 적었듯 출근시간 이후에 냉/난방 틀어주고 퇴근시간 이전에 꺼버려요. 이번에는 너무 더우니까 점심시간에도 계속 나오는데, 작년까지는 점심때 냉/난방을 거버리기도 했지요. 전기료도 비싸지 않은 산업용 전기를 쓸텐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폭염에는 너무 더워서 팀장들이 이야기를 했나봐요. 너무 늦게 켜고 일찍 끈다고..

총무팀장 말로는 냉방기가 오래되서 전기도 많이 먹고 과열될까봐 하루종일 못 튼다고 합니다. 이정도 더위 참을 수 있지 않냐고.. 밖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정도 더위 못참으면 정신력이 부족한거라고.. ㅋㅋ 야이.. 

(윗분들은 자기방이 있고 개별 에어콘.. 회의실도 개별 에어콘이 있으니 냉/난방이 부족한지 체감이 안되실 듯..)


아, 어느 팀장이 얘기하니까, '주52시간 상한제에 맞춰 칼퇴근하라고 일찍 끄는 겁니다.' 라는 개드립도 치셨다고.. 



3.

저희 총무팀장은 ROTC 대위 출신입니다. 이전에는 삼사 소령 출신이었을 거에요. 이상하게 대대로 총무팀장은 군인출신이 한다고 합니다.

(아.. 예전 상사인 '그분'도 장교 출신..)

그래서 체력, 정신력 드립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원이었을때는 아침 시업 전에 주차장에 모여서 아침 체조를 했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했죠. 비나 눈이 오지 않는한..

그런데 어느날 총무팀장이 '다음달 1일부터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아침체조를 하고 공장 한바퀴 구보를 하겠다!' 는 계획을 보고합니다.

참고로, 저희 공장 한바퀴 넓게 돌면 2km 쯤 됩니다. 

야.. 아무리 공장이 군대 분위기라지만 이건 미쳤구나 생각했는데요.


다다음날인가 구보계획이 취소되었습니다.

저보다 1년 선배인 사원이 총무팀장에게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군대냐.. 구보는 너무 한것 같다' 라고 메일을 썼답니다.

총무팀장은 창피를 줄 목적이었는지 팀장 회의때 일부러 '**팀 *** 사원이 구보 못하겠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라고 까버렸대요.

그팀 팀장은 당연히 급 당황해서 걔가 공익이라 발이 안 좋아서... 하면서 횡설수설했는데, 공장장이 '그렇네.. 군대도 아닌데 구보는 좀 너무한거네..' 라고 하니까 다른 팀장들도 '그렇긴 하죠..' 라고 해서 창피를 주려던 총무팀장의 계획이 도리어 어그러져서 구보가 취소되었습니다. ㅋㅋㅋㅋ

(어, 그리고 그 선배는 '튀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 (.... ))


4.

저희 건물은 2층에 공장장, 기술부공장장, 관리부공장장 방이 있고, 총무팀을 비롯한 지원부서와 기술부서가 모여있어요.

저희 사무실은 3층에 있고요. 생산부서랑 품질부서는 현장 자주 나간다고 1층에 있습니다. 4층은 회의실들이 있고요.

(그래서 화장실에서 임원들 마주치는거 부담된다고 2층 근무하는데 다른층 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늘 3층 화장실을 다니던 제가 어느날 2층 화장실을 가보니.. 화장지가 달랐습니다.

3층 화장실 화장지는 홑겹인데, 2층 화장실 화장지는 두겹이더라고요.  ㅋㅋㅋㅋ 와 이런 차별이 있나.. 하는 배신감이 들었지요.

그래서 다른 층을 가봤는데 거기도 홑겹.. 


그래서 공장장 주재 대리 및 사원급 간담회 하면서 한마디씩 하라고 하길래 얘기했어요.

'회사가 알뜰해서 화장지도 저렴한 것으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2층만 두겹을 쓰고 나머지는 홑겹을 씁니다. 알뜰한 것은 좋지만 화장지 같은 것으로 차별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때는 참 철이 없었죠.. 닥치고 있었어야 하는데..)

관리 부공장장이 당황하더니.. 회의실을 나가더라고요.

그리고 계속 간담회가 이어지는데.. 나갔던 관리 부공장장이 들어오더니 공장장에게,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화장지는 두겹이 맞고, 홑겹은 재고 소진 차원에서 일부 칸에 쓰이고 있는 것 같다' 라고요.

풉.. 내가 입사해서 몇년동안 줄곧 홑겹이었는데 뭔놈의 화장지 재고가 그리 많았던건지..

한달쯤 지나니 모두 두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튀는 그룹'으로 들어갔습니다. 진급이 안되는 이유중 하나일것 같기도 합니다. 옛날 상사인 '그분'도 공장 관리자 스럽지 않다. 난 너 면제인줄 알았다.. 이런 소리를 했었으니..



5.

3번에서 체조를 한다고 썼는데, 요즘에는 안합니다.

얼마전부터 미세먼지가 이슈가 되었는데... 미세먼지 경보가 뜨든 말든, 하늘이 뿌옇든 말든 체조를 계속 했습니다.

어느날 제가 총무팀장에게 '미세먼지 심한날은 체조 안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가과장아.. 이거 좀 마신다고 안죽는다. 지금까지 쭉 마셔왔는데.. 숨 안쉬고 살거냐?' 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체조 안한다고 하더라고요.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위에서 얘기가 나왔겠지요.



6.

그외에도 참 창피한 수준의 에피소드가 많은데요.

총무팀장이 군인출신이니까 그런가보다 합니다.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어주고 지원해주는게 목표가 아니라..

나는 직원들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이런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딱 소대나 중대 행보관급 마인드죠.

이런 분들이, 많은 장교/부사관 출신들에게 선입관을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3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8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52
123274 [그야말로 바낭]여러분들의 TV 최애쇼가 궁금합니다. [27] 쏘맥 2023.05.24 472
123273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을 보고 [4] Sonny 2023.05.24 1185
123272 바람이 분다 (2013) [2] catgotmy 2023.05.24 280
123271 Ambra Danon R.I.P. 조성용 2023.05.24 108
123270 네이트온 AI챗 사용해봤습니다. [2] 스누피커피 2023.05.24 344
123269 6÷2(6-2) [2] 가끔영화 2023.05.24 149
123268 [웨이브바낭] 그냥 B급이라기엔 좀 미안한 고전 B급 호러, '리-애니메이터'를 봤습니다 [11] 로이배티 2023.05.24 377
123267 프레임드 #438 [2] Lunagazer 2023.05.23 103
123266 어떤 종류의 정체성은 부끄럽습니다? [20] 가봄 2023.05.23 952
123265 차정숙 3회까지 봤는데 [6] 2023.05.23 664
123264 Ray Stevenson 1964-2023 R.I.P. [3] 조성용 2023.05.23 218
123263 [웨이브바낭] 80년대식 나이브함의 끝을 구경해 봅시다 '마네킨' 잡담 [24] 로이배티 2023.05.22 634
123262 1q84랑 국경의 남쪽 번역 관련 [2] catgotmy 2023.05.22 261
123261 [넷플릭스] 글리맛이 많이 나는 ‘더 폴리티션’ [9] 쏘맥 2023.05.22 794
123260 에피소드 #38 [2] Lunagazer 2023.05.22 82
123259 프레임드 #437 [4] Lunagazer 2023.05.22 98
123258 압구정 폭행남 사건에 대한 커뮤니티 반응 [7] catgotmy 2023.05.22 988
123257 듀게 오픈채팅방 멤버 모집 물휴지 2023.05.22 119
123256 치과 의자는 왜 그렇게 안락할까? [10] Sonny 2023.05.22 547
123255 [웨이브바낭] 나름 짭짤했던 B급 무비 둘, '완벽한 살인', '오피스 배틀로얄' 잡담 [2] 로이배티 2023.05.21 29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