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좀 수정해서, 전체공개 합니다. 이번 일이 어떻게 귀결될지 모르겠으나, 미디어 환경과 이용자의 눈높이가 달라진 조건에서 보도가 지녀야 할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해 모든 기자들에게 숙제가 남겨졌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입때까지 하던 식으로 기자질하는 게 유효한 거 같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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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사 보도 얘기라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늘도 파고 있길래 좀 아니다 싶은 걸 중심으로 정리 좀 해본다. 나도 취재부서 있을 때 리포트 하면서 종종 저질렀던 과오인데, 구체적으로 원고에 쓰지 않으면서 그럼직한 느낌을 주는 보도가 꽤 있다. 마치 면피 할 있는 구멍을 만들면서 원하는 프레임을 만드는 식이다. S의 손혜원 보도가 내겐 그렇게 보였다. "원고 봐라, 우린 투기란 표현 쓰지 않았다" 뭐 이런 해명 보고선 좀 기가 찼다. 장문의 글을 쓰게 된 배경이다.

- 이 보도에 처음부터 대중들이 공분한 것은, 지금까지 미디어를 통해 반복돼 온 프레임에 보도 대상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투기를 한 다음, 몇 배 뛴 값으로 큰 이익을 보았다". 여기에 손혜원이라는 캐릭터는 최근 야구 국가대표 감독과 신재민 건으로 국민적인 밉상으로 찍혀 있던 차였다. 영부인 친구라는 것도 어마무시한 감투로 여겨지고 있고. 사람들은 대번에 그럼 그렇지, 정치인은 역시 다 그래, 민주당도 별볼 일 없군, 친문세력 다 저런거 아냐? 이런 인상을 갖게 됐다. 단언컨대, 본인은 더 할 생각이 없다고 진작 선언했지만, 손혜원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 그런데 정확히 그 프레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다분하다. 일반적으로 보는 정치인 투기의 양상이 아니다. 일단 수억에서 수십억까지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강남이 아니라, 하다못해 수도권도 아닌 목포다 목포. 그것도 슬럼화 된 구도심. 몇배 씩 뛴다 한들 큰 이익을 내기 어려운 곳이다. 투기로 이익을 취한다는 프레임과 묘하게 맞지 않는다. 그거부터가 좀 이상했다.

- 그리고 탐사보도 치고는 구체성이나 데이터, 과학적 검증, 크로스체크 뭐 이런 것보다 불투명한 익명 정보, 그럼직한 인상 또는 뉘앙스, 심지어 감성팔이까지 동원해 사안을 몰고가고 키운다. 내가 아는 탐사보도는, 너무 정교해서 비판 당사자가 찍 소리 못하고 GG 쳐야 하는 것인데, 이번 보도는 뭔가 점점 구질구질해지고 변명처럼 되고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건드리는 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 첫날 첫 보도에서 S는 작년 11월 문화재청의 목포 문화재 거리 홍보 설명회 일정에 없다가 포함된 '창성장'을 언급하며 리포트를 시작한다. 마치 원래 없었는데 특혜성으로 추가됐다는 뉘앙스를 주는 편집이다. 뭔가 힘있는 사람이 배후에 있다는 걸 연상시키기 위한 연출인데, 이것부터 매우 고약하다. 기자는 일정에 없던 창성장이 갑자기 들어간 특별한 이유를 확인한 바 없다. 보도에서도 더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인상만주고 말 뿐이다. 그러므로 이건 팩트가 아니다. 팩트 없이 손혜원이 대단한 거악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남기고 리포트를 시작한다.

- 리포트에는 뭔가 핵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익명 처리 돼 있다. 창성장에 대해 "원형 그대로의 복원이 아닌 유럽풍으로 리모델링 돼 보존의 모범 사례로 볼 수 없다"는 말을한 전문가는 누굴까? 얼마나 믿을만한 전문가일까? 문화재 전문가의 몇 % 정도가 동의하는 말일까? 이 말을 한 전문가는 문화재 전문가들을 대표할 수 있는가? 이견의 여지는 없는가? 많은 질문을 남기지만 보도는 더 답해주지 않는다.

- 건물값 상승은, S가 이후 사실 핵심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만일 매매 이후 값이 떨어졌다고 해보자. 그래도 문제삼을 수 있겠나? 문제삼기 이전에, 얘기가 안 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보도가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첫 날 세번째 꼭지 때문이었다. 이른바 '4배 뛴 건물값' 보도다. 하지만 4배 뛰었다는 근거는 없다. "주민들은 문화재 지정 이후 건물 가격이 4배 정도 뛰었다고 말합니다" 이 한 문장인데, 공시지가를 근거로 한 것도 아니고, 실제 매매 사례를 언급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얼마였는데 얼마로 4배 뛴 건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5억이던 게 20억이 된 것과, 5천 만원이던게 2억이 된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인데, 기사에선 일부러 그런 건지 자의적으로 불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한 건지, 구체적인 집값을 알려주지 않는다. 부동산 투기 관련 보도를 할 때 그 차액이 공분을 일으킬 정도라면, 오히려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게 일반적인 기사작성법이다. 수억원이 뛰었다든지, 십수억이 뛰었다고 명시적으로 기사에 쓴다. 그런데 이번엔 그거 없이 막연히 "4배"를 (그것도 근거 없이) 강조한다. 말인즉슨 실제 차익이 크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 아울러 저 주민들이 얼마나 대표성을 띠고 있는지, 얼마나 다수인지, 지역 재개발과 관련해 손혜원에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알 수 없다. 그냥 익명의 (특정) 주민들이고,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그들의 주장을 담보할만한 증거도 없다. '카더라'로 탐사보도를 한 셈이다. 그리고 비과학적이었던 이 "4배" 보도가 사실상 손혜원에게 피니쉬블로우였다.

- 익명의 문화재청 관계자도 나온다. "아무리 문화재 전문가라도 이 정도로 적중률이 높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는데, 문화재청에서 뭘 하고 있는 사람인지 (일전에 말단 해수부 공무원을 중요하게 인용한 전력이 있다 보니..), 그럼 일반적으로 문화재 전문가는 어느 정도의 적중률을 갖고 있는지, 문화재 전문가는 모두 적중률이 높은지, 혹시 이런 적중률과 문화재 전문성과는 관련이 없는 건 아닌지 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

- 사실 이 탐사보도가 손혜원에게 결정타를 날리려면 손혜원이 직위를 이용해 문화재청에 영향력을 행사했냐, 혹은 사전에 문화재거리 지정 정보를 알았느냐 이것만 확인했으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이 탐사보도에는 이것도 없다. 이 쯤 팠으면 문화재청 내부 고발이 나올 법도 한데, 안 나온다. 여전히 개연성만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단다. 더 파야할 건 이건데, 여기서 더 파지지 않으니 주변부만 긁고 있다.

- 둘째 날 첫 보도로 옳다꾸나, 하고 자기 누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생각에 전화한 동생의 주장을 또한 가감없이 전했다. 조금만 알아봐도 이혼 뒤 다른 가족들과 틀어졌다는 저 동생이 어떤 의도로, 어떤 감정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피붙이인 누나를 저격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취재진은 당연히 알았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그런 정보는 뒤로 하고, 순수한 공익 제보로 둔갑시켰다. 그 동생의 주장을 검증하려는 노력도 추가로 보이지 않는다. "동생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말 다 한거지"라는 일반적 정서를 겨눈 게 아닌가.

- 손혜원 보좌관과 남편 명의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확인됐다는 보도에서는 "이 건물을 포함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열 다섯 채를 보수하는 데 1차 지원금만 24억원이 책정돼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지원금을 받았다는건지 안 받았다는 건지, 신청했다는 건지 안 했다는 건지, 알려주지 않는다. 지정된 건물은 신청하지 않아도 무조건 지원해준다는 건지. 손혜원의 주장에 따르면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은채 자비로 보수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확인됐는지 궁금하다. 확인했는데도 이렇게 쓴 거라면, 취재 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행태다. 불리한 팩트는 드러내지않고 유리한 팩트만 취사선택함으로써 국민들을 기만한 것일테니 말이다.

- 셋째날 첫번 째 보도인 '문화재 지킨다면서 5.18 성지를 칼국수집으로' 역시 내가 보기엔 너무 악의적이다. 일단 해당 장소가 정말 "성지"라는 표현을 쓸 정도인가? 그런 곳이라면 애저녁에 목포시에서 매입해서 성역화를 했어야 할 일이다. 손혜원 보좌관이 원래 주인이 팔려고 내놓으며 책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사들인 것인데, 5.18 기념관을 짓고 싶었다면 지역시민단체들 역시 그 값을 지불하고 샀으면 됐을 일이다. 안철 선생 유족이 헐값에 내놓기라도 했어야 했단 뜻인지. 뒤 이은 리포트에서는 역사적 성지를 샀으니 칼국수집 하지 말고 엄연한 개인 재산에 대해 기부채납 하란 말까지 목포 시민단체 입을 빌어 하고 있는데, 이거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가 따로 없다.

- 무책임한 언론보도의 특징인 공자님 말씀도 자주 나온다. "정말 문화재를 사랑하고 목포를 살리고 싶었다면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인 법률제정 등을 통해 실현했어야 바람직한 행동인 겁니다"라고 하는데, 법률제정은 쉽나? 의원 하나가 법률 제정을 얼마나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대표발의를 하려 해도 의원실 돌아다니며 법안발의자 명단 채워야 하고 상임위 법안소위 본회의 등등을 거치다 너덜너덜해지는게 법안이다. 잠자는 계류 법안이 왜 그렇게 많겠나. 법률제정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는 거다. "진정으로 목포를 사랑하고 살리고 싶었다면 이익이 자신의 주변인들이 아닌, 목포 주민들에게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원주민들은 너무 익숙해 바로 옆 문화재의 가치를 못 알아보고 투자해볼 개념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꿈쩍 않는 현지인에게 어떻게 그 이익이 돌아가게 할 수 있었을까? 말로 하는 게 빠르겠나, 행동으로 하는 게 빠르겠나. 손혜원 본인이 페이스북에 썼듯이 모델을 만들어 그 가치를 입증해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르다. 그게 일종의 마중물이다. 보도가 지적하는 것들은, 아름다운 말인데 현실에 적용되기 어려운 훈수이다. 그리고 제발 그 "진정으로 목포를 사랑했다면" 이런 말 좀 그만하자. 오그라든다.

- 결정적으로, 손혜원의 직접적인 반론이 없다. 보통 조지는 리포트에서는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인터뷰를 요청한다. 본인이 얼굴 내밀고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면 안 받아주는 게 이상하다. 불러 내서 충분히 물어보고 정제된 언어로 된 해명도 반영하고 확보한 구체적 증거로 몰아부치는 질문을 함으로써 어쩌면 당황해하는 리액션도 따낼 수 있다. 근데 그렇게 안 했다. 그 흔한 "취재진은 손 의원에게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부했습니다" 멘트도 없다. 전화녹취 뿐이다. 아마도 정식 인터뷰가 아닌 듯, 일상적인 전화 취재를 녹취한 것으로 보이는 음성 인터뷰 뿐이다. 첫날 보도 뒤 손혜원이 인터뷰를 자청했음에도, 아직까지 손혜원은 S 보도에 직접 나온 바가 없다. 좀 이상하다.

-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게 국회의원이, 실제 이익을 얻지는 못했을 지언정, 그리고 허물어져가는 지역 문화재 살려보겠다는 그 선의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상임위여당 간사 지위를 이용해 문화재청의 문화재 지정 업무에 개입하거나 사전 정보를 빼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더라도, 오해받을 일, 혹은 이해충돌될 일을 애초에 해선 안 된다는 점인데.. 언론이 그 정도 훈수는 둘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다 치더라도, 이 코너의 정체성에 비추어 말하자면, 기껏해야 한 두어 삽 정도 팔 만한 일을, 지구반대편까지 뚫을 기세로 파고 있는 모양으로 보인다. 이제는 자신들의 보도에 손혜원이 곱게 수긍하지 않고 강하게 반발하자, 굴복시키려고 물량 공세를 펴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이게 과연 대체 저럴만한 일인가? 상식적이지 않다.

- 기자들은 팩트만 나열하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면피다. 팩트 너머 진실은 팩트만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만일 손혜원이 고꾸라짐으로써, 그녀의 가설대로 아파트 재개발조합과 건설사의 뜻대로 된다면, 그래서 목포의 문화적 가치들이 쓸려 나간다면 그것은 보도의 정의에 부합한가? 혹은 손혜원과 지인들이 손을 떼고 해당 문화재 거리가 무관심 속에 다시 슬럼화되어 간다면 그것은 또한 이 보도가 원했던 바일까? 기자들은 그것까지 책임지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도 할 것이다. 우리가 바란 결과는 이해충돌방지가 지켜지는 정의로운 사회였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의도가 선하다고 하여 결과까지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보도는 좋은 보도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기자질이 무서운 것이다.

- 이번 보도는 심지어 팩트를 모두 투명하게 보여주지도 않았다. 고의인지 아닌지 몰라도, 안 보여주고 가린 팩트들이 너무 많다. 이번 사안을 입체적이고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 알려주지 않은 팩트들이 더 중요한 것이라면, 그 팩트를 취사선택해 안 보인 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라거나 실수라고만 볼 수 없다. 일부 팩트를 가린 것은 악의적이거나 최소한 취재보도 윤리에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모처럼 긴장감 갖게 된 부러운 탐사 브랜드였는데, 시청률은 얻었을지몰라도 신뢰도에는 큰 상처를 입은 것 같다. 모질게 썼지만 안타까운 감정도, 진심이다.

https://www.facebook.com/kwangyoul.lee.332/posts/2176433399087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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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손혜원 보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 글을 KBS 이광열 기자가 페북에 올렸네요 
지금 비공개라서 그렇지 이번 보도를 까는 기자들이 사실 한 둘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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