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제목이 사람 이름이지만 그게 주인공은 아닌 요즘들어 흔치 않은 케이스네요. '마리안'은 이 시리즈의 빌런 이름이고 주인공은 '엠마'입니다. 젊은 나이에 초인기 베스트셀러 호러 시리즈로 크게 성공했죠. 만사 귀찮고 지 맘대로 살겠다는 프리스타일 인간이며 가족과는 연을 끊었고 친구도 없으며 애인은 늘 오래 버티지 못 하고 떨어져 나갑니다. 그런데 이 인기 시리즈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으니, 사실 그 소설 내용은 엠마의 꿈을 활자로 옮긴 겁니다. 계속해서 소름끼치는 악몽에 시달리는 호러 작가가 주인공인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엠마의 사인회에 고향 친구가 찾아오면서 일이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엠마는 이제 호러 쓰기가 지겨워서 어중간한 열린 결말로 완결을 내버렸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는 '내 엄마가 마리안이다. 너는 소설을 계속 써야해'라고 윽박지르다가 급기야는 엠마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점프해 버립니다.

 그리고 친구 장례식도 참석하고 가족들도 만나볼 겸 15년만에 고향을 찾은 마리안은 당연히 일련의 공포스런 체험들을 하게 되겠고, 그 와중에 가족과 옛 친구들이 하나 둘씩...



 - 지긋지긋한 얘기지만 뭐, 역시 스티븐 킹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호러 작가가 자신의 소설 내용이 현실화되는 걸 겪는 이야기야 킹 아니어도 많이들 썼지만 거기에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적지 않을 이런 설정, 저런 장면들까지 다 감안하면 역시 스티븐 킹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라고 우기기에 충분한 시리즈라고 봐요.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이게 불란서 제품이라는 겁니다. 스티븐 킹 이야기들의 특징 중 하나가 그 지독한 미국풍이잖아요. '마리안'은 디테일면에서 대단히 유럽맛이 강한 시리즈이고 그래서 보다보면 비슷한 이야기임에도 별로 안 비슷하단 느낌을 줘요. 그게 이 시리즈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 꽤 독하게 호러를 밀어붙이는 시리즈입니다. 가족,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과거에 대한 주인공들의 회한도 나오고 드라마도 충분하지만 '힐하우스의 유령'처럼 차분하고 진중하게 가족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는 아니에요. 놀래키고 겁주는 장면들이 지루할 틈 없이 수시로 튀어나오고 작정한 몇몇 장면들에선 신체 훼손도 거리낌 없구요. 호러 스킬에 특별히 참신한 구석은 없어도 기본적인 걸 잘 해줘서 무서운 장면들이 꽤 잘 먹힙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넷플릭스에서 본 호러물들 중에 상대적으로 가장 '무서운' 드라마였어요.



 - 그리고 또 한가지 개성이라면, 몰아치는 공포씬의 와중에 자꾸 괴상한 개그씬이 들어갑니다. 엠마와 부모님의 첫 맞대면 장면이라든가... 뭐 웃길 상황이 아닌 장면에서 괴상하게 웃겨요. 마지막화의 대결 클라이막스에서도 쌩뚱맞게 튀어나오는 깜찍한 개그 때문에 정말 웃을까 울을까 망설였던. ㅋㅋㅋ 어떻게보면 스스로 분위기 잡아 놓고 스스로 김 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전 맘에 들었어요. 시종일관 진지하게 다들 죽상을 하고 귀신에 쫓기기만 했다면 보다가 지쳤을 거에요. 오히려 웃음기가 거의 없는 7화랑 8화 초반이 전 아쉬웠거든요.



 - 시각적으로도 꽤 즐거운(?) 시리즈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던 유럽맛 때문에 기괴하고 기분 나쁜 장면이라고 해도 좀 독특한 볼거리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구요. 음... 뭐라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분명 헐리웃 호러 영화에서 늘상 보던 장면들인데도 뭔가 조금씩 느낌이 다른 게 있습니다. 여러모로 국적 덕을 많이 보는 드라마에요.



 - 아... 계속 칭찬만 하고 있지만 뭐 이것도 트집 잡자면 아쉬운 부분은 많습니다. 아무리 바닷가 시골마을이라고 해도 거의 공권력의 부재급으로 굴러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꾸만 주인공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상황도 많구요.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도 꽤 자주 널뛰기를 합니다. 근데 이게 어차피 기본적으로 '악몽' 느낌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라 그렇게 저는 크게 거슬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거 용납 안 되는 분들이라면 큰 단점일 수 있겠죠.


 그래도 다행인 거라면 주인공 캐릭터에요. 비록 어리석은 짓을 자주 할 지언정 대체로 당당하고 대체로 적극적이며 (숱한 뻘짓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캐릭터라서 지켜보고 응원해줄만 합니다. 호러물에서 이건 아주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 결말은 뭐. 한 80% 정도 맘에 들었습니다. 뒤에도 뭔가 이어질거라는 명백한 떡밥을 던져놓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처음에 벌여 놓은 건 다 수습하고 끝나요. 그리고 떡밥은 뭐... 어차피 시즌 2도 안 나올 것 같으니 별 상관 없겠죠. ㅋㅋ



 -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호러 좋아하면 보세요." ㅋㅋㅋㅋ

  신체 손상 장면은 전혀 못 참는다... 는 분들에겐 좀 힘든 장면이 두 세번 나오니 참고하시구요.




 - 이제부턴 여담인데. 주인공 역할 배우가 함수의 엠버와 되게 닮아서 보는 내내 생각났습니다. ㅋㅋ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이 닮은 건 아닌데, 스타일링이 딱 함수 시절 엠버에요. 한국판 만들면 주연 배우는 엠버로... 라는 뻘생각을 했으나 뭐 그런 게 만들어질 일은 없겠죠.

 호기심에 출연작을 검색해보니 '내 몸이 사라졌다'의 여주인공(...이라기엔 분량이 많지 않지만) 역할이었군요. 떠오르는 넷플릭스 요정인가요.



 - 주인공이 책이 전세계적 베스트셀러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한국어판의 표지가 몇 번 등장하고 나중엔 (가짜) 한국 신문이 화면 가득 나오고 그렇습니다만. 현지화는 충격과 공포 수준입니다. 당최 '꾸기 - 콜리 플라워' 가 무슨 말인지 해석이 가능하신 분? 도대체 무슨 일간지 이름이 '저녁 뉴스'랍니까. ㅋㅋㅋㅋ



 - 주인공이 소설 작가이고 그 양반이 쓰는 소설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해서 그런지 장면 전환마다 책장 넘기는 효과가 들어가고 에피소드 하나 넘어갈 때마다 소제목이 적인 속표지가 나오고 그래요. 되게 심각한 와중에 이런 게 튀어나오면 좀 웃기기도 한데 보다보니 정 들더군요.



 -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떠오른 건 스티븐 킹 본체보다도 스티븐 킹 스타일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게임 '앨런 웨이크'였습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어쨌든 스티븐 킹 보다는 '앨런 웨이크'랑 더 많이 닮았어요. 그 게임 참 재밌게 했는데 속편은 영원히 안 나오려나...



 - 아, 깜빡했네요. 대략 45분 정도 되는 에피소드 여덟개로 끝입니다. 짧아서 좋아요. 전 시즌 에피소드가 열 개를 넘어가는 드라마는 도저히 못 보겠어요. 시즌이 대여섯개 되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브레이킹 배드'를 안 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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