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 어, 누나. 드디어 큐브릭의 작품을 다 봤지 뭐야.
머저리 누나> 에너제틱하십니다. 그래서?
머저리> 전에 누나가 그런 표현을 했잖아. 그는 자기 영화를 면도날 위에 두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감독이라고. 
머저리 누나> 내가?
머저리> 인간의 인지 영역 너머로 나아가는 시각 매체로서 영화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대표 감독으로 그를 꼽았잖아.
머저리 누나> 내가?
머저리> 영화애정이 식었기로 자기가 했던 판단까지 다 잊은거야?

머저리 누나> 그에 대해서라면 인터뷰집 <스탠리 큐브릭>을 읽는게 가장 친절한 도움을 받는 길이야. 내게 엉겨붙지 마셈~  잘 시간임.        머저리> 아니지. 그런 책은 누나 같은 말을 안 해주지.
머저리 누나> ?
머저리> "20대엔 무조건 큐브릭을 봐야함.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combinatorial을 의식해야 하는 나이대엔 그런 결합술을 다룬 영화를 봐야함. 큐브릭만큼 그런 영화적 결합술을 보여준 감독이 없음."
머저리 누나> ㅋ 당신은 저의 스토커입니까?
머저리> 눼

머저리>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그 유명한 기계발레 장면을 누나가 왜 언급했는지 이제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거야.
머저리> 삼천만년 전 원시인류와 그것과의 접속이 인류에게는 재앙이었다는 것, 그게 기계발레의 우아한 선회 동작 속에 이미 잠복해 있다고 큐브릭이 드러냈다는 걸 말야. 
머저리 누나> 흠

머저리> 사물, 기계, 자연 사이의 결합을 참 잘 보여주더라고
머저리> 기계발레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움직임과 원시인류의 미형성된 '인간보다 덜 인간적인' 움직임 사이의 잔상효과가 거대한 시간 규모를 느낄 수 있게 해주더라고.
머저리 누나> 아우님은 하산하시고 내가 입산해야 할 판.

머저리> 근데 큐브릭 이후의 SF영화들이 그의 영향권 내에 있다는 평들은 좀 과장스럽지 않아?
머저리 누나> 천재가 갖는 끗발 정도로 수긍하면 되지 뭐.
머저리> 스페이스 오딧세이 자장권 밖의 SF영화엔 뭐가 있을까?
머저리 누나> <인터스텔라>

머저리> 눈물이 질척한 신파라는 평들이 많았잖아. 나도 과정이 너무 정답의 형태로 제시된 느낌을 받았는데.
머저리 누나> 난 빅터 샤우버거의 비전이 개입한 '물의 영화'라는 관점으로 봤기 땜에 좋았어.
머저리 누나> 물과 관련된 1930년대 대재앙 '더스트 볼'이 여전히 현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며 생태학적 세계관을 촉구한 것도 좋았고.
머저리> 계몽주의 성격이 너무 강하지 않았어?
머저리 누나> 그럼 좀 어때.
머저리 누나> 시간과 인연이 꼬이는 우주적 과정을 보여주려니 그런거지. 극대와 극소 사이가 연결되고 오히려 극소 안에서 극대가 발견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줬잖아.
머저리> 오올~ 

머저리 누나> 비 온다! 
머저리 누나> "우리의 작은 방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빠이~
(주: 우리가 '대화 끝내자'는 암호로 쓰는 파울 첼란의 싯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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