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나는 가수다'

2011.03.24 22:26

hubris 조회 수:5910

'나는 가수다'는 재미있는 형태의 예능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우승자를 가리는 일반적인 경연이 아닙니다. 2주일 마다 꼴등을 골라서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게임 형식의 경연입니다. 이름에도 나와있지만, 이건 '올림픽'이 아니라 '서바이벌'이고, 굳이 비유하자면, 패배한 검투사를 사자 먹이로 만드는 콜로세움의 싸움과 비슷합니다. 영화에서 보았듯이, 이렇게 영광보다는 굴욕,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이러한 형태의 경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개 "노예"들이었습니다. 이겨서 얻는 실익은 적고 질 때 생기는 비용은 큰 비대칭적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많이 보았겠지만, 이런 형태의 경기에 참여하는 주인공의 자세는 한결 같습니다. 자신감에 차있고 비굴함은 없습니다. 자신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영화에서 대부분의 주인공은 역시나 지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영화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는 조금 다릅니다. 가수는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없고, 심지어 남이 부른 노래를 자신이 직접 고를 수도 없습니다. '위대한 탄생'에서 많은 멘토들이 지적한, "선곡도 실력이다"라는 말은 여기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검투사로 치자면, 검술에 능한 자가 쌍절곤을 들고, 쌍절곤의 고수는 검을 들고 싸우는 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룰이라는 것이고, 일단 경기장에 들어서면 군소리 없이 룰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건모가 탈락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해하고, 재도전을 제안하고 그게 수용되자, 시청자들의 비난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월요일에 출근을 해보니 회사 동료분들이 담담한 저에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주 동안 인터넷 게시판과 신문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으로 가득찼습니다. 저는 그 반응들이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의 반응은,

 

1. 공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저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재밌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7명의 검투사중 패배한 한 명을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게임은 콜로세움에 모인 로마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입니다. 관객들은 죽지 않기 위해서 싸우는 검투사들의 몸부림을 맛볼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차별은 적어지고 생산성은 올라간다고 봅니다.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차별이란 행동의 편익은 적어지고 비용은 커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수다'의 시스템은 경쟁을 극한으로 심화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수들은 심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결과는 높은 생산성(높은 리메이크 곡들의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김건모의 재도전을 제안하고 수용한 것이 같은 가수들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로서는 경쟁의 정도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사람들의 반응은 재밌게도 공정하지 않은 한국사회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입니다.

 

 2. 김건모가 아니어도 재도전이 수용되었겠는가.

사람들은 기분 나쁜 이유로 김건모가 아니었어도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졌겠는가, 하는 점을 듭니다. 저는 아마도 그것이 김건모였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충격이 더 컸으리라고 봅니다. 한때 최고의 검투사라고 해도, 이 게임에서는 어쩔 수 없을 수 있다는 것. 조금만 실수해도 혹은 재수 없는 무기(곡)를 뽑으면 한방에 훅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건모에게만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몰라도, 모든 가수들에게 앞으로 재도전의 기회를 똑같이 한번씩 준다는데 특별히 다른 가수에 대해서 특혜를 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동료 검투사라면 꼴등을 한 김건모 검투사를 죽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김건모 검투사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고, 내게도 다음에 꼴등을 할 때 죽는 대신 재도전의 기회를 한번 달라고 하겠습니까? 저라면 당연히 재도전의 기회를 달라고 하겠습니다. 이건 김건모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3. 왜 한번 약속한 바를 어기는가.

사람들은 왜 시청자들과 약속한 것을 어기느냐며 분개합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람들을 화나게 합니다. 피를 보기 위해서 콜로세움을 찾았는데, 황제(PD)가 자신의 힘으로 패배한 검투사를 사자의 밥을 되게하는 대신에 한번의 기회를 주는 경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일반적인 장면은 죽일 것을 요구하는 관객들의 야유와 환호성입니다. 이번 사태를 휘감은 네티즌의 분노도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럴 때 장렬하게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치는 검투사가 있습니다. 쿨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검투사라면 어떨까요. 이건 가요 경연이지 목숨을 건 결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경제학적으로 두 경기의 매커니즘은 거의 동일합니다. 사실, 사회에서 이와 유사한 모습은 수시로 발견됩니다. 비정규직임을 알고 회사에 들어간 노동자는 회사에 들어가서야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인데도 자기보다 몇 배의 월급을, 단지 정규직이란 이유로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게 됩니다. 분노하는 자신에게 그 정규직 근로자가 말합니다. "넌 애초부터 알고 왔잖아. 뭐가 불만이야? 너가 자꾸 그거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공정한 사회를 위협하는 거여" 대학교를 입학한 새내기 학생입니다. 들어와 보니 학교는 사학비리로 얼룩져 있습니다. 재단 비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개혁을 요구하자 이런 대답을 듣습니다. "뭐가 불만이야. 우리 학교 개판인 거 모르고 들어왔어?" 방송사(네로 황제)와 시청자(로마시민)가 약속한 바를 가수들(검투사)이 요구해서 바꾸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신성불가침의 교리이어야할 이유가 혹은 인센티브가, 시청자가 아닌 가수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은 가수들의 이익에는 관심없습니다. 

 

4. 재미가 없어진다.

아마도 누구도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분노의 실체적 이유입니다.  시청자들이 이렇게 분개하는 이유는 재도전을 수용하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원초적인 실망 때문입니다. 맘대로 패배자를 살려주는 로마 황제에게 분노하는 로마시민의 손에 잡히는 실체적인 분노입니다. 경쟁이 완화되면 우리가 기대하는 그 높은 생산성(목숨을 건 싸움, 수준높은 리메이크곡, 처절한 땀과 피)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짜증이 그 분노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아닌 척 해도, 시청자들은 시청자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상당히 충실한 겁니다. 그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목숨'을 건 결투는 나오지 않을 것이란 걸, 꼭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는 "경쟁"을 둘러싼 꽤 심각한 경제학적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3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11511
112020 애플이 똥을 줬네요 [13] mii 2012.10.24 5914
112019 새벽의 식단공개 [35] 벚꽃동산 2012.08.27 5914
112018 넥스트 이효리는.. 강지영이 됐으면 좋겠어요. [21] catgotmy 2010.08.09 5914
112017 [공지]듀나의 영화낙서판 2차 보완계획을 가동합니다. [14] 룽게 2014.08.02 5913
112016 원래 명품가방에 그닥 끌리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피해갈 수 없네요. [25] 스위트블랙 2012.01.17 5912
112015 나는 꼼수다 후드티 발매 + 착용 사진 [8] 라곱순 2011.10.25 5912
112014 나는가수다 5人가수 전원 사퇴 발표 [9] 명불허전 2011.04.01 5912
112013 강수지와 김완선 [22] fan 2010.06.09 5912
112012 캡틴아메리카-윈터 솔져는 쿠키가 두개 있습니다.(스포는 댓글에) [6] 빠삐용 2014.03.26 5911
112011 '마조 앤 새디' 캐릭터 제품, 표절 의혹. [18] chobo 2013.11.04 5911
112010 김용민 교수님 당뇨병이라네요 [13] 라곱순 2011.12.25 5911
112009 이동진이 뽑은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4] Ostermeier 2011.09.16 5911
112008 검사 정말 상상외로 대단한 자리더군요.. [16] 도야지 2013.02.04 5910
»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나는 가수다' [40] hubris 2011.03.24 5910
112006 SEXY를 한국말로 어ㄸㅎ게 ♥ 말해요? [31] fan 2010.09.27 5910
112005 일본 동경입니다 [25] 스웨터 2011.03.12 5910
112004 어머님이 세 준 분의 집을 치우고 왔는데요.. [30] mana 2012.11.08 5909
112003 오늘 미친듯이 웃었네요 ㅋㅋㅋㅋㅋㅋ [7] 유은실 2012.08.18 5909
112002 보고 또 보고에서 금주 은주 누구 좋아하셨어요? [19] 소소가가 2011.07.11 5909
112001 모완님은 오늘도 코너에 몰렸습니다. [20] TESCO 2014.02.28 590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