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애담을 들어줄 일이 많아서 쓰는 푸념이에요. 좀 공교로운 타이밍인가요.


연애담을 듣다 보면

왜 이렇게 연애에서 내가 더 강자이(였)고, 늦게 좋아하게 되었고, 덜 좋아하(했)고, 더 빨리 잊었다는 게 자랑이 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왜 관계에서 내가 더 이성적이었고 상대방은 감성 쩔어서 이성이 마비되었다는 주장으로 우위를 점하려 하는 건가요.

듣는 제 3자에겐 외려 관계에서의 열등의식을 해소하려는 몸부림으로 안 보입니다.


덜 좋아했다고 하는 말, 겨우 연애관계에서 알량한 권력을 얻으러 했구나 싶어 우습게 들려요.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에서 상대방 보라고 도발하는 것, 그거야말로 아직 못 잊었고 잘 못 살고 있다는 유세나 다름 아니구요.

사람 사이 여러 종류의 호감 중에서 배타적인 연애 관계로 돌입하기,

그 계기나 정도는 여러 가지이겠습니다만 연애라는 극도의 감정적 관계를 맺자고 해놓고

그런 사이에서 덜 좋아하는 게 자신을 지키는 길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뭐 잘못 짚은 거 아닙니까.

연애에서 리소스 아낀 게 그렇게나 자랑이랍니까, 화장실에서 휴지 한 칸 아껴 닦으면 떼부자 된답니까.


그리고 팩트로 보면 덜 좋아했다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외려 할 거 다 하고 매달릴 거 다 매달린 경우 많아요.

진짜 덜 좋아한 사람들은 관계 해소가 빠르고 저런 중2병적 발화 하기 전에 다 잊고 다른 길 갑니다.

혹시 마주쳐서 새 연애에 구구하게 뒷말 따라붙을까봐 깔끔하게 새 판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구요.

결혼 전에는 내가 싫다는 데도 따라다녀서 결혼해 줬더니 딴판이더라 하는 푸념들이 우스운 것도 그거죠.

막상 들여다보면 그렇게 절절 따라다닌 게 누군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고, 그 상대 아니면 대안 없었던 경우들도 많은 걸요.

헤어지고 나서 매달리길래 만나줬다는 말도 비슷해요. 

극단적으로 스토킹 가면 그건 경찰서 갈 일이고 미적거리고 만나는 경우엔 누가 매달렸는지 모르게 서로 구구절절한 일이 많죠.


그리고 비슷하게, 연애 중에 이성적이었다고 자랑하는 사람 치고 정말 이성적인 경우 못 봤습니다.

스스로 이성적이었다고 착각하고 싶은 걸까요, 

언제부터 이렇게 이성적이란 표현이 명확하게 정의는 안 되어 있으면서 건드릴 수 없는 잘난 특질이 되었는지.

social intelligence가 늦되었거나 그저 무례한 것뿐인데 상대방이 그걸 똑바로 지적하지 못하고 푸념하면

역시 감정적인 상대와는 대화가 안되어서 피곤하다고 자아도취하는 경우를 많이 봐요.

이런 아전인수격 해석에 불을 붙이는 게 존 그레이의 화성남자 금성여자 류의 사이비 심리학, 답정너, 무슨녀 무슨남 하는 사례담들이구요.

공감능력의 부재가 자동적으로 이성적 판단이 뛰어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게 아니에요 수학 못하면 자동적으로 영어 잘합니까?

공감능력의 부재는 이성적 판단력의 부재와 마찬가지로 부끄러워할 일이고, 노력해서 고쳐나가야 할 일이죠.


아무리 연애담 (혹은 후일담) 들이 자기 편한 방향으로 윤색되게 마련이고

she says, he says 가 다르다지만

요즘 들어 제목에 쓴 저 패턴들이 후일담에 많이 등장하면서 당사자의 자기상, 나아가 연애에서의 역학관계까지 왜곡하는 듯하여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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