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탁구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주세혁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공격형 펜홀더 그립이 득세하는 요즘 흔치 않게 수비 전형을 취하면서도 오랜 기간 세계 10위권의 꾸준한 성적을 내주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몹시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참고적으로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펜홀더 그립은 라켓에 한면에만 러버가 붙어있고 라켓자루를 엄지와 검지로 쥐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는 라켓 뒷면을 지지하는 자세를 취하고

쉐이크 핸드 그립은 라켓 양면에 러버가 붙어있어 양면을 다 사용하고 라켓자루를 감싸 쥐고 엄지와 검지를 펴서 각 앞뒤면을 지지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 설명이 어려우니 그림 참조!)

 

 

 

 70,80년대만 해도 스웨덴의 쉐이크핸드 그립과 중국의 펜홀더 그립이 양분하고 있었는데 스웨덴 탁구의 급격한 몰락에 따라

현재 세계적인 쉐이크 핸드 그립의 선수는 많이 줄어든게 현실입니다.

이 와중에 쉐이크 핸드 그립에 수비탁구를 보여주는 주세혁에게는 다른 선수에게서 느낄 수 없는 애잔함과 장인정신 같은 것이 느껴지곤합니다.

 

일반적으로 탁구는 드라이브와 컷을 섞어가며 공격 일변도로 가기 일쑤이고 공격이 성공적이면 점수를 따게 됩니다.

하지만 수비탁구를 하게 되면 상대에게 공격을 하게 허락해주고 본인은 공격이 들어오는 공을 성심성의껏 최대한 공격하기 힘들게 컷트를 해가며 상대에게 다시 공을 넘겨주는 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상대가 제풀에 실책을 범할 때 까지 근성을 가지고 받아넘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회가 왔을 때 기습적인 드라이브 공격으로 전환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주세혁 선수의 중계를 보다보면 오래 매달리기 중계도 아닌데 캐스터가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를 연발하는 걸 들을 수 있습니다.

그냥 넘기기만 하면 상대가 '이게 뭐야'하며 스매싱을 해버리기 때문에 맘껏 공격을 못하게 기술을 걸어가며 넘기는 것이 관건입니다.

흔히 날아오는 공의 밑부분을 깍아서 넘기는 컷트 기술을 사용하는데 이게 제대로 걸리면 공이 느리게 넘어오는 것처럼 보여도 평범하게 리턴을 하면 네트에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겠습니까?

아랑곳하지 않고 네트에 걸리지 않게 무자비하게 공격을 하죠. 주세혁선수는 꿋꿋하게 이것을 받아넘깁니다. 라켓을 갖다 대기도 힘들 텐데 컷트까지 걸어야 합니다. 컷트가 제대로 걸리지 않으면 실점과 다름 없으니까요.

이런 선수와 경기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랠리가 길어지게 되고 볼거리가 많아지게 됩니다. 흔히 주세혁 선수를 '묘기탁구'의 달인이라고 하죠.

심지어 한 세계탁구협회 관계자는 "주세혁의 경기는 가수 로비 윌리암스의 공연보다 두배 더 재미있다"고 평하기도 했답니다.

보는 재미가 크기 때문에 유럽에서 주세혁 선수의 인기가 꽤 높다고 합니다. 주세혁 선수의 경기를 보다보면 '와 정말 짜릿짜릿 재미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 

 

수비탁구의 장점은 경기를 할수록 발휘하게 되는데 공격을 지속하던 선수는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수비를 하는 선수는 덜 지치게 되고요.

물론 수비탁구를 구사하는 선수와 경기를 하게 된다면 양 선수 모두 체력이 중요하게 됩니다.

단점은 실수할 확률이 수비선수에게 더 크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세계적인 공격수들은 웬만큼 어려운 공도 척척 잘 넘깁니다. 물론 그들도 기술을 걸어가면서.

공의 속도는 당연히 공격할 때 훨씬 빠르게 되고 수비할 때는 공이 천천히 날아가게 됩니다. 이러니 공격하는 선수가 더 쉽겠지요.

수비탁구의 존폐를 위협하는 대단히 치명적인 단점인데 주세혁 선수는 이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세혁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최고성적은 준우승, 대부분 4강,8강권 정도..

아마 수비탁구를 구사하는 선수의 숙명같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한구 한구 장인정신을 가지고 깍아 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리 좋지 못하죠. 관객의 눈은 즐겁게 하지만 본인을 즐겁지 못합니다.

 

오늘 주세혁 선수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첫 라운드였는데 북한선수에게 패했습니다.

북한선수가 워낙 잘하긴 했지만 예전의 주세혁이 보여주었던 '묘기'가 잘 나오지 않았던 경기였습니다.

경기 결과가 안타깝고 올해 나이 33세 노장인 주세혁선수의 경기를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아쉬워 주저리 주저리 길어졌군요.

마지막은 주세혁 선수의 예전 경기영상으로 하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2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11091
111702 오늘 미친듯이 웃었네요 ㅋㅋㅋㅋㅋㅋ [7] 유은실 2012.08.18 5906
111701 순수한 게 뭘까요. 화가 나서. [33] 화양적 2011.07.15 5906
111700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나는 가수다' [40] hubris 2011.03.24 5906
111699 SEXY를 한국말로 어ㄸㅎ게 ♥ 말해요? [31] fan 2010.09.27 5906
111698 여러 가지... [11] DJUNA 2010.08.04 5906
111697 일본 동경입니다 [25] 스웨터 2011.03.12 5906
111696 '마조 앤 새디' 캐릭터 제품, 표절 의혹. [18] chobo 2013.11.04 5905
111695 신민아 [13] 가끔영화 2010.08.12 5904
111694 넥스트 이효리는.. 강지영이 됐으면 좋겠어요. [21] catgotmy 2010.08.09 5904
111693 모완님은 오늘도 코너에 몰렸습니다. [20] TESCO 2014.02.28 5903
111692 어머님이 세 준 분의 집을 치우고 왔는데요.. [30] mana 2012.11.08 5903
111691 이번 주 나가수는 망했군요. [29] Jordi Savall 2011.11.27 5903
111690 이동진이 뽑은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4] Ostermeier 2011.09.16 5903
111689 [바낭] 억대연봉의 허상(긴 글입니다.) [48] 떼인돈받아드림 2014.04.30 5902
111688 '임성한작가' ....스포츠조선이 유족말만 듣고 소설 쓰려던게 맞는듯 [26] soboo 2012.02.13 5902
111687 일본 여자배구팀의 매력... [4] S.S.S. 2010.11.10 5902
111686 검사 정말 상상외로 대단한 자리더군요.. [16] 도야지 2013.02.04 5901
111685 '프레키'님과 troispoint 님은 무슨 관계입니까? (게시판 관리자 소환글) [56] 잠자 2012.09.21 5901
» 애잔한 세계 최고의 수비형 쉐이크핸드 탁구선수 [12] 전기양 2012.07.31 5901
111683 단발로 머리 바꾼 키이라 나이틀리 [9] magnolia 2010.10.09 590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