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5 00:54
엊그제 전공관련논문 보다가 한국에서만 난리인 줄 알았던 저 오랜 논쟁이
외국(미국)에서도 똑같은 모양새로 펼쳐지곤 했단 걸 이제서야(!!!) 알게 됐어요......
올해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에 실렸던 Robert T. Tally Jr. 교수의
"In the File Drawer Labeled 'Science Fiction': Genre after the Age of Novel"이라는 논문이었는데요.
읽으면서 어쩜 한국에서의 장르문학 논쟁과 이리도 닮아 있을까... 신기할 정도더라구요.
(저자는 본격(serious)문학과 장르(genre)문학 사이의 위계적 구분을 버리고,
"recognition"과 "estrangement"의 차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변화한 문학의 생태계에 걸맞게, 그리고 그동안 폄하되어오던 장르문학의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하여
장르문학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짓고 있습니다.
-제 허접한 독해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2015년 가즈오 이시구로가 자신의 작품 『파묻힌 거인』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때문에
어슐러 르 귄과 논쟁이 오갔었던 것도 이걸 읽으면서 알게 됐구요.
(르 귄 여사의 비판으로부터 이시구로가 자신은 판타지를 폄하하려 했던 것이 아니며,
자신이 "용과 요정들의 편"이라며 변호하는 걸 보니 너무 재밌더라구요.
르 귄 여사님은 자신의 비판이 너무 섣부른 것이었다고 철회했구요.)
급식 때부터 내심 장르문학 애호가를 자처해오던,
(라고 쓰기엔 사실 듀게에 숨어계실 고수분들 생각해보면 너무 민망하네요.
게을러텨저서 읽은 것도 얼마 없고... 외국 작품들은 더더욱 그런 편이기 때문에...
위의 논쟁도 이제야 알게 됐을 정도라...)
아니, 하고 싶던 저로서는 연신 줄을 쳐가며 읽을만큼 반가운 논문이었네요.
덕분에 제목의 부류에 속할 수 있는 마가렛 애트우드라든가, 이안 뱅크스 같은 작가들에 대해서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
(그 작가들이 이런 작가들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사실 때문에
와, 진짜 책 드럽게 안 읽긴 안 읽었구나 새삼스럽고 뼈저린 반성도... ㅠㅠ)
그래서 듀게의 고수분들께 본문에 적은 르 귄, 애트우드, 뱅크스, 이시구로 같은 작가들 외에,
(이들이 함께 묶일 수 있는 작가들일지는 또 모르겠지만요ㅠ)
제목의 범주에 속할 법한 다른 영미권 작가들이 누가 있을지 여쭙고자 두서없는 글을 적어보았읍니다...
어서 알려주시고 제 감사를 받아가주세요!(?)
2017.12.15 03:23
2017.12.15 04:20
거의 관계 없는 얘기긴 합니다만 신경숙 작품 중에 귀신 얘기가 참 많지요. 주로 단편입니다만 거의 단편집에 하나씩은 귀신 얘기가 있던 걸로 기억해요.
장편 중에는 기차는 일곱 시에 떠나네인가요? 거기 주인공이 예지력 비슷한 게 있기도 했고. '왜 나 밀었어?' 괴담을 단편으로 각색한 것도 있었구요. (생각해 보니 괴담을 각색한 거라는 얘긴 한 적이 없네요. 참 표절에 관대한 분이죠.)
이 '신경숙이 쓴 귀신 얘기'들이 무조건 알레고리로만 읽히는 게 좀 우습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아, '순수문학가'가 쓰면 귀신 얘기도 순수문학이 되는군, 싶어서.
2017.12.15 09:57
영미권은 아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요. 이 사람의 가장 잘 알려진 책인 '내 이름은 빨강'은 추리소설이죠.
2017.12.15 10:16
이언 뱅크스와 이언 M. 뱅크스의 경우를 보면 스스로 그 경계를 나눠 보고 싶기도 했던 거 아닌가 싶고...
저는 보르헤스를 이 목록 상단에 넣어 보고, 폴 오스터도 추리 장르와 연관성이 깊은 작가일테고, 커트 보네것도 괜찮겠네요.
일단 경계를 허물거나 무시하는 데에 더 익숙한 독자 입장에서는 댓글 달기가 조금 불편하달까 조심스러워지는 면이 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누구누구를 구체적으로 호명하는 순간 새삼스럽게 경계에 관한 익숙하고 거추장스러운 질문들이 피어나게 되니까요. 가령 (영미 작가는 아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이라는 훌륭한 범죄 소설을 썼죠!'라고 말하는 순간 '하지만 그건 장르 소설은 아니잖아요!' '장르가 뭐죠?'와 마주해야 한달까요.
그런 점에서 먼저 DJUNA님께서 12년 전에 쓰신 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 http://movies.djuna.kr/etc_2005_09_03.html
하지만 명확한 선은 없더라도 제 마음 속에 경계가 아예 없느냐면 그건 아니지요. 다만 그 경계를 장르 소설 대 본격 소설의 경계라고 부르기보다는 장르 대 비 장르의 경계라고 부르고 싶어요. 그리고 이때 어떤 작품이 경계의 어느 쪽에 있느냐보다는 작가가 어느 쪽에서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썼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장르 소설들을 읽다 보면 이건 이 분야의 전통과 흐름에 익숙한 사람이 내부자의 입장에서 썼는지 외부자의 입장에서 '차용'했는지 의식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가령 언급하신 작가 중에 어슐러 르 귄은 내부자이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외부자라고 느끼는데, 그렇다고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은 장르 소설로는 끼워줄 수 없어! 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역시 DJUNA 님이 작년과 올해 쓰신 이런 글들도 소개하고 싶네요.
윌리엄 포크너가 추리소설 쓴 진짜 이유 : https://goo.gl/YG93CD
'장르를 이용한다'? 노벨상 수상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경우 : https://goo.gl/q4rRfp
여기에 이름 몇 개 덧붙이자면,
통상 공포 소설 작가로 분류되곤 하지만 대표작을 꼽자면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나 [스탠 바이 미],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빼놓을 수 없을 스티븐 킹,
노벨상 후보에도 올랐던 정치/종교 소설 작가이지만 스릴러도 많이 썼고 스스로도 자신은 "오락물"과 "소설"을 쓴다며 두 영역을 분리해 생각했던 그레이엄 그린,
무서운 소설 하나 써보라는 권유에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19세기 말 20세기 초 현대영미소설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지만 [나사의 회전]이라는 걸출한 공포 소설을 쓴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이 들어가는데 [힐 하우스의 유령]을 쓴 내가 빠질쏘냐 셜리 잭슨,
설령 경계라는 게 있어도 내가 없애주겠다는 듯 온갖 영역에서 무자비한 수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는 조이스 캐롤 오츠,
미스터리 대마왕으로 유명하지만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여섯 편의 여성 소설도 잊고 싶지 않은 애거서 크리스티
등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