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5 14:31
<프시케와 에로스 부분, 프랑수아 제라르, 1797, 캔버스에 유채, 186×132cm,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추측과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에로스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그려졌는데 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기병대 중위인 자크 뤽 바르비에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나중에 프랑스 국립기록보관소의 소장이 되는 레트론이라고도 한다. 분명한 것은 에로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젊은 남성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다는 것이다. 프시케는 실제 모델이 존재했었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신고전주의적 전형을 보여주는 여성의 길고 섬세한 코와 반듯한 타원형의 얼굴은 당시 미술사가들에게 '이상적인 미'로 격찬을 받을 정도로 매끄러우면서도 완벽하다....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 루브르 박물관 회화관 학예사 브리지트 갈리니, 실뱅 라베시에르)
지난 2006년(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루브르 박물관전 도판을 우연찮게 구입해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재밌는 구절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화가 프랑수아 제라르의 작품 <프시케와 에로스>에 대한 해설 중 제가 위에 인용한 모델에 대한 서술 부분 말입니다. 일단 모델의 실존 여부를 두고 당시에 저런 논란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요. 그러니까 이게 대관절 논란이 될 일인가해서 말이지요. 당시 화가나 조각가들은 전문 모델들을 따로 기용해서 작품을 만들곤 했었습니다. 이는 16세기 르네상스 시절부터 있어온 전통인데요. 르네상스 거장들이 중세와는 달리 고전적인 이상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똑같이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인물상만 구현하게 되면서, 회화와 조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말 기막히고 아름다운 전문 모델들을 기용하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좀 쉽게 설명하자면, 이 세상 어딘가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를 가져서요. 그래야 신화속의 신들과 영웅들 그리고 요정들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건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 작품들만 봐도 사실 그 인물들의 모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대충 감이 옵니다. 유명인사의 초상화라든가 아니면 특정 모델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 성녀나 성자의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 경우는 당연히 전문 모델을 두고 만든 게 아니겠습니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문 모델이란 당연히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남녀노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하는 직업적인 모델들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당시에도 연예인이라 하면 연극에 주로 출연하는 극단 배우들이 있었고 무대에서 춤추는 댄서들 그리고 곡예단의 곡예사들 등등 마치 오늘날의 연예인들과 큰 차이 없이 개성 있고 잘생기고 멋진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이들이 바로 미술가들의 모델일도 겸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구요. 그럼 제가 이쯤에서 왜 이런 얘기가 논란거리가 되는 걸 의아해 하시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방금 열거한 대로 이들 직업군의 사람들은 이 시절에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서민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 전통 문화권에서도 기생이나 광대같은 연예인들을 천민계급에 두고 비천하게 여겼듯이, 이 시절 이런 상황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이들 모델들에 대한 무슨 상세한 기록이 있거나 일화들이 남아있는 건 전무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난데없이 제라르의 에로스를 두고 실제 모델 논란이 있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이 시절의 미술계의 변화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제라르의 작품 <프시케와 에로스>가 그려진 1796년(살롱 출품은 그 이듬해인 1797년)은 총재정부 시기로, 대혁명의 공포정치(1793년)가 끝난 직후였고 이전의 대혁명기(1789~1794)와는 전혀 다른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던 때였습니다. 한 마디로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운 부르주아의 시대였다고 할까요.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표현을 빌린다면, 프랑스 전체가 ‘엄숙하고 위엄에 찬 로베스피에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대혁명으로 파괴됐던 지난 시절과 비슷한 분위기의, 나른하고 향락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는 터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난 왕정 시절의 로코코 스타일처럼 부드럽고 여성적이고 장식적인 분위기가 유행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요. 문화계에서 신고전주의 사조는 여전했습니다만 그 분위기만 방향이 다소 달라졌다는 얘깁니다. 일례로 지금 (파리 전역의 감옥을 전전하며 재판을 받고 있는) 다비드의 경우 혁명기 내내 영웅적이고 도덕적인 남성상을 그리며 공화국의 미덕을 찬미했습니다만, 곧 얼마 있지 않아 에로틱한 남성 누드(1799,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를 그리면서 이것이 바로 새로운 ‘평화와 도덕의 남성상’이라고 강변할 상황이었습니다. 스승이 지금 이런 상황인데 그의 제자라고 별 달랐겠습니까. 다만 상기의 제자 제라르나 안 루이 지로데 같은 경우는 이 방향에서 스승 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나른한 에로티시즘’ 혹은 로코코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아름다움’으로 승부를 걸고 있었을 뿐이었죠.
자, 그럼 왜 이 시점부터 남성 누드의 실존 여부가 논란이 됐는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보통 이 시절이나 이후의 남자 모델들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주로 서민 계층의, 직업은 댄서이거나 군인들이 많았습니다. 왜 이런 직업군의 남성들이 모델을 겸했는지 금방 감이 오실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가들이 영웅적인 남성 누드를 선호하다 보니 체격 좋고 잘빠진 근육질 몸매를 가진 남자들을 선호했고, 이 정도 몸매를 갖고 유지할 수 있는 직업군이라면 지속적인 운동을 통한 체력 단련을 하는 댄서와 군인들이 그 대상이 됐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요. 다만 댄서라는 직업은 오늘날과 같은 예술가로서의 위상이 아직 정립이 되어있지 않은 시절이기 때문에 댄서가 누드 모델을 주로 겸한다는 것은 저 시절에는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만, 여기서 논란이 되는 건 군인이라는 직업군이죠. 다들 아시다시피 군인들은 일반 사병들부터 부사관 그리고 위관급, 영관급 장교들과 장성들까지 정말 다양한 계급을 이루고 있지요. 군인이라고 다들 똑같은 군인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실겁니다. 그리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 군인 계급은 피지배 계층은 사병과 부사관을 그리고 지배 계층인 귀족은 장성과 영관급 장교를, 그리고 부르주아 계층은 부사관과 위관급 장교층에 걸쳐 있는, 나름 신분 구조가 명확히 반영되는 조직 체계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 작품에서 왜 남자 모델의 실존 여부가 문제가 되는지 금방 추측이 되시리라 예상됩니다. 바로 모델의 후보로 꼽히는 남자들이 하나는 기병대 장교이고 하나는 고위 공무원이이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행정부서의 어디 청장이나 소장이라는 자리가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또한 기병 장교도 마찬가지인 것이, 일반 군 장교들과 달리 저 시절 기병 장교는 자기 소유의 ‘군마’ 정도는 개인 소유로 가질 정도로 부유한 부르주아나 귀족 출신들이었습니다.(물론 이 때는 혁명기였기 때문에 귀족 자제는 아니겠습니다만) 나라에서 군마를 지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비로 군마를 구입해서 기병훈련을 받아야만 장교로 임관하고 복무가 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얘기는 이렇게 된 겁니다. 자기 소유의 군마가 있을 정도의 부유한 집안 젊은이가 왜 누드 모델을?(만약 기병 장교가 아니라면 기록 보관소 소장이 될 정도의 고위직 공직에 있는 상류층 젊은이가 왜 누드 모델을?) 바로 보는 이들에게 이런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이란 얘깁니다.
아이러니한 일인데, 이 시절 미술가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누드 미술이 ‘숭고함’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높은 도덕성과 용맹 그리고 덕성과 순수함을 누드라는 - 신이 빚은 인간의 육체 그 자체로 - 매개로 표현하며 신과 신적인 인간의 아름다움을 빚는다고 했었죠. 그들이 만든 작품을 본다면 정말 그 말이 실감난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제라르의 프시케와 에로스를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육체를 가졌는가를. 마치 차가운 돌을 깎은 뒤 색채라는 생명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특히 에로스가 가진 아름다움은 뭐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네요. 신선한 젊음과 부드럽게 빛나는 눈길 그러면서도 대리석이 연상되는 단단하고 견고한 살결...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후세의 미술사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누드 모델 같은 일을 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귀한 집 자제라면 말입니다. 대체 이 화가 선생은 - 프랑수아 제라르 말입니다. 대관절 어떻게 이 젊은이 더러 모델을 하라고 권유했을까요? 모델 특히 누드 모델이라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남들 앞에서 몸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화가가 원하는 모든 포즈를 취해 줘야하고 그가 마음껏 스케치를 할 때까지 오랜 시간 계속 같은 자세로 있는 것도 마다 않고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당시 사회적 시선도 무시 못할 일이구요.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정말 아이러니한 일은 누드 미술이 신성한 인간의 숭고함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이미지의 모델이 되는 누드 모델들은 사회의 최하층 노동자로, 비천한 일꾼들로 그 존재가 역사에 제대로 기록으로 남지도 못했다는 현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아름다운 젊은이가 진짜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이구요.(물론 본인이 먼저 밝히기 꺼려했다는 것이 정답이겠군요.)
아마도 젊은 시절의 신선한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영원한 신의 이미지로 남기라고 권유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 벗은 모습 그려진 그림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뚫어져라 바라보니 극도의 부끄러움이 밀려왔나 봅니다. 아마도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겠죠.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지, 문득 그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2018.02.05 16:58
2018.02.07 01:46
일단 구도를 잡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라서 모델들은 화가가 원하는 포즈를 다 해줘야 했답니다. 그리고 한 자세로 상당히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하기도 하구요. 은근 중노동이었다는군요.
2018.02.05 17:19
오랜만에 로딩을 기다릴 글이로군요. 아는 그림이라 이야기가 더 기대되고 그렇습니다. :)
2018.02.07 01:46
언제나 감사합니다^^ 기대한 만큼 재밌어야 할 텐데요...
2018.02.05 22:16
2018.02.07 01:47
주커버그 옆모습이 저런가요? 헐...몰랐네요, 다시 봐야겠습니다.
2018.02.06 02:52
예전에 수업 누드모델은 항상 여자여서 왜 그런가 했더니 남자 모델이 더 비싸서 항상 여자모델을 부른다고 하더군요.
남자 모델을 그래서 딱 한번 그려봤는데, 남자 누드모델도 그려야 하지 않겠냐는 학생들의 성화에 원래 매주마다 모델 부르던 것을 교수가 한 수업은 학생들이 직접 모델을 서는 것으로 하고 그 돈을 모아서 다음 수업 때 남자모델을 부르는 꼼수를 썼습니다.
그런데 왜 남자 모델이 더 비쌀까 궁금해 하니 누군가가 '콘트롤이 필요해서 그런거 아닐까? 모델은 가만히 있어야 되는데 도중에 섰다 가라앉았다 하면 그리기 힘드니까" 라고...oTL
2018.02.07 01:50
ㅎㅎ ... 그러고 보니 남자 누드 모델 관련한 어떤 소설을 한 편 읽은적이 있는데, 거기 에피소드도 그랬네요. 자기 모습 스케치 하는 여학생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던 터라...본의 아니게...-_-;; 세상에 참 쉬운 일이 없지요.
2018.02.08 11:07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다른 글들도 찾아 읽고 있습니다.
2018.02.08 11:45
뭐지... 하면서 유심히 봤네요. 포인트는 내리깔은 눈이었군요.... 전 그냥 작가가 차분하게 눈을 깔기를 요구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