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전북도 교감이 자기 페이스북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올렸습니다. 읽다보면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올린 거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다 읽고 나면 몇가지 남는 점이 있습니다. 



<유언과도 같았던 한 마디 - 내 딸 잘 돌봐주소>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0년 어느 날 저는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함께 탔던 일행은 교수 몇 분이었습니다. 

교육부에서 몇 개 대학의 추천을 받아 교수들에게 중국의 대학과 몇 개 지역을 시찰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함께 갔던 교수분들 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저보다는 20년 정도 연상이신 목포대 윤리교육과 서용석 교수님이셨습니다. 

고대 정외과 출신이셨고, 저는 고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했던 탓에 서로 쉽게 친해졌습니다. 

성당에 다니시게 된 깊고 깊은 사연을 저에게 자세히 들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 분의 연세는 50대 후반이셨고, 저의 나이는 38세였습니다. 

그 분께서는 계속해서 집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서 교수님 : 내가 세상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뭔지 아는가?

나 : 그게 뭔데요? 

서 교수님 : 출장 가는 것이네. 

나 : 아니, 출장 가시는 것이 왜 고통스러우셔요?

서 교수님 : 각시가 보고 싶어서 그러네.

나 : 사모님이 그렇게도 보고 싶으세요? 

서 교수님 : 응. 보고 싶어서 죽겄네. 


부부 금슬에 대해서 들어보기도 했고, 소설에서 읽어보기도 했지만, 그 정도의 금슬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서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귀국한 후 저는 서 교수님과 자주 연락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제가 목포에 가기도 하고, 서 교수님께서 서울 가시는 길에 익산역에서 내려 저를 만나시기도 했습니다. 


나 : 선생님, 차 시간 늦지 않으세요? 

서 교수님 : 아니. 신경쓸 것 없네. 차는 얼마든지 있네. 자네하고 이러고 있으니까 좋네. 


그 뒤로 몇 해가 지나서 어느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다른 과목의 교수님 한 분을 보게 되었는데, 그 분은 목포대 정외과 교수님이셨습니다. 궁금한 것을 풀고 싶어서 그 분께 말을 걸었습니다. 


나 : 선생님, 목포대에서 오셨지요? 

교수 : 예. 목포대에서 왔소. 왜 그러시요? 

나 : 궁금한 게 있어서요. 

교수 : 뭔디 그러시요? 말씀해 보시요. 

나 : 서용석 교수님 아시지요? 

교수 : 예. 알지요. 왜요? 

나 : 그 분 부부 금슬이 그렇게 좋으세요? 

교수 : 그 분 부부 금슬이요? 그 분 부부 금슬은 우리 목포가 다 아요. 

나 : 그러시군요. 그 말이 맞네요. 


그로부터 몇 해 후 또 다른 시험에 출제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방 하나애 출제위원 한 명씩 들어가게 하고, 방 문 손잡이 고리에는 주머니 하나가 달려 있습니다. 그 주머니에는 시간이 되면 간식거리가 들어가 있고, 그걸 꺼내다 먹으면 됩니다. 

몇 날이 걸려서 문제를 만들었고, 다음 날 검토위원 두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남성과 여성 각 한 명씩 두 명이었습니다. 검토위원은 사법연수원 연수생들인데, 직전 사법시험 헌법 과목에서 1등, 2등 정도 한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검토위원들은 출제위원들이 낸 문제의 오류를 잡아내는 일을 합니다. 어찌나 잘 잡아내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출제위원들이 내고 검토위위원들이 검토한 문제로 시험이 다 끝나고 우리는 출제 장소에서 나와 대형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는 강남터미널을 향해 몇 시간을 달렸습니다. 

제 옆자리에는 헌법 문제 검토위원으로 들어왔던 여성 사법연수생이 앉았습니다. 

시간도 많고 해서 이것저것 많은 말을 나눴습니다. 

연수생은 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몸이 너무 약했다고 했습니다. 앉아서 책을 읽을 힘도 없어서 누워서 책을 들고 읽었고, 천장과 양쪽 벽에 메모지를 붙여 놓고 외웠다고 했습니다. 그 몸으로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의아했습니다. 


나 : 참 대단하네. 어떻게 그 몸으로 공부를 했어? 

연수생 : 이를 악물고 했어요. 

나 : 지금 몸은 어때? 

연수생 : 그 뒤로 좋아졌어요. 

나 : 천만다행이다. 건강 잘 지켜야지. 

연수생 : 네. 


자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나 : 아빠는 뭐 하셔?

연수생 : 아빠요? 

나 : 응. 

연수생 : 교수님이셔요. 

나 : 교수님? 어느 대학? 

연수생 : 목포대요. 

나 : (이 연수생의 성이 서씨라는 점에 착안하여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혹시 아빠 성함이 서용석 교수님? 

연수생 :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허! 아빠를 어떻게 하세요? 

나 : 응. 내가 아빠를 잘 알아. 그렇구나. 신기하네. 이렇게 만나네. 아빠 엄마 잘 계셔? 

연수생 : 예. 잘 계셔요. 

나 : 그런데 말이지. 내가 궁금한 게 있거든. 아빠 엄마 금슬이 그렇게 좋으셔? 

연수생 : 아빠 엄마 금슬요? 

나 : 응. 

연수생 : 아! 징그러워요. 


이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살면서 출장 가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신 그 분의 말씀은 사실이었구나'였습니다. 

버스가 강남에 도착하고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저는 서용석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나 :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김승환입니다. 

서 교수님 : 응.  자넨가? 반갑네. 잘 지내고 있는가? 

나 : 예. 선생님. 그런데요 이번에 시험 출제 들어가서 따님을 만났습니다. 

서 교수님 : 내 딸을 만났다고? 

나 : 예. 선생님.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서 교수님 : 이렇게 축하해 줘서 고맙네. 내가 무슨 힘이 있는가. 승환이 자네가 내 딸 잘 좀 봐주소. 

나 :  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그 때부터 또 다시 몇 해가 지나고 2010년 7월 1일 저는 뜻밖에도 전북교육감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취임하고 몇 날이 지나지 않아 비서실장이 전화가 왔다며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여성이었습니다. 


나 : 여보세요? 

여성 : 교수님, 안녕하세요? 

나 : 누구시지요? 

여성 : 저 서지현이에요. 

나 : 서지현? 

서지현 : 네. 교수님. 

나 : 정말 오랜만이구나.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있어? 

서지현 : 저 서울북부지검에 근무하고 있어요. 

나 : 검사로 간 거야? 

서지현 : 예. 교수님. 

나 : 그랬구나. 일은 할 만 해? 

서지현 : 예. 교수님. 교육감 당선되신 거 축하드려요. 

나 : 그래. 고마워. 엄마 아빠 건강하게 잘 계시지? 

서지현 : (갑자기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아니에요. 아빠 엄마 다 돌아가셨어요. 

나 : 뭐라고? 아빠 엄마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고? 왜? 

여성 : 엄마가 암으로 먼저 돌아가셨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도 돌아가셨어요. 

나 : 그랬구나. 어쩌냐.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 힘내. 건강 잘 지키고. 

서지현 : 예. 교수님. 


그 뒤로 저는 서지현 검사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의 전화는 상시 도청을 당하고 있을 것이고, 괜히 정권에 미운 털이 박힌 저와 전화를 한 기록이 남으면 서지현 검사에게 해가 될까 봐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서 2018년 1월에 '최근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간부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저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아버지 서용석 교수님께서 제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내 딸 잘 돌봐주소." 


내가 중간 중간 전화연락을 했더라면 어땠울까? 위로 언니 하나 있고, 부모님도 안 계시는데, 의지처 없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뒤늦은 미안함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 이 글의 '댓글'에 대한 '답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올려야만 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대한민국에서 피해자가 성추행을 고발하면 쉽게 꽃뱀 취급받기 때문입니다. 서검사가 윤리학 교수 딸이고, 공부를 잘해서 검토위원으로 들어올 정도였고, 서울북부지검에서 근무할 정도로 유능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없을 지언정 부모님이 쌓아둔 인덕으로 남자 어른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그나마 저 여자 꽃뱀인가 하는 의혹을 덜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를 나와도 사시를 패스해도 애엄마라도, 사십줄에 검사라도 소용없습니다. 그 어느것도 한국사회에서 피해자에게 씌우는 꽃뱀 혐의를 벗겨주진 못합니다. 피해자 나이가 40줄이라도, 저 여자 믿을 만 하다는 남자의 보증이 있어야 하지요. 한국에서는 심지어 성폭행 피해자가 자살해도 가해자가 피해자더러 꽃뱀이라고 주장합니다. 


최근에 제 후배가 성추행을 당했는데, 2차 가해가 더 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에서 나왔습니다. 스스로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남자 친구 없어?" 


현실적으로 보아, 가해자의 괴롭힘을 인력관리부보다 확실하게 멈출 수 있는 건 남자친구의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네이버에서 서지현 검사를 치면 연결해서 나오는 연관검색어는 "서지현 검사 성형"입니다. 이것이 나라의 수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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