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여행, 기회)

2018.06.10 04:03

여은성 조회 수:612


 #.작년엔가...혼자서 여행을 간 친구가 할 일이 없다고 투덜거렸어요. 얼마나 할일이 없는지 농장에서 운영하는 위스키 투어 같은 걸 하고 다니더군요. 그가 내게 남긴 말이 인상깊었어요.


 '그들에게 나는 돈 많은 동양인일 뿐이야. 이곳에 존중 따윈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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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언젠가 썼었죠. 사람들에겐 잘 이해안가는 공통점이 있다고요. 그들이 여행을 매우...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점이요. 물론 여행에는 장점이 있어요. 여행의 어떤 부분은 매우 좋을 수도 있죠. 새로운 공기, 새로운 풍광, 새로운 사람...하여간 여행에서만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요. 


 하지만 여행의 측면이 아닌 총체를 생각해 보면, 여행을 떠날 마음은 절대 안 들어요. 여행 전에 짐 싸기...여권 발급...스케줄 짜기...비행기표 구매...비행기 시간 맞춰 떠나기...공항에서 온갖 수속...짜증나는 외국의 날씨...짜증나는 외국의 외국인...짜증나는 외국의 한국인...짜증나는 귀가...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그 사이사이에 얼마간의 즐거움이 보장된다고 해도, 나는 절대 여행을 떠나지 않죠.



 2.하지만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뭐랄까...그들은 여행을 1옵션 비슷한 걸로 여기는 것 같아요. 그들은 얼마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면 다른 어떤 걸 하기보다도 일단 여행 계획을 세우거든요. 그리고 그걸 옆에서 보다 보니 그들에게 중요한 건 여행 자체가 아닌 거예요. 이곳을 떠나 있을 수 있고, 자기자신을 떠나 있을 수 있는 어떤 것...그들에겐 그게 여행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건 나와 똑같죠.



 3.다만 나는 옵션이 다를 뿐이예요. 나는 얼마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면 계산을 하거든요. '이걸 가지고 몇 주 망나니로 살 수 있을까?'를 말이죠.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냥 망나니로 사는 것...이게 나의 여행인거죠. 나 자신을 떠나 있는 여행 말이죠. 


 그리고 위에 썼듯이 '떠나 있는 건' 아무리 길어도 몇 주예요. 1달이나 몇달까지 늘려지지 않죠. 누군가는 '액수가 늘어나면 망나니로 살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지는 거 아냐?'라고 하겠지만 아니예요. 망나니짓을 1달씩이나 하면 그건 이미 망나니짓이 아니라 일상이잖아요. 비일상이 일상화가 되기 전에 돌아와야 망나니짓이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 몇 주도 너무 길죠. 길어야 3~5일이 피크예요.


 한데 얼마가 생기든, 돈이 남을 걱정은 없어요. 왜냐면 생존비나 생활비는 충분함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유흥비에는 한계가 없거든요. 그럴 마음만 먹으면 1달동안 망나니로 살 수 있는 돈을 하루만에 쓸 수도 있죠. 그야 내가 먼저 나서서 그럴 마음을 먹는 일은 잘 없어요. 내가 그럴 마음을 먹도록 누군가가 부추켜줘야 그런 일이 일어나죠. 



 4.휴.



 5.누군가는 이러겠죠. 뭐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요. 자신이라면 그걸로 더 가치있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조금씩 두고두고 쓸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아니예요. 누군가가 한달동안 쓸 돈을 하루만에 쏴버린다면 그 사실과 그 소문은 그걸 보고 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거든요. '기억'이라고 불러도 좋고 '약발'이라고 불러도 좋아요. 그리고 내게는 그걸로 충분해요.


 왜냐면 그걸 보거나 들은 사람들은 다음 번에 내가 한달짜리 망나니짓을 하루에 쏟아부울 때, 그게 자신의 몫이 되길 바라는 법이니까요. 그런 바램은 평소의 언행에 그대로 반영되고요. 그런 거야말로 돈값을 확실히 하는 거죠.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따위나 가는 것보다 말이죠. 어차피 쓰기로 작정한 돈은, 한달이 아니라 하루에 몰아서 써버리는 게 약발이 쎄게 먹히죠.


 그야 '약발'이란 표현을 쓴 거에서 다들 눈치챘겠지만...그게 오래는 가지 않지만요.



 6.물론 망나니로 산다는 건 꼭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예요. 일을 안할 순 없죠. 어떤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그런 기회들은 메이드된 순간 과거가 되어버리니까요. 


 그리고 무서운 건...기회라는 게 없는 기간이 있거든요. 그 기간은 매우 길어질 수도 있고요. 이번 북미회담같은 기회...중간에 무려 미국 대통령 본이이 바람잡이로 나서서 판을 깨는 척 하다가 한번 더 드라이브를 주는 이런 기회. 이런 게 대체 인생에 몇 번이나 있겠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바람잡이 노릇을 해주는 판이 또 오기나 할까요? 


 어떤 때는 내가 조금은 신경써주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기도 해요. '왜 이런 걸 놓치는 거지? 제발 정신차리고 살아야 돼. 너희의 인생이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었던 기회가 지금 막 너의 옆을 지나가버렸어. 핼리혜성은 몇십년 후에 다시 오기라도 하지, 이런 건 다시 오는 게 아니야.'라고요.


 왜냐면 열심히 산 사람들은 그렇거든요. 기회가 그들의 옆을 지나갈 때 그 기회에 배팅할 수 있는 칩을 모아두고 있는 법이죠. 그런 사람들의 칩은 똑같은 칩이라도, 열심히 안 산 사람의 칩보다 귀중해요. 올바른 기회에 배팅되어야만 하는 소중한 칩이니까요. 


 하지만...이렇게 가치는 다르지만 확실한 기회에 배팅되지 못한 칩의 신세는 결국 똑같이 둘 중 하나일 뿐이예요. 어쩔 수 없이 불확실한 기회에 배팅되거나, 아니면 언제 올지 모를 다음 번의 확실한 기회를 속절 없이 기다려야 하죠.



 7.얘기가 좀 샜네요. 하지만 어쨌든...나도 사람이니까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아마 나도 좋아할 수 있겠죠. 초밥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여행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죠. 음악 감상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요.


 정상적인 가게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상적이지 않은 가게에서 창렬 과일안주를 하나 시킬 돈이면 정상적인 가게에서 여럿이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거든요. 맛만이 아니라 기술과 정성까지도 느껴지는 음식과 술 말이죠.


 괜찮다고 일컬어지는 정상적인 가게에 가면 거기서 나오는 음식과 서비스를 가만히 살펴보곤 해요. 그럼 조리하는 것...그릇에 신경써서 담아오는 것...냅킨, 물수건, 식기, 스푼과 포크의 셋팅...그 모든 부분에서 신경을 썼다는 게 묻어나오거든요. 



 8.그러나 캬바쿠라는 아니란 말이죠. 정상적인 가게를 다니다 보면 술집은 정말 매우 이상한 곳이라는 걸 깨닫게 돼요. 그 가격에 아무런 정성도 없고 기술도 없고 전문성도 없어요. 사람들은 파인다이닝이 비싸다고 하지만 아니예요. 파인다이닝에 가서 그곳이 돌아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난 걱정이 되거든요. 이런 식으로 장사해서 돈이 남긴 남는지 말이죠.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고, 그 재료를 숙련된 수준의 기술로 조리하고, 조리된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그리고 식사하는 도중에도 느껴지는, 이 테이블을 끊임없이 체크하는 시선과 정성...레스토랑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 잘 구축된 흐름 안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죠. 그리고 절대로 많이는 남겨먹지 못할 거라는 것도 느낄 수 있고요.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좀 정상적인 가게 투어를 다녀볼 예정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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