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으로 사용해야 하는 CGV 영화관람권이 2장 있어서 어떤 영화를 보러 갈까 하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상영 중인 걸 발견했어요.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줄은 몰랐네요. 반가운 마음에 예매해서 어제 보고 왔습니다. 


이제까지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이 감독의 영화는 보고 있는 동안, 혹은 보고 난 직후에는 그렇게 새롭거나 인상적이진 않아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이런 저런 생각이 스멀스멀 밀고 들어오더군요. (이건 어쩌면 제가 좀 둔해서 그런 걸지도... ^^) 


작년 연말에 봤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비교해 보면 좀 흥미로운 점들이 보이고 확실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좀 더 설득력 있고 정교하게 


영화 속 캐릭터를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엄마와 딸이 둘 다 주위 사람들에게 좀 폐를 끼치는 타입이었죠. 


엄마는 자기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기 때문인지 주위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 보이고, 


딸은 그런 엄마와 함께 살다 보니 어떤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배울 기회도  없었죠. 


두 사람 모두 이제까지 봐 왔던 영화들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주인공에게 부여될 법한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있지 못한 캐릭터였어요. 


한마디로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서 주인공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상당히 힘든 그런 캐릭터였죠. 


그래서 영화를 본 후 저는 이 엄마가 딸을 계속 키우도록 내버려 둬도 괜찮은지, 차라리 국가가 개입을 해서 뭐가 옳고 그른지 딸에게 교육하는 게 


낫지 않은지 고민하게 되었죠.  


<어느 가족>에서는 이와는 다르게 상당히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부모가 나와요. 


이 사람들은 친부모가 아니라 버려진 혹은 학대받는 아이를 데려와서 키우는 양부모인데도 아이들에게 상당한 애정을 쏟아요. 


문제는 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도둑질을 시킨다는 거죠. 


아버지는 이미 키우고 있는 아들과 죽이 척척 맞아서 수퍼마켓 같은 데서 능수능란하게 도둑질을 합니다. 


이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 있기 때문에 먹을 것이나 생활용품을 훔치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오히려 자기가 가진 걸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죠. 겨울에 어린 여자애가 추위에 벌벌 떠는 걸 보고 데려와서 


밥도 먹이고 옷도 입히고, 매 맞고 학대받는 집에 차마 아이를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자기들이 먹고 살기 힘든데도 여자애를 돌보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부모는 결국 그 여자애도 도둑질에 가담시키죠. (도둑질은 아버지 담당이긴 하지만 어머니도 아이들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걸 묵인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하는 스포이므로 글씨를 하얗게 만들었어요. 마우스로 긁으면 글자가 보입니다. ^^


그런데 아버지와 둘이서는 아무 생각 없이 도둑질을 잘 하던 아들이 철부지 여자애가 자기를 똑같이 따라하며 도둑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갈등하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여자애는 도둑질을 시키지 말고 자기랑 둘이서만 하자고 반항하지만, 아버지는 여자애가 도둑질을 하기엔 아직 어리긴 하지, 그러며 잠시 물러설 뿐  


자식들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걸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아버지는 나중에 자기 입으로 말하듯이 도둑질 말고는 자식들에게 가르쳐 줄 게 없는 사람이에요. 


나중에 돈이 좀 생겼는데도 여전히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도둑질을 하러 갑니다. 이제까지 해 왔으니까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하는 거죠. 


결국 아들은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 밑에 있으면 계속 도둑질을 하게 될 것이고, 자기가 도둑질을 그만두지 않는 한 자기를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이 여자애도 계속 도둑질을 하게 될 것임을...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 아들은 어떤 결심을 하게 되죠. 


관객은 영화의 시작부터 이 가족을 상당히 동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더욱 이 가족이 무사하기를 응원하게 되죠. 


거의 영화의 끝까지도 관객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과연 이 부모가 그렇게 대단한 잘못을 한 것인지, 정말 나쁜 사람은 여자애를 학대한 친부모가 아닌지, 


친부모에게 돌아가는 게 과연 여자애한테 좋은 일인지, 남자애가 이 양부모와 결별하고 양육기관에서 살아가는 게 좋은 일이지...  


그런데 오늘 그냥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에 일어나는 나쁜 일의 대부분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겠다 라고요. 


처음부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려고 작정하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내 형편이 이 정도로 안 좋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이 정도 피해를 주는 건 괜찮겠지, 다른 사람은 이런 커다란 잘못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은 그에 비하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요. 


그리고 우리에게 나쁜 일을 하라고 시키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었던 사람, 나를 믿고 중요한 일을 맡겼던 사람... 


적어도 나의 삶 속에서는 좋은 사람이어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나쁜 일로 뛰어드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가족일 경우, 부모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부모로 인해 내가 도둑질을 하고 있고 내가 도둑질을 하는 걸 보면서 나의 동생 역시 도둑질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역시 아래는 스포라 마우스로 긁어야 보여요. ^^) 


이 영화에서 아들은 여동생의 도둑질을 보면서 자기가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자기가 하는 나쁜 일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애정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긋나게 한다는 걸 깨달은 후 


아들은 도둑질을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되고 도둑질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그 일에 물들어버린 부모와의 결별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가 아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떠나는 아들을 이해할 거예요. 


그런데 여전히 문제는 남죠. 친엄마에게 돌아간 그 여자애는 더 이상 도둑질은 안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떤 사람으로  


변해갈지 알 수 없어요. 그 남자애의 결단으로 인해 이 여자애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 걸까요? 



그나저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도대체 아역 배우에게 어떻게 연기 지도를 하는지 궁금해요. 


아역들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실제 그런 상황 속의 아이들로 보이거든요. 


요즘 딱히 볼 영화가 없어서 고민이신 분은 이 영화를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참고로 이 영화의 예고편은 안 보고 가시는 게 좋을 듯... 글을 써 놓고 영화의 내용을 너무 많이 말한 게 아닐까 걱정돼서 예고편을 찾아봤는데 


제가 이 글에서 말한 건 예고편 내용의 3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네요. ^^) 


저는 좀 있다 <더 스퀘어>를 보러 갈 예정입니다. 이 영화는 201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네요. 


CGV가 칸영화제 수상작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이 영화에 대해서는 별로 좋지 않은 평도 있긴 한데 CGV 영화관람권을 한 장 더 써야하기 때문에 일단 가서 보는 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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