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대화...(순두부, 호의)

2018.10.23 07:03

안유미 조회 수:658


 1.어떤 녀석과 돌아오다가 순두부 집에 들렀어요. 사실 배는 고프지 않았어요. 하지만 때로는 그렇거든요. 술을 마시면 몸이 아니라 마음...영혼이 순두부찌개의 국물을 먹고 싶어하는 거죠. 내가 순두부를 한 숟갈 떠먹고 가만히 있자 같이 간 사람이 뭘 하고 있냐고 물었어요. 


 사실 나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거였어요. 순두부 국물을 한숟갈 떠먹은 걸로 나의 마음이 순두부찌개를 먹은 거니까요. 어쨌든 질문은 '뭘 하고 있는가'였기 때문에 대답했어요. 걱정하는 중이라고요. 이 천하가 내것이 될 천하일지...어떨지를 말이죠...



 2.요전엔 새로운 어떤 사람과 만났어요. 요즘은 여자를 만나면 일단 물어보곤 해요. 성추행해도 되는가...안 되는가를 말이죠. 그에게도 성추행해도 되는지 물어보자 그가 '성추행이 정확히 어떤 건데?'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대답했어요.


 '나야 모르지. 그걸 정하는 건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면...선생님에게 성추행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는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 거지.'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성추행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식사를 하고...뭐 쓸데없는 얘기를 했어요. 주식 얘기, 소설책 얘기, 아마노 요시타카 얘기 뭐 그런 거요. 그러다가 그가 한 소리 했어요. 다른 남자들은 손금을 봐 준다거나...뭐 그런 식으로 근거를 만들어서 스킨쉽을 시도하거나 한다고요. 그런 자연스러운 접근법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런 놈들은 매우 소름끼치는데.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겠어.'라고 대답하자 그가 다시 대답했어요. '성추행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대뜸 물어보는 게 훨씬 더 소름끼치지.'라고요. 하긴 맞는 말 같기도 했어요. 



 3.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는 건 5시까지 쪽지를 기다리겠다고 말해 놔서예요. 새벽 5시까지 글을 쓰면서 기다렸다가, 쪽지가 안 와 있으면 그냥 내리 자려고요. 글을 쓰다가 탭을 눌러서 듀게에 들어가 보니 쪽지는 안 와 있네요. 하지만 이왕 일기를 쓴 김에 끝까지 쓰고 자죠 뭐.



 4.휴.



 5.이제는 정말 뜸해졌지만...놀랍게도 아직도 작가로서의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작가 타이틀은 정말 내게 쓸모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닫곤 하죠. 왜냐면 작가로서의 나를 만나러 오는 여자들은 성추행할 수 없잖아요! 그래도 되냐고 묻는 것조차 안 되고요. 왜냐면 작가인 나는 진짜 나와 완벽히 분리되어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죠.


 어쨌든 만화는 그릴 것 같지 않으니 그들이 원한다면 남은 내용들을 몽땅 말해주곤 해요. 최종보스가 XXXXX라던가 사실 이곳은 XXX 후의 X이고 원래의 XX는 XX전에 XXXX던가...뭐 그런 걸 말이죠. 


 그런데 내용을 조금 말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 역시 안되겠어. 직접 봐야겠어. 나중에 직접 그리면 그때 볼 테니까 스포는 자제해 줘.'라고 말하곤 해요. 거기다 대고 너무 강하게 부정하면 좀 그래서...다시 그리는 건 힘들 것 같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강하게 되받아치곤 해요. 언젠가는 다시 만화를 그릴 거라고 믿고 있다고요.



 6.누군가는 이상해할지도 모르죠. '왜 만화를 보고 찾아오는 여자들은 성추행할 수 없다는 거지?'라고요. 그야 그렇겠죠. 작가로서의 명성같은 게 딱히 없으니까 사실 망칠 명성도 없잖아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여은성을 만나고 왔는데...'라고 시작하는 미투 저격이 올라와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요. 왜냐면 미투운동은 대상이 대중으로부터 빌린 힘이나 호감을 도로 빼앗기 위해 하는 건데 나는 가진 게 돈뿐이잖아요? 돈은 군중을 좀 선동한다고 해서 쉽게 뺏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나는 빼앗길 만한 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분석해 보자면 아마 내가 부수기 싫은 건 명성이 아니라(애초에 없으니까) 그들이 가진 기대감이겠죠. 그 기대감이 완전히...실체가 전혀 없는 대상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해도 그걸 굳이 부숴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물론 그건 그들을 위해서는 아니예요. 나는 기대감을 무서워하거든요. 왜냐면 모든 실망은 기대감으로부터 나오는 거니까요. 실체도 근거도 전혀 없는 기대감이라도, 그게 깨뜨려지면 실망감은 진짜니까요.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기대감을 가지면...최대한 연기를 해주는 편이예요.



 7.이런...졸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보니 벌써 7시 정도 됐네요. 아직까지 안 잔 김에 주식이나 보고 자야겠어요. 밤 11시쯤에 무등산이나 도쿄등심에 고기나 먹으러 가고요. 정확히는, 고기를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명이나물을 먹으러 가는 거지만요. 명이나물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고기를 먹는 거죠. 고기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명이나물을 먹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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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작가로서의 나를 만나러 오는 여자들에게도 장점이 있어요. 내게 밥을 사준다는 거죠. 나는 밥을 얻어먹는 걸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어떤 녀석은 지난번에 댓글에서 일방적으로 사주는 거냐고 비아냥대더라고요. 하지만 절대 아니예요. 나는 한 번 사주면 한 번 얻어먹어요. 한 번 얻어먹으면 한 번 사주고요. 듀게에서 번개를 칠 때도 한번 사주면 다음 번엔 반드시 얻어먹죠.


 하지만 역시 한 번 얻어먹고 한 번 사주는 게, 한 번 사주고 한 번 얻어먹는 것보다 더 좋은 거죠. 호의를 되돌려받는 것보다 호의를 갚는 게 더 기분좋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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