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이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다루는군요. 그걸 한 4분쯤 보다가 멈추고 갑자기 든 생각을 끄적여야 할 것 같아서 연속으로 글을 써요 ㅋ


이 감독의 작품을 총 네편, <송곳니>, <더 랍스터>, <더 페이버릿>, <킬링 디어> 보았어요. 그리고 작품들에는 하나같이 금기가 작동하죠. 뭔가를 하면 절대 안됩니다. 규칙을 어기면 안됩니다. <킬링 디어>는 이 금기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죠. 당신이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내리는 신벌을 받아라. 그런데 이걸 살짝만 옮기면 굉장한 코메디가 됩니다. 왜냐하면 금기에는 금기 나름대로의 논리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금기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면 금기는 금기로서의 의미를 잃고 그냥 찍어누르는 힘만 작동하니까요. <더 랍스터>도 되게 황당한 영화죠. 아니 왜 45일 안에 커플이 되어야 합니까. 그런데 금기는 절대적이어서 사람들은 거기에 진지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커플이 안되면 돼지가 되니까요. <송곳니>는 그런 금기의 힘과 목적이 적절히 어우러졌던 블랙코메디였던 것 같아요. 절대 집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금기를 세워놓고 아이들을 자기 멋대로 교육시킨다는 이 미친 가부장제는 그 자체로 국가와 독재의 방식을 은유하는 동시에 그 금기가 적용되는 부분들이 정말 시시하고 황당하니까 또 웃긴 거죠. 물론 섹스 씬들은 정말 끔찍하지만요.


<더 페이버릿>은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오히려 금기에서 힘과 목적 모두를 덜어내고 찍었던 영화 같아요. <더 랍스터>처럼 누군가와 짝이 되는 게 목적이고 그 금기에의 충성이 풍자하는 것은 <송곳니>처럼 국가권력입니다. 그런데 시시한 목적과 절대적인 힘이죠. 이 두가지를 섞어놓으니까 세상 웃기고 지저분한 세계가 되면서 국가와 그 운영자들이 세상 웃기지도 않는 인간들이 됩니다. 궁중암투라 하면 촛불이 일렁거리는 가운데 심각한 얼굴의 관료들이 어쩌구 저쩌구를 조용히 늘어놓다가 없애버리죠! 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결단이 이어지게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촛불이 일렁거릴때 레즈비언들의 애정행각이 펼쳐지잖아요. 어떻게 보면 여성간의 섹스와 성 그 자체를 아주 저속하게 다루면서 "그리하여, 그 날밤 여왕은 빠구리를 떴다" 같은 진지한 나레이션을 영화 내내 말하는 느낌이죠. 국가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여왕폐하에게 누가 더 정성스레 커닐링구스를 해주는가에 따라 국운이 결정된다 이런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남자들은 뭐 다르냐면 오히려 더 발정나있고 한심한 멍청이들이죠. 


<더 페이버릿>의 엔딩은 정말 역겨웠습니다. 사랑이라는 표피를 뒤집어 쓴 금기의 목적이 완성되자 결국 그 관계에서 허울이 떨어지고 오로지 금기의 절대적인 힘만이 남아서 작동하죠. 앤이 에비게일의 머리를 붙잡고 자신의 다리를 만지게 하는 그 장면은 영락없이 강간입니다. 다만 남성기만 빠져있을 뿐이죠. 금기를 초월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에비게일이 그 절대적 힘에 굴복해서 억지로 다리를 만지는 동안 토끼들이 오버랩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참 연약하고 시시한 동물들과 자신을 겹쳐보았던 걸까요. 혹은 자신도 애완동물의 처지로 전락했다는 걸 깨달았을까요. 아니면 귀여운 토끼들을 떠올리면서 억지로 현실을 잊으려 한 것일까요. <송곳니>의 결말만큼이나 찝찝합니다. 앤은 계속 그렇게 우울하고 총애를 거둔 채로 에비게일을 도구로 삼을 테고, 에비게일은 권력쟁취의 기쁨을 더는 누리지 못할 테고요. <더 페이버릿>은 기존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들과 순서를 거꾸로 가는 것 같아요. 절대적인 금기가 세워져있고 거기에 적응하거나 부적응해나가는 인간들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마지막에서야 금기가 제대로 세워지고 거기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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