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영화현장이 다 이랬죠. 그나마 자본이 어느 정도 투입되는 소위 메이저급 영화들은 덜 그랬지만

독립영화쪽이 특히 심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독립영화하면 비타협적 순수성? 예술성? 독창성? 등등 뭔가 힙스러운 감성을

많이 떠올리는데 실제로는 그런거 좆도없는 영화들도 많구요. 현장은 그 영화보다 더 좆같습니다.


보통 독립영화는 감독이 자기 의지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투자를 받지 못하니 일단 제작비가 후달립니다.

그래도 나름 실력이 있거나 아니면 빽이 좋은 감독들은 어디어디서 제작지원금을 받는 경우도 있구요.

이빨이 좋은 감독들은 여기저기 구라쳐서 돈을 긁어오기도 합니다. 차마 투자라는 말을 못쓰겠음.


감독 대부분 제작을 겸하고 있어서 PD는 그냥 이름뿐이고 현장분위기나 잘챙겨주면 그걸로 끝입니다. 대신에 프리때는

이거저거 세팅에 좀 바쁘긴 하구요. 그나마 이 PD가 인맥이 좋아야 스탭 수급이 쉽습니다.

대부분의 스탭은 감독, 스탭의 인맥으로 꾸려집니다.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돈이 없으니깐.


조감독이나 연출부 세컨까진 그래도 현장경험이 좀 있는 친구가 붙어주고 제작부들도 어찌어찌 일 좀 배워보겠다는

친구들로 채워집니다. 연출,제작부는 그냥 까놓고 몸으로 뛰는 파트이기 때문에 큰 기술도 필요없고 해서

영화과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친구들, 이쪽 업계 기웃거리는 친구들이 꼬시면 잘 넘어옵니다. 돈을 안줘도 일을 하니까요.


미술팀은 최소 인원만 데려옵니다. 이쪽도 별 기술없이 몸으로 떼우는 식이 가능하니 보통 연출, 제작부들이 멀티를 뛰게되죠.


문제는 촬영, 조명, 음향. 이런 기술팀은 기존현장의 인력을 데려오는수밖에 없습니다. 이 팀들은 연출, 제작부 모으듯이 사람 꼬셔서

될 수준이 아니죠. 감독이나 PD 인맥으로 섭외를 합니다. 조명팀은 장비가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기존 현장팀이 그대로 오고

촬영팀은 기존 현장팀이 오거나 그렇지 못하면 촬영감독이 자기 후배들을 데려다 팀을 꾸립니다. 음향팀도 마찬가지구요.


연출, 제작부는 어찌어찌 무급 내지는 밥값만 챙겨줘도 되지만 그래도 이 기술팀들은 외부로부터 고용을 한 입장이라 최소한의

임금과 장비대여료 정도는 줘야합니다. 메이저영화에서 입봉은 못한 퍼스트들이 독립영화에서는 촬영감독, 조명감독, 녹음감독으로

뛰는데 이는 자기 오야들이 "노니 뭐하노? 현장 가서 한바리 해주고 온나"식으로 보내서 온 경우가 많습니다.

메이저영화에서 뛰는 감독들이 대가리 총맞지 않은 이상 그 돈받고 현장에 올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인력과 장비를 싼값에

보내준건 참 고마운 일이긴 합니다. 덤으로 발전차도 싼값에 어찌어찌 쇼부쳐서 불러는 옵니다.


자 이제 프리는 끝났고 혼방 들어가면 되는데 현장의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연출, 제작부들이 이때부터 죽어나기 시작하고

결국 현장에서 도망치는 스탭들도 발생하죠. 메이저영화 현장에서는 그래도 돈과 시간에 대한 개념이 좀 충실한 편이라

그럭저럭 계약이 지켜지는데 비해 독립영화쪽은 이상하게 이게 잘 안지켜집니다. 초반에는 나름 기술팀들도 좋은 작품 해보겠다며

의욕적으로 일하지만 돈없고 경험 부족한 연출, 제작부들이 일하는 현장이다 보니 이런 저런 불편과 짜증이 몰려올 수 밖에 없죠.


원래 연출부든 제작부든 촬영부든 조명부든 각자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협업을 해야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만 이런 독립영화

현장에선 어디까지나 촬영부, 조명부를 모셔온 입장이라 연출, 제작부들이 촬영, 조명부 눈치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나마 조명부는

덜하지만 촬영부는 직접 카메라를 잡는 부서이다 보니 그 권한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이 친구들이 카메라 놔버리면 현장이 그냥 올스톱이니까요.


밥, 간식부터 장비이동까지 여러가지로 살뜰히 맞춰줘야하고 중간중간 골질을 부려도 어떻게든 달래서 프로덕션 진행을 시켜야합니다.

 

헌데 감독이 문제라서 답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죠. 분명히 콘티가 있는데 그거대로 안찍고 현장에서 한컷을 각도 마다 다 땁니다.

헐리웃처럼 동시에 카메라 여러대를 돌려서 나중에 그 쇼트를 잘라다 붙이는게 아니라 그냥 한컷을 따로 여러번 찍는거죠.

이럴거면 대체 스토리보드북은 왜 만들어놨는지? 연출에 자신이 없으니 일단 여러 각도로 많이 찍어놓자는거죠. 필름 촬영이었으면

꿈도 못꿀짓인데 디지털세상이 되니 참 이런 일도 벌어집니다. 또 영화의 기술적 이해는 쥐뿔도 없으면서 자기 예술적 감성만 충만하다보니

계속 기술팀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나중에 저들이 감독 무시한다고 삐지고 아무튼 말도 못합니다. 촬영팀이나 조명팀 맘에 안드는거 있다고

감독이 남의 식구?인 촬영부, 조명부에게 직접 뭐라는 못하니까 애꿎은 연출부만 갈구고 현장 분위기는 점점 개판이 됩니다.


배우 섭외를 어떻게 했는지 단역배우들이 발연기가 심해 찍었던 씬을 통채로 들어내기도 하고 날씨나 이런 저런 문제로 촬영이 지연되다 보니

결국 예정된 회차 및 보촬회차까지 오고도 다 못찍어서 기술팀들 짐싸서 촬영 째버리고 주연배우 매니저는 배우 스케줄 문제로 배우 데려가는등

촬영막바지에는 거의 서로 원수가 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스탭들은 스탭들대로 스트레스니까 촬영끝나면 숙소에서 매일 술빨고 남자,여자 모여있다보니 또 이런 저런 사건도 터지고 소문도 돌고

뭐 그런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나중에는 보조출연자들도 엮이더군요.


그렇게 촬영끝나고 후반작업은 어찌나길게 하는지 제대로 개봉이나 하려나 의문이 들더군요. 뭐 완성해도 제대로 배급라인을 못타는게 독립영화의

숙명이니 그건 그거대로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사재털고 남 등골빼서 영화만들어서 네이버영화에 자기 감독 필모 하나 올리는건 좋은데

나중에 영화제에서 만나니 감독이랍시고 제법 거드럭거리더군요. 거기다 공짜술, 공짜밥은 뭐그리 밝히는지 참....


이런식으로 한편이 끝나면 스탭중 일부는 영화판을 떠나고 새로운 인력(호구)들이 또 유입이 되더군요. 보통 스탭들이 가장 자존감이 떨어질때가

작품 끝내놓고 쉴때입니다. 현장에선 일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한편 끝내놓고 다시 사회로 내던져지면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처량한지를 깨닿게 되니까요.

쥐꼬리나마 받은 페이는 현장 일하면서 술먹느라 남은게 얼마없고 만날 사람도 별로 없거든요. 결국 비슷한 처지인 다른 영화하는 사람들이랑

계속 어울리게 되더군요. 독립영화사에 적을 두고 사무실로 출근은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할 일은 없는 그런 상황. 그렇다고 제대로된 시나리오를 하나

쓰는거도 아니고 그냥 영화인들끼리 모여서 입으로 영화찍고 하는 그런 일상.  결국 그 촬영, 편집 알바같은 일로 버티거나 그 바닥을 나오거나 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쩌겠습니까?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이 자본친화적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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