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체 누가 이 판을 지휘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매일 이 시각만 되면 조국 뉴스가 업데이트되고 있어요. 며칠째 말이죠. 그래서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을 잘 수가 없네요. 


 이 시각쯤에 조국 기사를 띄워놓고 아침에 조국이 사퇴를 하는지 안 하는지 테스트하는 건지...조국이 사퇴를 안 하면 이 사이클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지 궁금하네요. 



 2.이전 글에서 정치를 도박장에 비유했는데, 정치판과 카지노는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카지노에만 발을 들이면 왜 그렇게 멋지던 사람들이 추해질까요? 왜냐면 카지노에서 A와 B가 붙으면 이기는 건 A도 B도 아니거든요. 이기는 건 카지노죠. 사람들끼리 도박을 하면 도박이라고 하는 악마가 늘 이기는 거지,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니까요. 그야 승패는 정해지겠지만 도박을 마친 사람들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아요.


 자기 분야에서는 몇십년간 고고한 절대자였던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오는 순간 카리스마가 하락해버리는 일은 늘 있어왔죠. 흠잡을 데 없는 학자였던 정운찬에게 검증이 들어가니 하루 아침에 사람들에게 욕먹고, 그리스도처럼 칭송받던 안철수는 초딩(...)이 되어버렸어요.


 이미 지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안철수의 포스는 엄청났어요. 2012년에 여론조사를 돌리면 문재인+박근혜를 동시에 발라버리는 조사결과도 많았으니까요. 그 콧대놓던 도올이 안철수를 '하늘'이라고 칭송했었을 정도고요. 아무도 알지 못했던 박원순이라는 사람은 안철수와 몇십분간 대화한 것만으로 서울시장을 세번째 해먹고 있죠. 


 그러나 그들은 모두 김수겸과 비슷한 존재였던 거죠. 김수겸이 가장 포스가 있을 때는 벤치에 앉아있었을 때니까요. 아니 어쩌면 그들을 김수겸에 비유하는 건 김수겸에게 실례일 수도 있겠네요. 코트에 나온 김수겸은 얼마간의 지배력은 보여줬잖아요. 



 3.하지만 현실정치라는 카지노에 발을 들인 거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적들과 싸우는 데 긴 시간을 할애해야만 해요. 그리고 그 승부에서 이기든 지든, 승부가 끝났을 때는 카지노에 알맞는 괴물이 되어 버리고요. 


 이건 참 문제예요. 역량 있는 사람들에겐 그들의 역량을 펼칠 만한 권력이 빨리 쥐어지면 좋을텐데, 그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승부 자체에 너무 긴 시간과 역량이 소모된단 말이죠.


 게다가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건 카지노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회한 승부사들이예요. 권력으로 좋은 일을 하는 데엔 더이상 관심없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승부사들은, 카지노에서 살아남는 법에는 능해요. 승부에서 이기지 못하면 개평이라도 받아가려고 끝끝내 남의 발목을 잡는 것도 서슴지 않고요. 그런 놈들을 몇년쯤 상대하다보면 원래 착했던 놈들도 카지노에 어울리는 괴물이 되버리고 말죠.



 4.휴.



 5.약간 얘기가 샛길로 가네요. 조국 얘기를 하려는 거니까 조국 얘기로 돌아가죠.


 어쨌든 위에 썼듯이 정치판은 카지노와 비슷해요.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큰 권력을 따가고 싶으면 일단 테이블에 앉아야 하죠. 한데 문제는, 승부가 벌어지는 테이블에 앉아보는 것만도 엄청 어려운 일이예요. 그런 테이블에 앉는 수준의 사람이라면 본인 인생에서 승리를 거듭해 온 사람이거든요.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를 거듭해 온 사람들끼리 자신이 가진 모든 칩을 걸고 승부를 벌이는 곳이기 때문에 정치판은 강원랜드와도 같은 거예요. 자신의 필드에서는 고고한 절대자였던 사람들이 더 큰 승부를 벌이기 위해, 자신의 필드에서 나와 모이는 전쟁터죠. 


 어쨌든 그런 레벨의 테이블에 앉으려면 자신의 필드에서 평생 모으고 모아온 칩을 가지고 와서 테이블에 올려놔야 해요. 조국도 제법 많은 칩을 가지고 강원랜드를 찾아온 사람이죠.



 6.그래요. 조국은 지난 10년동안 칩을 많이 모아왔죠. 한데 정치판의 칩이란 것은 실체와 허상이 뒤섞여 있어요. 왜냐면 카지노에서 상대를 압도적으로 밀어버리려면 본인의 역량만으로는 안 되거든요. 본인의 역량만이 아닌, 대중의 열망과 선망을 자극할 만한 판타지를 입혀서 뻥튀기된 칩까지 가지고 있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칩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는거죠.  


 적수공권으로 성공신화(적어도 당시에는)를 쓴 이명박, 반신인 아버지의 신성을 물려받았다는 박근혜,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인생을 살아온 문재인, 의학 공부를 하면서 심심풀이 삼아 혼자서 전세계의 바이러스를 상대했다던 안철수...본인의 스펙만이 아닌, 그때그때의 시기마다 군중들에게 신화적인 존재로 포장되었던 사람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죠. 저 사람들 모두가 각자 최고의 임팩트를 발산하던 시기에는 카지노에서 누구든 밀어버릴 만한 압도적인 칩을 지니고 있었어요.


 하지만 조국은 어떨까요...흠.



 7.그런데 여러분을 도박을 해보셨나요? 나는 약간은 해봤어요. 도박을 해봤다면 알겠지만 당신이 도박장에서 판돈을 잃는 순간부터 당신은 일어날 수 없게 돼요. 왜냐면 돈을 잃은 채로 거기서 일어나면 당신은 방구석에서 배를 긁고 있는 듀게 회원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는 거거든요. 방구석에서 배를 긁고 있는 듀게 회원은 적어도 돈이라도 잃지 않았으니까요. 그 사실이 당신을 매우 분노하게 만들겠죠.


 그리고 거기서 계속 돈을 잃다 보면 10시간 전의 당신이 그리워지고,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돼요. 10시간 전의 나는 사실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요. 그 어떤 경우에도, 도박에 손댄 나보다는 도박에 손대지 않았던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강원랜드는 그것을 배우게 되는 곳이죠.


 그리고 하나 더. 10시간 전의 나를 그리워하는 나는 아직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때는 아직 돌아갈 수 있거든요. 만약 1년전의 나를 그리워하거나 5년 전의 나를 그리워하는 상황에 처해버린다면? 그때는 돌아갈 수조차 없게 되어버리거든요.


 만약 당신이 도박장에 갔다가 10시간 전의 당신이 그리워진다면, 당장 일어나야 하는 거죠. 왜냐면 아직은 행복한 사람이니까. 당신이 노력하면 인생에서 10시간은 되돌릴 수 있지만 5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아 이런, 또 말이 샜네요. 조국 얘기로 돌아가죠.



 8.한데 지금 조국은 그런 레벨 낮은 테이블에 앉아있지 않아요. 테이블에 앉기 전엔 몰랐겠지만 그는 지금 테이블에 자신의 칩만 올려놓은 게 아니거든요. 그가 테이블에 앉자 자신의 아내, 자신의 딸, 자신의 과거와 미래, 자신의 동생의 채권, 평판...이 모든 것이 몽땅 테이블에 올려놔져버렸어요. 강제적으로요. 물론 본인이 그러려고 한 건 아니겠지만 '어 잠깐, 나는 테이블에 이것까지는 올려놓지 않았는데? 나는 내 인생의 칩만 올려놓은 줄 알았는데?'라고 당황할 만한 상황이 진행중이죠. 조국이 테이블에 앉자 강제적으로 가족의 인생까지도 테이블 판돈에 올려놔져버린 형국이예요.


 사실 그동안 청문회에서 비리가 드러난 사람들은 그냥 사퇴하면 유야무야 묻혀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누구누구의 아들의 병역이 수상하다더라...누구누구가 세금을 안냈다더라...같은 것들이 드러나도 청문회가 지나가면 적당히 면피되는 경우가 많았죠.


 한데 어째 이번엔 좀 다른 게, 조국의 딸은 진짜로 학력이 나가리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조국의 동생은 80억 채권을 양도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게다가 조국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 아우라(이미지)가 벗겨져나가고 있고요. 


 이미지가 좋은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군중이 그것을 상환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 참 피곤해지는 거...그게 이미지의 문제거든요. 



 9.위에 안철수라던가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예로 든 이유는 그들이 훌륭해서가 아니예요. 왜냐면 그들에겐 확실한 실체가 있거든요. 안철수는 실제로 백신을 만들었고 이명박은 실제로 사장을 해먹었고 박근혜는 실제로 박정희의 딸이예요. 설령 그들이 카지노에서 진다고 해도 실체적인 스펙은 여전히 실체예요.


 한데 조국의 문제는, 애초에 그동안 모아온 칩부터가 문제삼아지고 있다는 거죠. 이제 와서 군중들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국은 그동안 블러핑으로 칩을 모아온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지난 10년동안 트위터에서 입을 터는 걸 잘했지 생각해 보면 실제로 한 건 없어보이니까요. 군중들 입장에선요.


 아무리 정치판에서의 칩이 허상과 실체가 뒤섞여 있다지만, 조국의 문제는 그 칩에 허상의 비중이 너무 크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조국이 이기고 있는 동안에는 괜찮았겠죠. 하지만 한번 테이블에서 털리기 시작하니 군중들은 조국이 칩을 획득한 과정까지도 문제를 삼는 중인 거죠. 그동안은 그냥 믿고 넘어가준, '육법당에서 법조인이 되기 싫었다'라며 사법고시를 안 친 것도 조롱당하기 시작했고요. 사법고시는 안 쳤지만 석사장교를 한 건 분명 앞뒤가 안 맞으니까요.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그동안 멋지게 커버쳐온 모든 게 하나하나 문제삼아지고 있는 중이예요.


 

 10.잘 모르겠어요. 조국은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요? 민정수석을 마치고 멋지게 서울대로 금의환향에서 교수로 복귀하는 걸로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요. 법무부장관이 된 자신이 더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조국이 공격받는 걸 보며 느끼는 중이예요. 그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가진 게 많았던 사람인지 말이죠. 딸에게 만들어준 훌륭한 스펙...이리저리 돌려쳐서 확보해놓은 상당한 자금...멋진 이미지...민정수석까지만 하고 폼나게 돌아갔다면 이 모든 브랜드가 난도질당하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요.


 하지만 뭐, 인간은 도박장에서 무언가를 잃었을 때 깨닫게 되니까요. 10시간 전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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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가 잘 안 되네요. 이번 사태를 보며 정치판이라는 카지노에서는 칩의 양도 중요하지만 칩의 순도도 중요하구나...라고 주억거리는 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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