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미안하지 않아서 미안..

2019.09.27 18:23

무도 조회 수:494

"생각해 보면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넌 참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

"미안할 짓을 안 한 거지"

"뭐? 미안한 행동을 하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한다고?"

"내가 미안할 행동한 거 있으면 하나만 얘기해봐"

"..."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고 미안할 짓을 하지 말란 얘기가 있습니다. '미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안이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미안의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편하지 않다" 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다면 그 느낌도 미안함입니다. 


미안은 단어 자체에 잘못이 들어있는 '죄송'이나 '사과'와는 다릅니다. 때로 자신은 전혀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길 수 있는 마음이 미안함입니다. 예를 들어 형편이 어려워 돈을 빌려달리고 하는 친구에게 빌려주지 못할 때 드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어려운 건 전혀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동대구역 계단에서 갓난 아이를 안은 채 구걸하는  여성을 그냥 지나칠 때 드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그녀가 힘든 건 내 탓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가 돈을 넣어주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계속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선한 본성의 언어적 표현입니다. 선한 본성이란 상대방의 고통이나 근심을 마치 나의 일처럼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사이코패스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본성이 점점 퇴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접촉사고가 발생하면 절대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놀란 상대방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먼저 미안하다고 얘기하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비를 가리는 데 불리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디.


미안하지 않으려는 강박이 심해지면 잘못된 결과에 대한 원인을 상대방에게 다 넘기려는 경향으로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미안할만한 잘못을 하지 않아. 그러니까 이 문제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너에게 있는 거야.' 투사가 미성숙한 방어기제라면 미안은 성숙한 방어기제 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회가 좀 더 살만해지고 성숙해지려면 우린 좀 더 미안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돈 벌어서 내가 잘 먹고 잘사는 데 뭐가 문제야라고만 생각하지말고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부모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부모에게, 부부는 서로서로에게 미안해야 합니다. 


미안은 선한 행동의 시작입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야 성숙한 행동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있어야 이타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다시 말하지만 미안은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미안은 공감이고, 배려입니다. 그러니까 미안할 짓은 적을수록 좋지만 미안한 마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니가 미안할 행동한 거 있으면 하나만 얘기해 보라고? 미안할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미안할게 없다고 말하는 그거. 그게 미안한거야. 미안하지 않은 게 미안한 거야."

"지금 말 장난해?! 암튼 그렇게 원하면 얘기해줄께. 미안하지 않아서 미안~"


이런 무쓸한 허영글도 미안~요.

----------------------------------


몇 달 전 다른 커뮤에서 본건데 요 며칠 날이 서 있었더니 이 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좀 올드한 세대라 한자 단어는 그뜻을 곰곰이 새겨 보는 습관이 있는 데

왜 미안이라 하지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애매하던 부분을 저 글이 잘 설명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여기는 비가 오네요 ㅎㅎ 좋은 주말 맞으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276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09355
110723 플레이스테이션5,2020년말 발매예정 [5] 룽게 2019.10.10 460
110722 이런저런 잡담...(부동산, 결혼) [1] 안유미 2019.10.10 560
110721 검찰은 왜 패트 수사는 질척 거릴까요.. [5] 가라 2019.10.10 645
110720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4] 가끔영화 2019.10.10 302
110719 오늘의 편지지(스압) [2]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10.10 177
110718 어제 검찰은 서지현 검사 사건 관련 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3] 좋은사람 2019.10.09 1014
110717 패스트트랙 시간표, 유사언론인 유시민, 결국 얼굴이 중요하다 [13] 타락씨 2019.10.09 1490
110716 선택적 팩트 체크 [1] 왜냐하면 2019.10.09 652
110715 조커-모방범죄..?(스포일러) [41] 메피스토 2019.10.09 1956
110714 조커 [4] 멜키아데스 2019.10.09 814
110713 핵사이다 역사학자 전우용 [3] 파이트클럽 2019.10.09 1023
110712 [넷플릭스바낭] 초중딩용 환상특급 '오싹한 이야기' 시즌 1을 다 봤습니다 [4] 로이배티 2019.10.09 806
110711 촛불집회 어디까지 가봤니 [3] 도야지 2019.10.08 499
110710 유시민이 검찰과 KBS 위에 쏘아 올린 똥폭탄 [44] ssoboo 2019.10.08 2375
110709 애플 지원은 서비스 상담 중 녹취를 허용하지 않는다는군요.. [7] Joseph 2019.10.08 859
110708 이종구 한국당 의원, 국감 참고인에 "지X. X라이 같은 XX" [3] 좋은사람 2019.10.08 646
110707 "멜로가 체질" 재밌나요? [12] 왜냐하면 2019.10.08 1372
110706 오늘의 요정 핑크 (스압) [5]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10.08 459
110705 새 날 [2] 칼리토 2019.10.08 428
110704 새벽의 불안 [17] 어디로갈까 2019.10.08 9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