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N번방 사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정리되더군요. 여기에는 몇 가지 가정이 들어갑니다. 첫 번째로, N번방 관련자의 다수가 초중생이라고 할지라도 소수의 나이든 사람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런 비중도 아닐꺼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엄밀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나의 썰일 뿐입니다. 이런 부분을 정제하여 사실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겠지요.


많은 경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선이란 '재미있는 것이냐, 아니냐'로 판별됩니다. 중규모 이상의 커뮤니티에서는 보통 이미지 파일 업로드라는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유머 게시판'을 따로 소유합니다. 디씨인사이드의 모든 겔러리는 평등하게 특출나고 재미난 글을 힛겔로 보낼 권리가 있었습니다. 루리웹이나 인벤, 그 이전의 플포(대부분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유머 게시판은 있었고, 디시인사이드에서 구성해낸 정치인들의 합성으로 이루어낸 유머는 루리웹의 북유게(정치 유머 게시판)에 정착하게 됩니다. 심지어 '일베' 즉, 일간베스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감당할 수 없는, '베스트로 갔지만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글들을 옮겨놓는 곳이었습니다. 오늘의 유머나 웃긴대학은 명칭만 봐도 딱히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저는 유머가 어떠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유머를 보고 웃을 수 있느냐 없느냐, 유머를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 어떤 행동이 (비)웃음거리로 치부되느냐 등은 개인을 사회화시키는데 주요한 통로가 되며, 그런 사회화를 정면 대응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매우 불편한 발언들 들었는데도 남들이 다 웃는다면, 자신만 정색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이러한 재미지상주의는 유머비평을 지칭하는 단어로 '씹선비'라는 말을 유머 커뮤니티가 만들어내게 하기까지에 이릅니다. (심지어 초기에 '선비'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쓰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적 농담들이 유머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서브컬쳐와 주류를 막론하고), 우리가 함께 유머를 향유하는 이들에게 가르치는건 다음과 같습니다. '성적 대상화에 어떻게 말하건 재미난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비웃을만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투브와 그 이전 스트리밍 공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단 거기까지 가기에 앞서.


어떤 조작의 난이도와, 그 조작의 엄중함은 실제로는 같지 않으나 비유적으로는 같다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검색창에 검색어를 타이핑한 후 엔터를 치는데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적으므로 그 행동은 딱히 중한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버튼 한 번으로 가능한 핵폭격을 여러 절차를 거쳐 엄밀하게 접근하게 하는 방식이 그 중함을 의미하는듯 보입니다. 이번 박사방에 관련된 공익의 경우, 어떤 사적인 개인 정보를 검색한다는 것을 검색창 검색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는게 아닌가 의심스럽더군요.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실시간 영상의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채팅창으로 구성된 서비스에 익숙한 이들이 이 사태에 일조하지 않았나 의심하는 바입니다.


인터넷 방송이 다루는 것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실력이 좋은 이들이 자신의 게임을 송출하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모여 '채팅'을 치며 노는게 제겐 익숙합니다. 벌써 대략 십여년 전에도 방송인들과 그 방송이 진행되는 도중에서 다함께 채팅을 치는 문화는 매우 익숙했고, 그런 개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류가 강해질 당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그 문화를 그대로 가져가 공중파에 정리하여 보여주기도 했었죠) 방송 화면은 보통 2분할되어, 생방송 컨텐츠와 실시간 채팅창으로 이루어집니다. 보통 채팅에는 십 여명부터 만 여명까지 그 수가 다양하고, 어찌 되었든 개인의 발언이 제대로 읽히기도 전에 넘어가기 일쑤이죠. 앞에서 콘서트하는 사람과,시끄러운 시장판 같은 관람객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중에는 도네이션이 생겼지만) 재치있는 발언을 한 사람의 글은 방송인에게도 읽히며, 거기 함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머 코드'를 전달하게 됩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그대로 가져다가, 재치있는 채팅을 뿌려주었습니다.)


이러한 창발적 멋진 말 셀럽은 실시간에 가깝게 많은 이들을 감탄시키며, 어디서 나왔는지 추척하기 힘든 단어와 문장들을 유행시킵니다. 보통은 댓글이라는 그보다 느린 방식으로 언어를 점유해왔으나, 방송인이 직접 밀거나 아니면 익명의 관람자에 의한 말이 빠르게 인터넷 공간을 점유하는걸 가끔 목격합니다. 그는 빠른 채팅 '리젠'을 뚫고 만들어진 다윈주의적 결과이기도 하구요. 초등학생들의 유행어 일부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볼만 합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여러 방송인들이 있었으며, '채팅창을 심하게 관리하거나 관리하지 않는' 방송인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관리하지 않는 채팅의 경우, 쌍욕과 성적인 농담, 정치적 발언과 방송인을 향한 가학적 메세지 등으로 가득했고, 어떤 경우 그런 '심하게 관리되지 않는 채팅 커뮤니티' 자체를 컨텐츠로 두는 이들도 있었죠.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일 대 다수인 상황에서 조금만 잘못을 하면 방송인에게 가학적으로 구는 관람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방송인과 101명의 오지라퍼라고나 할까요. 페이커(세계에서 제일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을 잘한다고 알려진)에게도 훈수를 두는 관람자가 있을 지경이니까요. 정신적으로 허약한 방송인들은 갈수록 고통스러워했고, 일부 관람자들은 더욱더 가학적으로 굴고, 방송을 결국 접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이는 즐거움과 함께 오는 것이었습니다. ( 당장 지금의 아프리카, 유투브, 트위치 등의 방송에서도 채팅창이 끔찍해서 보기를 그만둔 방송이 많습니다. )


가끔 유투브에서 공중파 뉴스 등이 스트리밍 될 때, 채팅창을 보신 적이 있나요? 언제나 난장판 임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게임 채팅과 랜덤 채팅의 아우라 속에 우리가 만들어낸 채팅 문화는 새로운 개념을 아이들에게 주입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이고 험한 말을 할수록 군림할 수 있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대스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요. 그에 미루어봐도 저는 그런 생각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어떤 가학행위가 다뤄지고 있는 실시간 영상을 보며 마치 '철구'의 피학적 행위를 보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즐기는 관람자들을요. 충분히 다른 것 앞에서 그래왔으니까요. (게임을 못하면 못할수록 즐거워하는 관람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범죄자가 되는 방식을 에스컬레이션 쪽으로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범죄자 성향이 있었다거나, 가정이 불우하다거나 이런 것과 관계 없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쪽을 믿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 욕망의 원심력에 의해 누구나 일탈을 꿈꾸며 어느 정도 일탈에 몸 담기도 합니다. 하는 말의 대부분이 욕설이기도 하고, 뭐든 시키는 것의 반대로 한다던가, 물건을 훔치거나 남의 것을 파손시키기도 합니다. 어쩌면 영영 그 바깥으로 튕겨저 나가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적 압박이나, 자기 객관화라는 구심력에 의해 되돌아 옵니다. 최근에는 원심력이 더 강해진 것인지 아닌지 혼란스럽습니다.


이전의 어떤 이유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들을 모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일은 조율되고, 점심 식사를 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걸 듣는데, 아이들의 일탈 시점이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서로 공감하며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전에 그런 일들은 중2 - 중3에서 자주 일어났었죠, 그런데 요새는 중1에서 하다가 맙니다'하면, 초등학교 교감들이 '맞아요, 요즘 5 - 6학년들 사이에서 일탈 행위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골치입니다' 등의 이야기였죠. 개인적으로는 또래집단의 정보 수집력과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속화되어 아이들의 일탈력이 증대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소규모 커뮤니티가 구성하는 가상적 또래집단에서 구현되는 공동체 윤리를 다들 받아들이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온/오프 채팅방과 그 문화가 (게임에 귀속된 채팅도 포함하여) 아이들을 악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가속은 아이들이 했을지언정, 방향은 어른들이 잡아주었겠지요.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당장 다분화된 어른들의 커뮤니티별 정체성과 윤리를 다 잡을 길도 없을 뿐더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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