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문제의 기사 제목이 이거였습니다.


[차기 정권과 거래?…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조사]


이건 뭐 누가 봐도 문재인이 뭔가 뒷거래를 해서 세월호 인양을 '고의적으로 지연' 시켰다는 얘기잖습니까. 어째서 문재인이 한참 전부터 차기 정권 확정이었는지는 넘어갑시다


기사 본문의 내용도 저 분위기와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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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월호 선체조사위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오늘(2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인양 고의 지연 같은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도 속도가 붙게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해수부가 뒤늦게 세월호를 인양한 게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거란 취지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조을선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50여 명의 구성으로 다음 달부터 본격활동에 나서는 선체조사위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늦춰 왔다는 의혹도 조사할 방침입니다.


[김창준/선체조사위 위원장 (지난달 21일) : 2015년 4월에 계약해서 대략 2년 정도 걸렸는데 '의도적으로 늦게 인양한 거 아니냐'는 국민적인 의혹이 있었고요.]


이런 의혹을 증폭시킬 만한 발언을 해수부 공무원이 SBS 취재진에게 했습니다.


[해수부 공무원 : 솔직히 말해서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거거든요.]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는 거래를 후보 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도 합니다.


[해수부 공무원 : 정권 창출되기 전에 문재인 후보한테 갖다 바치면서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던 해수부 제2차관, 문재인 후보가 잠깐 약속했거든요. 비공식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제2차관 만들어주고, 수산쪽. 그 다음에 해경도 (해수부에) 집어넣고. 이런 게 있어요.]


이에 대해 해수부 대변인실은 세월호 인양은 기술적 문제로 늦춰졌으며, 다른 고려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선체조사위는 그러나, 문제의 발언은 인양이 정치적으로 결정됐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조사 과정에서 들여다 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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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주당이 이 기사에 태클을 걸자 sbs에선 이렇게 해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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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 '해양수산부가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눈치를 보고 인양을 일부러 늦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기사 내용과 정반대의 잘못된 주장입니다.

또 문 후보 측과 해수부 사이에 모종의 거래나 약속이 있었다는 의혹은 취재한 바도 없으며 따라서 보도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기사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오해가 빚어지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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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해명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사 본문을 다시 읽어 보았더니 첫 문단부터 처음 볼 땐 발견 못 했던 신세계가 펼쳐지더군요.


[세월호 선체조사위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오늘(2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인양 고의 지연 같은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도 속도가 붙게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해수부가 뒤늦게 세월호를 인양한 게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거란 취지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첫 문장과 둘째 문장을 잘 보세요.

첫 문장의 '인양 고의 지연 같은 각종 의혹'은 사실 박근혜 정권 얘기이고,

두 번째 문장의 '뒤늦게 세월호를 인양한 게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 거' 라는 얘긴 그냥 정권 교체 후 자기들이 비난 받고 책임질 게 무서워서 '뒤늦게라도 서둘러 인양했다' 라는 얘기인 겁니다.

그러니까 디테일을 넣어서 고쳐 써 보면


[세월호 선체조사위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오늘(2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의) 인양 고의 지연 같은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도 속도가 붙게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해수부가 뒤늦게 세월호를 (서둘러) 인양한 게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거란 취지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재인이 늦게 인양하라고 주문했다. 라는 내용의 기사가 아니라 박근혜 시절 미적거리던 인양을 문재인 눈치 보느라 뒤늦게 서둘렀다는 얘긴 거지요. 앞 문장의 '의혹'과 뒷 문장의 '의혹'은 서로 전혀 다른 의혹이구요. 그러니 sbs의 '오해다!' 드립은 앞뒤가 매우 잘 맞습니다. ㅋㅋㅋ 문장에 담긴 내용들 중 딱히 사실 관계를 벗어난 것도 없고 그냥 다 상식적으로 다들 그러려니 하는 생각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디테일을 생략하고 문장 앞뒤를 짜맞춰서 헷갈림을 유도한 것.


이어지는 인터뷰도 마찬가집니다.


[김창준/선체조사위 위원장 (지난달 21일) : 2015년 4월에 계약해서 대략 2년 정도 걸렸는데 '의도적으로 늦게 인양한 거 아니냐'는 국민적인 의혹이 있었고요.]


그러니까 이 부분은 '박근혜 시절에 일부러 인양 안 하고 버틴 거 아니냐는 국민들의 의심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인 것이고.


[해수부 공무원 : 솔직히 말해서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거거든요.]


이 부분은 그저 '지금 시국에 세월호 인양하면 대선 치르는 문재인에게 유리하지 않겠냐' 라는 일반론일 뿐이고.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인


[해수부 공무원 : 정권 창출되기 전에 문재인 후보한테 갖다 바치면서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던 해수부 제2차관, 문재인 후보가 잠깐 약속했거든요. 비공식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제2차관 만들어주고, 수산쪽. 그 다음에 해경도 (해수부에) 집어넣고. 이런 게 있어요.]


이 발언 역시 잘 보면 문재인이 '그렇게 해 줄 테니 세월호를 인양해라' 라고 말했다고 정확하게 해석될 부분은 없습니다.

그냥 문재인이 해수부에 우호적으로 얘기한 게 있으니 얼른얼른 인양해서 문재인 좋게 해주면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정도죠.



정리하자면,

보도 내용 자체는 그저


1. 선체조사위에서 박근혜 시절 일부러 인양을 미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2. 뒤늦게라도 서둘러 인양한 건 문재인 눈치를 봐서일 가능성도 크지 않겠냐는 관련 공무원 누군가의 의견이 있었다. 근데 이딴 걸 왜 보도해

3. 문재인은 해수부 기능 강화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고 '카더라'.


라는 정도이니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국민의당이 이 기사를 물고 이렇게 칼춤을 추는 와중에도 '오해다' 라고 당당히 내뱉을만 한 내용입니다.

다만 '편집과 구성을 통한 언론의 사실 왜곡'의 샘플로 오랫동안 회자될만한 다양한 스킬을 듬뿍 넣어 뒀을 뿐. ㅋㅋㅋ



근데 오히려 이렇게 정성들여 빠져 나갈 구석을 만들어 놓은 걸 보니 더더욱 이 양반들이 면밀한 기획하에 적극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확신이 드네요.


사과는 됐고 걍 기자랑 데스크랑 사이 좋게 손 잡고 검찰 출두해서 탈탈 털린 후 콩밥... 까진 아니더라도 본인들 자리는 조속히 비워주셔야하지 않나... 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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