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

2019.12.18 19:02

귀장 조회 수:3853

예전에 구급대원으로 일할때의 일화입니다.


보통 교통사고나 산업재해가 위급한 상황이 많고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등에서는 단순 병원이송을 요하는 경증 출동이 많은 편입니다.


그날은 동네의 한 가정집 출동이었는데 아이가 잠에서 깨질 않는다, 그리고 숨도 안쉬는것 같다고 신고를 했더군요.

현장가서 보니 방안에 초등학교 3~4학년쯤 되는 남자아이가 누워있고 그 옆에 보호자들이 있었습니다.


시체를 숱하게 봐서 그런지 딱 급인 상태보니 망인(죽은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이불걷어서 맥박, 호흡, 동공 등등 확인해보니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속옷에 오줌지린것까지 전형적인 사체의 모습인지라

애 아버지로 보이는 보호자분께 이미 자제분이 이미 사망한 상태이니 병원 영안실로 연락해서 사망진단받고 장례준비하라고

일러줬습니다. 현장 도착했을때부터 표정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더군요.

다만 아이의 몸이 이리 따뜻한데 정말 죽은게 맞냐고 몇번이나 물어보긴했습니다. 원래 사체의 온기가 바로 식는것도 아니고

방안에 난방이 되어있으면 그 속도가 더 더디다고 답을 해줬죠.


헌데 아이 엄마로 보이는 사람의 행동이 좀 이상하더군요.

구급대원들이 와서 아이를 살펴보는데도 다른 집안일하며 무관심하게 굴더니 우리쪽에서 사망얘기를 꺼내니

무슨 헛소리냐며 애가 좀 아파서 오래 누워있는것뿐이지 죽긴 누가 죽었냐는겁니다. 애 아버지가 달래려해도

소용없고 우리보고는 병원 데려다줄거 아니면 나가라더군요. 구급대는 원칙적으로 사체는 이송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애 아버지한테 부인분께는 아이 병원 이송한다고 대충 둘러대고 영안실 연락해서 장례차 부르라고 얘기해주고

상황정리시키고 귀소했습니다.


부모입장에선 차마 자기 자식이 죽은걸 인정하기 힘들다보니 그런식의 행동도 할수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어린 나이에 죽는 사람들과 남겨진 가족들 보니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문제는 이후로 이런 출동을 여러번 더 겪었다는겁니다.


심지어는 주변 사람이 이웃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출동했더니

이미 사태는 부패가 진행중인데 가족이란 사람은 많이 아파서 그렇지 시간지나면 나아서 일어날줄알았다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되더라는겁니다. 경찰에서 조사해보니 심지어 사체와 몇달이나 동거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아이들 사망의 경우는 평소에 아이를 체벌한게 사망원인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신고를 꺼린 경우도 있더군요.


어쨋든 그 보호자들의 공통점은 절대 자기 자식이 죽지않았다고 믿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미 사망한 사체를 옷도 갈아입히거나

음식을 먹이려는건 예사도 심지어는 집안에만 있으면 기운이 더 떨어지니 업고 나가서 산책까지 시켜주기도 했더군요.


그렇다면 그 보호자들이 전부 정신장애등의 일반인들에 비해 인지력이 떨어지느냐? 물론 생활환경이 안좋은 일부의 경우는

정말 그런 경우도 있긴합니다. 혹은 알콜이나 마약에 중독이되서 자식이 죽었는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이런

경우는 본인이 알콜이나 마약에 중독이되어있어서 사체 냄새조차 맡지못하기 때문에 주변의 신고로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냥 일반 상태의 사람들이라는거죠. 단지 자신들의 관점으로 봤을때는 죽지않았다는겁니다. 내 자식이 이렇게

죽을리 없다는 '믿음'이 강하게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라는거죠. 결국 이렇게 사체가 발견되고 경찰등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그 믿음이 서서히 무너지고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조금씩이나마 받아들이더군요.


즉,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만 현실을 자각하는 그런 상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사체가 어느정도 부패가 되었을때 현실을

자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증의 경우는 사망진단서를 들이대도 안믿는 경우도 있더군요. 가족인 자신이 보살피고 있었는데

애가 왜 죽냐는 거지요. 


요즘들어 이렇게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게 됩니다. 외부의 입장으로 봤을때는 이미 끝나버린 상황이거나

도저히 내부적으로 해결될수없는 상황인데 끝끝내 스스로 답을 내보려는 그런 경우를요. 내부로부터 붕괴되어버린 그런 상황은

결국 외부에 의해 정리될수밖에 없는게 현실인가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6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10
123181 녹수가 길동이 한테 [2] 가끔영화 2023.05.12 184
123180 검사와 피의자 [1] 왜냐하면 2023.05.12 239
123179 [웨이브바낭] 그래서 HBO 시리즈 버전 '이마 베프'도 봤습니다 [10] 로이배티 2023.05.11 464
123178 '면도날', 애플티비+'유진 레비 여행 혐오자 -' [2] thoma 2023.05.11 303
123177 외로움에 대해 [3] catgotmy 2023.05.11 303
123176 재미로 해보는 여러분의 플래이 리스트는? [7] Kaffesaurus 2023.05.11 393
123175 프레임드 #426 [4] Lunagazer 2023.05.11 107
123174 넷플릭스 신작 비프 추천(온전히 이해받는 것에 대해) [6] 가봄 2023.05.11 534
123173 술 한잔 안마시고도 필름이 끊기는 신기한(아님) 무서운 경험말고 하늘 사진들 [12] soboo 2023.05.11 564
123172 바티칸 엑소시스트를 보고 [2] 라인하르트012 2023.05.10 309
123171 [영화바낭] 장만옥이 짱입니다. '이마 베프' 영화판 잡담 [4] 로이배티 2023.05.10 475
123170 짬짜면은 누가 처음 생각해냈을까요. [9] Lunagazer 2023.05.10 508
123169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읽었습니다 [9] Sonny 2023.05.10 354
123168 프레임드 #425 [2] Lunagazer 2023.05.10 97
123167 축구 이적설 나오는 것 보다가 [2] daviddain 2023.05.10 183
123166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7] 조성용 2023.05.10 675
123165 메시 아버지가 이적설 일축 daviddain 2023.05.09 166
123164 이번 주의 책 짧은 잡담. [8] thoma 2023.05.09 364
123163 프레임드 #424 [4] Lunagazer 2023.05.09 117
123162 퀘이크 리마스터 (2021) catgotmy 2023.05.09 15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