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영어 정복기

2010.10.26 18:03

clutter 조회 수:6170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EA%B9%80%EB%8C%80%EC%A4%91&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996709



*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실력에 관한 위 글을 보고 아래 글을 옮겨봅니다.

최근 제게 영어를 진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가장 큰 자극과 동력을 준 글이기에

여러분에게도 소개합니다.



*

위 글의 리플들에 언급되기도 한, 

김대중의 영어실력이 당대 정치인 중 최고수준이었다는 주장은

아래 글에 나온 미국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상대들을 모두 떡실신시켰던 사건 등에 의해 증명된다고 봅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무려 48세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조차 다니지 못한 사람임에도

저 정도의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의 성취가 더욱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생각하구요.


상고시절 어느 정도 배웠을 것이지만 그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일제시대) 영어교육의 수준이 어느 정도 였을 것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보아 우리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라고 결론이 나오면 좋을텐데

위의 글에서 누가 언급하신 것처럼

그가 고졸에다 48세에 시작했더라도, 

평범한 고졸 48세가 아니었다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

이하 본문 시작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 정복기


출처: 김대중,『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1993)



(전략)


나는 마흔 여덟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1972년 유신이 선포되기까지 10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외국의 공관 사람들이나 외신 기자들을 만나는 일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영어를 배워야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실천에 옮겨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의지는 있었는데, 끈기 있는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1972년까지 그런 꼴이었습니다. 


76년과 80년에, 두번에 걸쳐서 있었던 5년 간의 옥중 생활은 영어 실력을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옥중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영어책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영문법 책을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그 결과 상당한 문법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흑자들은 문법을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물론 회화를 못 하는 문법이라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회화를 유창하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문법에 맞는 영어를 구사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나 의 경우 회화는 그렇게 유창하지 못 하지만, 문법 공부를 제대로 한 결과 외국인들도 나의 영어를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문법에 약합니다. 뒤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들 앞에서 문법에 맞는 영어를 구사하면 그 사람의 `품위'까지 올라간다는 겁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역대 정권으로부터 죽을 위협을 당하는 등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신세도 많이 졌습니다. 


나를 두번이나 감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도 못 했을 것이고, 영어 공부도 잘 하지 못했 것입니다. 밖에 있었다면 너무 바빠서 학문이나 영어 공부를 제대로 못 했을 텐데, 그들이 나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 사람에게는 모두가 나쁜 일도 없고, 좋은 일도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절실해집니다. 


1982년 12월부터 85년 2월까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미국의 ABC, NBC, 퍼블릭 라디오를 위시한 각 지방의 TV와 라디오에 자주 출연하였습니다. 그때는 어느 정도 영어로 말하고 듣는 일이 가능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방송에서 직접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방송 출연과 관련하여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1983 년 10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은 인권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방한할 수 있느냐는 비판 여론이 상당히 고조되어 있었고, 상당수의 의원들도 레이건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반대하는 서명을 하여 이를 백악관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에게 레이건의 방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ABC Nightline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교섭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매우 주저하였습니다. 나이트라인은 관심 사가 방영될 경우, 수천만명의 미국인들이 시청한다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프로의 진행자인 테드 카플은 미국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미국과 전 세계의 지도자들을 이 프로그램에 등장시켜 놓고 종횡무진으로 질문들을 퍼붓고 허점을 찌르고 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 이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면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영어가 짧은 나로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는 주위의 사람들의 강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민주화를 위해서 미국의 여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내 특유의 위기 관리 능력을 믿고 한번 모험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참 용감하게도 출연을 수락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같은 방송에서 얼마 전에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행했던 장면을 떠 올렸습니다. 마르코스는 그 해의 여름에 아키노 상원의원이 필리핀 공항에서 살해당한 일과 관련해 나이트라인에 불려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의 태도가 얼마나 당당하고 조리정연했던지 독재자라고 미워하던 사람들까지도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화 도중 테드 카플이 그의 말을 중단시키려고 할 때 그가 취한 태도였습니다. 그는 단호한 태도로 "Wait ! Wait!" 하면서 자기가 할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를 미워했지만, 역시 `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기회가 있으면 저렇게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며 "미스터 카플, Wait! Wait!"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카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은 시종 내게 유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토론이 종료되어 갈 무렵에 이르자 여당(민정당)대표가 거짓말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말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씨가 말한 인권 유린은 박정희 때의 일이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모든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인권 유린도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반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진행자인 테드 카플이 거기서 토론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시청자들은 그 여당 간부가 한 말만 믿고 텔레비전 앞을 떠날 것이고, 결국 이제까지 내가 해온 말들은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미스터 카플!"을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에 쫓기는 듯 나의 요청을 듣지 않고 프로를 마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미스터 카플!" 


그러자 그는 간단히 하라고 주문하며 기회를 주었습니다. 물론 길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아주 간단히 말했습니다. 


"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인권 유린에 관해 내가 한 말들은 나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국제사면위의 82년도 보고서에 있는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정부의 미국 국무성 82년도 인권 보고서에도 그대로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당신네 정부가 보증합니다." 


집에 돌아오자 미국 전역에서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모두들 축하를 하며, 영어로 하는 나의 토론 능력에 놀랐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습니다. 사실은 그날 밤에 미국 내에 있는 한국의 각 공관에서 교민들에게 나이트라인을 꼭 보라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어도 잘 하지 못 하는 내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는 두 사람에게 묵사발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Wait! Wait!"하는 장면이 좋았다고 하면서 테드 카플을 그렇게 눌러 버리다니 놀랍다,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실을 말하면서 마르코스에게서 배웠다고 하자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나와 가장 절친했던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을 살해한 독재자에게 배웠다니 웃음을 터뜨릴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그렇게 영어로 말을 잘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영어를 잘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잘 한 것은 상대방이었습니다. 나의 발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어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잘 한 상대방이었습니다. 나의 발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어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최고의 웅변입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한 가지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ABC 나이트라인 프로그램을 방영해 온 한국의 AFKN이 그날 프로그램만 방영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미 국방부의 성명이 "우방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은 방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실패했다면 그 프로그램은 그대로 방영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 미국 하원의원들이 이에 항의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영어를 익혀 왔습니다. 나는 미국에 있는 2년여 동안 약 100회 정도의 강연을 미국 사람들 앞에서 했습니다. 영어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친근해졌습니다. 나의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나의 영어도 이렇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의 영어는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80년대에 미국에 있을 때는 미리 작성한 연설문을 낭독하고, 답변은 통역과 내가 번갈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카터 대통령, 키신저 씨 등 많은 지도자들을 만났고, 미국인들 앞에서 연설을 약 10여 차례 했는데,이제는 연설문을 낭독하는 대신 연설문의 요지를 영문으로 만들어서 배부해 준 뒤, 내가 직접 말하고 또 질문에 답변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어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특히 듣기에 약합니다. 나는 이것을 극복하려고 지금도 계속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봄, 영국에 있을 때도 양복 윗주머니에 항상 얇은 라디오를 꽂아 두고 틈나는 대로 들었습니다. TV도 매일 2시간씩 시청을 했습니다. 듣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노력을 계속하면 듣기의 문제도 극복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만이 영어, 특히 회화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영어는 한국어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영어가 세계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 나가려면 모두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반드시 이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많은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크게 후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대학 공부도 못 했고, 또 50살이 다 되도록 전혀 영어를 할 줄 모르던 사람도 열심히 노력했더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자면,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 등 제 2외국어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는 가장 큰 재산입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