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3 02:17
요즘 듀게에 이런 저런 영화를 찾는 글들을 보니 문득 예전에 제가 한참 애타게 찾았던 영화가 생각났어요.
<환상의 여인>이라는 영화인데 이 제목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으니 아마 제 머리 속에서 날조된 제목일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가 남자주인공이었는데 그 영화를 봤을 땐 그것도 몰랐죠.
여자주인공을 맡은 배우도 어디선가 많은 본 얼굴이었는데 역시 이름을 기억하진 못했어요.
단서는 오직 스토리뿐... 주인공 남자가 어느 미술관에서 굉장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표정을 한 여인의 초상화를 감상하다가
저 여인을 만나고 싶다고 중얼거렸는데 마법처럼 시간을 수십 년 거슬러 올라가서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인을 만나게 돼요.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두 사람은 점점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불의의 사고로
남자는 그 세계에서 튕겨져 나와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온 남자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계속 침대에 누워 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리며 그 시간으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온갖 시도를 다 해보지만 그게 남자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죠.
남자는 그 여인을 처음 봤던 미술관에 가서 초상화를 보며 그 여인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지만
결국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는 공간에 갇힌 남자는 희망을 잃고 마치 침대에 팔다리가 묶인 수인처럼
꼼짝도 않고 누워서 서서히 죽어가는 영화였어요.
남자는 누워서 미술관에서 본 그녀의 그림 속 표정을 계속 떠올리고 그 여인의 신비로운 표정이 남자의 온 마음을 사로잡는 것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는데 그 초상화 속 여인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표정에 저도 압도되었던 것 같아요.
얼굴 자체가 아름답다기보다는 클로즈업된 표정을 여러 각도로 보여주는 화면에 묘하게 빨려들어갔었죠.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사람이면 헤어져서 만나지 못해도 언젠가는 우연히라도, 혹은 마음만 먹으면 찾아가서 만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데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남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런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의 완전한 상실감, 죽음을 향해 가는 남자의 모습이 저에게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나중에 이 영화를 찾았고 다시 봤는데 제가 처음부터 이 영화를 본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무슨 일로 중간에 못 봤는지
제 기억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의 영화더군요. 남자가 현실로 돌아온 후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여인의 얼굴을 환상처럼
되새김하는 장면들에 제 기억이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슬프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좀 평범한 로맨스 영화 같았어요. 그야말로 제 '환상의' 영화, 제 '환상의 여인'이었던 듯...
제 환상이 깨질까봐 전반부만 좀 보다가 안 봤던가, 중간 중간 몇 장면은 찾아봤던가 그러네요.
위에 적은 영화의 스토리는 처음 봤던 때의 기억과 영화를 찾은 후에 봤던 기억, 그리고 처음 기억을 보존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서
다시 재창조+날조된 내용이라 실제 영화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어쨌든 찾아보니 imdb 평론가 평점이 무려 29점인 영화... orz 그래도 사운드트랙은 다시 들어도 좋더군요.
그 영화를 보면서 뛰어넘을 수 없는, 참 막막한 시간의 거리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John Barry - Somewhere in Time(1980)
2018.05.13 10:00
2018.05.13 17:28
2018.05.13 18:53
사라진 여인 이야기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도 재미있었고 <The Lady Vanishes>는 그럭저럭 재미있었고,
자크 투르네 감독의 <Out of the Past>도 여자가 휴양지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것 같은데...
조지 슬루이저 감독의 Spoorloos(1988)도 아주 재밌게 봤었죠. <화차>도 재미있었고...
사라진 여인은 로맨스 영화로도 스릴러, 탐정 영화, 누아르 영화로도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재인 것 같아요.
사랑의 정점에 있던 순간에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버리면 거의 미쳐버리는 것 같아요. ^^
2018.05.13 21:48
2018.05.13 23:29
<잉글리쉬 페이션트> 사운드트랙을 찾아보다 맘에 드는 곡 하나 가져왔어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아니고 재즈곡인 것 같은데...
Shepheard's Hotel Jazz Orchestra - Where or When
가사 있는 노래로도 듣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조지 마이클의 달콤한 목소리로 한 곡...
George Michael - Where or When
갑자기 궁금해서 찾아보니 한글 제목이 <사랑의 은하수>군요. ㅠㅠ 수퍼맨이 나와서 우주가 연상되었나...
그냥 원제를 그대로 옮겨서 '시간 속의 어느 곳' 혹은 '시간 속의 어딘가' 정도로만 해도 괜찮았을 텐데...
제 기대가 너무 높아서 실망하긴 했지만 적어도 29점의 영화는 아니었어요.
이 영화엔 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제대로 봐야겠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영화 내용을 너무 많이 말해버린 것 같네요. 물론 제 기억과 다른 부분이 많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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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봤는데 이번엔 기대를 확 낮추고 봐서 그런지 재미있는데요?? ^^
지금 보니 오히려 두 번째 봤을 때 도대체 어느 부분을 보고 그렇게 실망했나 싶은데...
해외 인터넷으로 찾아서 영어도 잘 안 들리고 띄엄띄엄 보다가 기대했던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랬나...
두 번째 본 것도 워낙 오래 전이라... 그나저나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후반부는 10분 정도밖에 안 되네요. orz
한 30분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좀 섞어서 후반부로 기억했던 듯...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리브의 연기는 뭔가 울컥하게 하는 게 있어요.
<폭풍의 언덕(1939)>, <초원의 빛(1961)>과 함께 제 어린 시절 사랑영화 베스트3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