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靑)색은 붉은색이다...? ^^

2019.11.06 21:23

지나가다가 조회 수:790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청동(靑銅)이란 인류가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금속으로 보통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말하며 영어로는 bronze라 불립니다.


구리에 아연을 합금한 금속은 황동(黃銅)이라 불리며 영어로는 brass죠. 이는 실제로 노란색을 띠고 있으며 이에 대해선 별로 헷갈릴 일이 없어요. 단지 인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황금과 이 금속을 외양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다소의 논란이 있는데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청동이죠.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각각 gold, silver, bronze로 표현되니 실제로는 동(銅, copper)메달이 아니라 청동메달이라 부르는 게 맞아요. 하지만 이렇게 부르면 당장 혼란이 발생할 걸요. 동메달은 분명히 붉은 색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영어에서 bronze color 는 '광택을 띤 붉은 색'을 말해요. 머리카락도 브론즈 색이라면 붉은 머리를 말하며 때로는 햇볕에 잘 그을려 불그레해진 피부도 브론즈라고 불리죠. (반면 노란 머리칼은 blond인데 이는 '금발이 너무해' 류의 영화로 인해 잘 알려져 있어요.) 실제로 머리칼이나 피부의 광택은 지방질 광택이라 청동 등의 금속성 광택과는 구분이 되지만 그 정도는 넘어갈 일이고...


문제는 우리가 이 금속을 청동(靑銅), 즉 '푸른색의 구리'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청동이 주조되었을 때의 처음 색깔은 붉지만 곧 녹이 슬게 되며 그렇게 되면 푸른 색을 띱니다. 더구나 내부까지 침투하여 전체를 붕괴시키는 철(鐵)의 녹과는 달리 이 금속의 녹은 표면에만 국한되어 오히려 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인체에는 독성이 강하지만) 따라서 청동제품은 푸른색으로 덮인 채 오랜 기간을 보내게 되며 사람들은 이러한 녹의 색, 즉 청색을 이 금속의 원래 색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금속과 그의 녹은 엄연히 다른 물질이며 이는 언어에서도 분명히 나타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우리 말의 문제점은 번역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어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두 젊은 여자가 등장합니다. 한명은 금발머리이고 한명은 "청동빛 머리칼"을 갖고 있어요. 자,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원작을 생각하면 bronze color이니까 붉은 머리라는 뜻이며 전혀 헷갈리는 표현이 아니예요. 그런데 우리말로 이를 읽으면 누구나 '아니, 머리가 파랗다구?'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됩니다. 작품을 읽는데 있어 전혀 쓸데없는 혼란을 주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작품 자체에 혼란스러운 내용이 많은데 말이죠 -_-) 얼마 전 다른 소설에서는 "청동빛 피부를 갖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를 묘사한 귀절도 보았어요. 사람이 좀비도 아니고 피부가 푸르둥둥할 수는 없을 테니 여기선 햇빛에 타서 불그레해진 몸을 말하는 게 분명합니다. 자, 여기 청동색 피부 = 붉은 색 피부 라는 공식이 있어요. 피부는 양변이 공통이니 빼어버리죠. 청동에서 동(銅), 즉 구리는 사람의 몸과 비교하는데 필요없는 잉여 표현이니 역시 생략합니다. 그러면 결국 "청(靑) = 붉은색"만 남게 되네요.


우리나라 말 중에서 개선이 시급한 사안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뭐 한국인이 대단한 민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어문제 가지고 일부러 골탕을 먹일 것 까지야 없지 않겠어요?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0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6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11
123122 네이버 시리즈온 카트 오늘까지 무료입니다 수박쨈 2023.05.04 153
123121 경양식 돈까스 잡담... [1] 여은성 2023.05.04 471
123120 드라마 촬영 현장에 벽돌 던진 40대男 입건, '새벽 촬영' 주민 불만에 '욕받이'되는 현장 스태프들, "3시간 달려 간 관광지 막아선 드라마 스태프"..도 넘은 막무가내식 촬영 [1] ND 2023.05.04 400
123119 ebook 50년 대여 [8] thoma 2023.05.04 481
123118 [디즈니플러스] MZ 부함장의 꼰대 함장 길들이기, '크림슨 타이드'를 봤습니다 [9] 로이배티 2023.05.04 345
123117 행복에 대해 [1] catgotmy 2023.05.04 139
123116 오늘은 성전(星戰)절입니다. [8] Lunagazer 2023.05.04 283
123115 프레임드 #419 [6] Lunagazer 2023.05.04 86
123114 [블레이드 러너] - 데커드는 유니콘의 꿈을 꾸는가 [6] Sonny 2023.05.04 429
123113 (스포)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 보고 왔습니다 [4] Sonny 2023.05.04 332
123112 파리에서의 메시는 [7] daviddain 2023.05.04 217
123111 가오갤3 리뷰<유스포> [1] 라인하르트012 2023.05.04 401
123110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이 맞네요 하 [2] 가끔영화 2023.05.03 420
123109 어린이날 연휴에 비가 엄청 쏟아진다는군요. [2] ND 2023.05.03 448
123108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5] catgotmy 2023.05.03 245
123107 [영화바낭] 맷 데이먼, 톰 행크스가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 궁금해요(레인메이커 짧은 후기) [11] 쏘맥 2023.05.03 387
123106 프레임드 #418 [4] Lunagazer 2023.05.03 113
123105 El phantasm del convento/El vampire negro daviddain 2023.05.03 109
123104 어쩌다 마주친, 그대 왜냐하면 2023.05.03 300
123103 남자와 여자 군대와 여고 [3] catgotmy 2023.05.03 42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