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맞으러 다녀온 김에 써보는 사주의 괴상함..

해마다 1월 2일 아침이 되면 핸드폰이 귀신이라도 들린양 쉴 새 없이 몸을 부르르 떨어댑니다. 그나마 문자의 시대는 좀 나았지요. 언제부턴가는 동자신이라도 들었는지 경박한 육성으로 방언까지 뿜어대는 겁니다. 까톡까톡까톡까톡까까톡...

경우 없는 인간들이야 "올 해도 살아있을 셈인가?" 오고가는 갈굼으로 벌충되는 우정을 시전하지만, 대부분 사회생활의 두꺼운 등짐에 눌려 되도 않는 입에 발린 덕담들을 주고 받는 거지요. 게 중에 가장 흔한 클리셰는 육십갑자로 이름 지어진 그 년을(년을?) 넣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해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너 님아 어쩌구 저쩌구"

그런데 말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1월 2일이 기해년의 시작이 아님은 물론이고, 심지어 음력 1일도 기해년의 시작은 아닙니다. 천기의 운행을 따라 24절기를 지었기 때문에 입춘이 바로 기해년의 시작인 겁니다.

이 24절기는 주로 농사에 쓰이는데, 달만 보고는 살 수 없는 벼이든, 경칩에 깨어난다는 개구리나 손이 닿는 곳에 귤과 만화책을 쌓아놓고 겨울을 보내는 인간들 모두 태양을 기준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래 시간 음력이 지배해 온 동양이건만 태양, 나아가선 생로병사하는 천지의 기운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 사주라는 개념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음양오행 양과 음, 기의 흐름이 하늘로 가면 천문, 땅으로 가면 풍수, 몸으로 가면 의술, 운명으로 가면 사주가 되는 것인데, 이 넓은 세상이 하나의 땅을 기준으로 한 시간에 묶여버리니 그것의 적용에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24절기는 주나라 시절에 만들어진 것인데,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때는 일단 지금보다 평균 기온이 1도가 높았어요. 게다가 나름 이것저것 따져 만든 당송대의 기준으로 봐도 24절기는 중국의 화북지역에 최적화 되어 있다는 겁니다.

가령, 입춘은 봄의 입구라지만 우리의 입춘은 보통 눈 예고와 함께 시작이 되지요. 개구리가 깨어나고 산천에 푸름이 돋는다는 경칩에 신학기를 맞이한 우리는 얼어죽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패딩을 껴입은 채 교실에서 벌벌 떨었어요. 입추는 더 합니다. 작년 입추 기억하시나요? 그 불 타오르던...

음양오행과 세상의 순환을 기본 원리로 한다는 사주를 적용하기엔 뭔가 좀 이상한 겁니다. 재밌는 것은 사주의 마지막 글자조합인 시주의 해석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완전히 갈린다며 사주쟁이들은 서울을 기준으로 시간을 따질 때엔 시간을 - 30분 한다는 겁니다. 어이, 입춘에 눈 오는 문제는?

한 해의 시작이 입춘이라는 것에도 딴지를 거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주가 꽃 피운 시대가 당송대인데, 당나라에서는 선명력을 썼단 말입니다. 이게 단순히 시차 문제가 아니 라 여러모로 우리와 맞지 않으니 세종 더 그레이트께서 칠정산을 만드셨어요. 뿐인가요? 당시 역학자들은 한 해의 마지막을 입동으로 보았고, 당연히 입동을 기준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고 봤습니다.

사주? 운명?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아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화북지역과 한국의 절기는 대략 20여 일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즉슨, 경칩 후 20여 일. 3월 22일 쯤에는 개구리가 깨어나고, 푸름이 돋으려 한다는 거지요. 대충 그렇죠?

혹시 우리가 나의 운명이라고 봤던 것들이 실은 남의 것은 아니었는지?

더 재밌는 건 사주에서 주장하는 대운과 세운입니다. 대운은 10년(12배수로 돌아가며 얘는 또 왜 10년? 숫자들과 관련된 공망이란 개념도 있는데 이건 논 외)을 주기로 바뀌는 운의 흐름인데요. 사주 쟁이들은 운을 정확히 따진다며 대운이 오고 가는 시기를 정하느라 지금도 지들끼리 싸웁니다. 그러면서 정작 한 해의 운을 보는 세운은 일괄 소급하여 입춘으로 스타트 결정

재밌지 않습니까?


이건, 제 운이 그닥이라 포도를 보는 여우의 마음이 되어 쓴 글이... 맞아요.. ㅜㅠ 나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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