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09:46
그러니까 벌써 18년전 일입니다.
그 해 여름.. 306보충대를 거쳐 경기도 북부의 한 신교대로 배치를 받고 3주쯤 지났을 때
비가 엄청 내렸습니다.
정말 너무 많이.. 이틀 간 내려서 물난리가 났죠.
워낙에 급격히 내린 것이라 신교대 바로 옆에 있던 탄천이 넘쳐서 신교대가 거의 직격을 맞았습니다. 첫날 하나의 막사에 있던 인원들이 급히 대피를 해서 약간 고지대에 있던 저희 막사로 피난을 왔고,
2명의 기간병(훈련 병이 아니라 신교대에서 복무를 하고 있는)이 실종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갑자기 장교가 내무반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전 인원, 단독 군장으로 다 나가!"
밖에 나와 보니 연병장은 마치 하천처럼 물이 흐르고 있고, 신교대의 돌로 쌓은 담장 너머로 물이 찰랑 거리며 흐르는 게 보이더군요. 그러더니 거짓말처럼 담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교회로 쓰던 가건물이 휘청이며 무너져 내리고..
"전부 산위로 올라가! 빨리 가!"
급히 산 위로 올라가서 산 위 도로에 판초 우의를 머리 위로 펼치고 비를 맞고 하염없이 대기했습니다. 비를 피할 곳도 없더군요. 그냥 산 기슭 같은 곳이나 저지대로 갔다가 토사가 흘러 내리면 매몰될테니까, 그냥 높은 언덕 위의 도로에서 대기하고 있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를 맞다간 저체온증이 올텐데 판초우의는 부족하니 둘이서 하나씩 머리 위에 펼치고 있던 거죠.
그리고 오후쯤 되니 비는 잦아 들었고, 근처의 안전 지대에 있던 다른 부대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밥을 얻어먹고 - 설거지도 안된 식판에 그냥 이것저것 섞은 밥이었죠. - 창고 안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신교대로 복귀하니 난리가 나 있더군요. 그 당시 얘기로는 파손율 60%라고 했습니다.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기고, 신교대 진입하는 탄천 다리도 떠내려 가고, 도로도 유실 되었습니다. 저 지대 막사 안에는 진흙이 가득 차 있고 연병장엔 거대한 구멍에 교회 건물 잔해가 처박혀 있었습니다.
바로 복구 작업이 시작되고 저희들에겐 삽이 한 자루씩 들려졌습니다. 임무는 2가지였습니다. 신교대의 복구와 실종자 수색.
실종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이 와서 지켜보는 가운데 수색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주로 구덩이가 생겨 물이 차 있는 곳에 직접 들어가 손으로 뻘을 헤집는 게.. 수색 작업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패닉 상태였고, 내 아들은 없어졌는데 니들은 왜 살아있냐고.. 외치시더군요. 그 외침에 장교들은 저희에게 빨리 찾는 척이라도 하라며 구덩이 안에서 빨리 물속에 몸 집어넣고 헤집으라고 재촉했습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은 저희뿐 아니라 다른 부대들도 참여를 했고 분대 단위로 조를 지어 그 지역 일대를 전부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유실되어 흙 속에 박혀 있던 지뢰를 건드려 심각한 부상을 입는 사례도 몇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지역 일대는 처참할 지경으로 온갖 가축들이 죽어서 들판에 널부러져 있고 탄천에 떠다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탄천 다리가 유실되어 중장비가 들어오지 못하고, 음식과 식수도 공급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사람이 직접 중간에서 들어옮기는 상황이라 모든 복구 작업을 훈련병들이 맨몸으로 하기를 2주쯤..
탄천에 임시 다리를 복구하고 이제 장비가 들어와 작업을 시작하자, 신교대에 참모총장 이하 합치면 별이 백여개는 될 성 싶은 사람들이 헬기 타고 내리더니.. 대통령이 오더군요. 대통령이 오니까 절대 나오지 말라며 모두 막사 안에 감금시키다시피 했습니다. 당연히 모든 작업은 중단.
이번 사고를 지켜보다 보니, 그 때 생각이 다시 나는군요..
p.s. 실종자는 결국 그 때는 찾지 못했고, 한 명의 시신은 2달쯤 흐른 뒤 농민의 신고로 논바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다른 한 명은 영영 찾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14.04.18 10:04
2014.04.18 10:05
저도 오래전 강원도에서 군생활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참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가 갑자기 오는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던거 같아요
어떻게 보자면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하는 것인데 ㅠ
나 살자고만 했었던 건 아닌가 싶어서 부끄럽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부끄러운 일들만
머릿속에 떠올라요 윤동주가 한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다는 말이
이해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2014.04.18 10:16
18년 전 여름엔 비가 많이 와서 젊은 군인들이 많이 죽었죠.
저도 동생이 복무하던 곳(부근)에서 산사태가 나서 실종자 명단을 가슴졸이며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2014.04.18 10:19
그게 같은 사단의 한 부대였습니다. 인명 피해가 난 곳이 그 부대와 신교대였지요..
이렇게 되리라고 짐작은 되는데, 내 가족이 아닌데도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데, 가족들의 맘이야 오죽할까 싶네요. 잠수부들이 막상 선체에 들어간다 해도 시야가 팔 하나 정도라서 그냥 막 휘젓다가 뭔가가 잡히면 땡겨서 확인한다던데 그 일도 보통 맘으로 하는 게 아니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