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9 10:16
또 짧은 글을 쓰게 되네요.
듀게가 하도 글 리젠이 적고 게시글을 적는 걸 두려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서리...
저라도 글 수에 보탬이 되볼까 하는 마음에.
처음에는 유학이었다가 이민자로 산 지 이제 15년 이상 20년 미만이 됩니다.
그동안 저는 수없는 변화를 겪었어요.
조국 대한민국도 마찬가지구요.
처음에 영어를 배울 때는 아마데우스님처럼 한국인 친구들을 피해다녔고
동아시아인, 남아시아인들과 사귀면서 얼마나 나의 지식이 서방편향인가 알게 되었고
교회를 다닐때는 대학을 다시 다니는 것처럼 또래랑 어울려서 명소들을 찾아 누볐고
애키우고 살게 되니 애 한국어 등의 이유로 열심히 한인 부모들과 어울렸고...
처음에는 파릇포실님처럼 국까였다가
한참 미국에 적응해서 재밌는 글 쓰시는 러브귤님처럼 초반기 정착에 관한 칼럼도 연재한 적이 있고
사는 곳의 복지제도 찬양하면서 차이라떼님처럼 열심히 연구해본 적도 있고
정보화 민주화로 앞서가는 대한민국을 우러르는 국뽕노릇도 하다가..
지금은...
그냥 사는 거 어디나 똑같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지금의 이민은 말설고 물설은 곳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었던 근대 시기의 조선인의 탈출기와는 완전 달라요.
그놈의 인터넷 때문에....
어디서나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 처럼 살 수 있습니다.
비슷한 거 먹고 비슷한 거 보고 비슷한 생각하고
한국물건 공구가 주부들의 최대 관심사구요...
한국티비를 볼 수 있는 노하우등은 모두 다 잘 알고 있구요..
그동안 대한민국이 발전해서 어디가나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거
대한민국 거주민에게 고맙기도 하구요.
근데 내가 지금은 살지도 않는 나라의 일들 때문에 하도 휘둘려서
한참 하던 트위터나 페북을 다 중단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간밤의 트윗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뭔가..내가 왜 이런 걸 다 알아야 하나 괴로워서..
땅에 발딛고 서 있는 느낌이 안들고
항상 붕 떠다니느 느낌이 들어요.
이 곳에서 발딛고 뿌리내리고 살고 싶은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팔란티르의 돌처럼 내가 알 필요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전부 다 알게 되며 세계고가 증가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듀게만 해요.
정보량이 상당히 떨어지지만 한번의 사고과정을 거쳐서 올라오는 글들이 많아서
그나마 내 멘탈의 발란스를 심하게 건드리지 않으니까..
내가 한국 언론사 데스크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뭐..
이민자로서 기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이룬,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민주주의가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도 한국어 잘하게 키우고 있구요, 물론.
가끔 남편과 그런 얘기 해요.
이민이 이런 건 줄 알았다면 그 옛날 한국을 떠나지 못했을 거라고.
젊었으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저지른 거죠.
지독하게 외롭고 또 아무 생각없이 즐겁습니다.
글로벌한 한인, 노마드 한인
다 정말 쉬운 얘기는 아니예요.
하지만 이게 한국에 다시 가고싶다로 귀결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모험을 하고 싶어요.
가끔은 정말 아무 소식도 못 듣는 아주 먼 곳으로 다시 떠나고 싶습니다. 그저 생존만을 바라게 되길 원하며..
그럼 진짜로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지구상에 이제 그런 곳은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완전 횡설수설에 갈짓자 걸음을 걷는 글인데
그래도 이 글은
이민 20년 미만에는 이정도의 생각을 가졌다
다시 30년 40년이 되면 어떻게 또 변하게 될지 궁금하다는 이정표정도의 역할을 하라고
듀게에 남겨 놓아 봅니다.
2014.07.29 10:28
2014.07.29 10:39
진짜 많아요. 그래서 동질감을 많이 느낍니다. 나도 초반엔 저랬지 나도 나중엔 저렇게 될까 하면서..
외로운 노마드 한인들이 조국의 양질의 문화정보에 갈증이 나서 온다고 설명하면 믿어주실 거죠?
2014.07.29 11:13
뭐랄까. 이민자들 사이의 지배적인 정서는 이곳이 좋아서 산다기보다 다시 돌아가기가 겁난달까요.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와버린 느낌인거같습니다.
2014.07.29 11:27
애니하우_ 양질의 문화정보라기보단, 특정한 흐름에 여과된 정보라 할까요. 한국의 언론사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그렇지 않다면 중립적이어서 다른 감정이 뭍을 곳이 없죠. 가끔씩만 맥락과 감정에 절여진 글을 맛보려면 그 양념이 독하지 않아야 할텐데, 그런 모임이 흔하지 않죠. 게시판 자체를 여과와 지연의 도구로 쓰는 것인데, 그 형태가 맘에 드신다는건 저도 이 게시판에 상주하고 있으니 공감하는 바에요.
2014.07.29 11:32
저는 한국에 살기 싫어서 떠났어요. 근데 그건 그게 '한국'이어서가 아니라 제가 '한국인'이어서였을 거에요.
만약에 제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다른 나라로 떠났을 거고 그게 한국이 되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는 거 어디나 똑같은 거 맞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외부자로 살다가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사회에 녹아들고, 여기도 슬슬 염증이 느껴지네요.
2014.07.29 12:05
맞아요. 동감이예요. 그런 유전자가 있는지도 모르죠.
저도 어디에서 태어났어도 꼭 한번은 태어나 살던 데를 떠났을 거예요. 염증을 느끼면서.
지금도 또 떠나고 싶은데 이건 염증이라기 보다는 그냥 뭐 바람이 되고 싶은 기분..?
2014.07.29 14:42
anywhere but here를 갈망했고 내가 처해진 현실과는 반대거나 결여되었다고 느끼는 특질을 외국에 투영시키면서 살았던 게 20대였죠. 이제는 그런 데 없고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하고 제가 편안한 곳에 있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그런 체질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정주형과 노마드 형 이런 분류도 봤고 노마드 형이 정주 형보다 우월하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도 해 봤는데 그냥 성향의 차이인 것 같아요.
2014.07.29 11:58
저보다 어마무시하게 훨씬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사셨는데 저도 감히 생각은 비슷합니다.
어디나 사는거 똑같다에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를 보태면서요^^2014.07.29 12:08
저는 아직 10년 좀 안되었지만 공감가는 구석이 많네요.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 붕 떠다니는 느낌, 한국의 아시아에선 독보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감사함...
이민 온 사회에서 직장 잡고 일하고 언어에도 문제가 없어지고 이곳 정치에도 관심 갖고 하다 보니까, 여기도 여기만의 문제가 많이 있다는 거 느끼구요.
장단점 비교하고 총점 내보면 행복지수는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저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2014.07.30 02:31
세어보지 못해서 정확한건 모르겠지만, 타 커뮤니티에 비해 듀게에 외국에서 지내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제가 착각하는건지 진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세계 유학생 숫자가 1위가 중국이고 2위가
한국인도, 3위가 한국이란걸 보고 놀라기도 했죠. 한국보다 인구 많은 나라 많잖아요. 한국은 다른 나라에 참 관심이 많은가봐요. 해외통계들을 보면 S.KOREA는 빠지기 일쑤인데 말이에요. 여튼 왜 듀게에 국외거주자가 많나 항상 궁금했는데 듀게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국외자스러워서 그런게 아닌가 납득하게 됩니다. 10년 후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