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주인공 로크는 아버지와 다르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자기가 벌여놓은 일들에 책임을 지며 살려고 합니다.

아들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와는 달리, 하룻밤의 실수로 자기 자식을 낳는 여자를 돌보려고 밤새 운전해서 갑니다.


그래서 결국 로크는 아버지와 다르게 살 수 있을까요?


로크 자신은 아버지와 다르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지만,

제 눈에도 로크는 그 곤란한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그가 아버지와 다르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크가 진정 원했던 것은, 그가 필요로 할 때 그를 내팽개치지 않는 아버지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로크가 그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이제 태어날 아이가 판단해야 할 문제겠지요.

로크의 두 아들이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로크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차근차근 이성적으로 풀어나가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도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대처합니다.

긴급한 회사일을 내버려두고 떠난 것에 대한 직장 상사의 분노, 중요한 일을 앞두고 술이나 마셔대는 부하직원의 나태함,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의 절망,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한 아이들의 두려움, 아기를 낳기 일보직전인 여자의 불안, 이 모든 것들에 최대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처합니다.

정말 그 이상으로 잘 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그는 엄청난 침착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문제를 처리해 나갑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받은 상처, 그로 인해 앞으로 그의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가 작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보다 그의 입장을 먼저 이해해 줄 수 있는 대단히 착한 사람들도 아니고,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사람들, 상처받았기 때문에 흥분하고 화내고 말귀도 못 알아듣고, 자신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을 순간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의 아내와 자식이 조금만 기다려 준다면, 조금만 이해해 준다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지금 이순간 그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않는다면 아내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지도, 아이들의 불신을 없애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의 아이를 낳는 여자에게 가야 하고, 그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내버려두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가 지금 누군가와 함께 하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순간, 그의 선택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로크는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이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하지 않고서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고,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위해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로크가 어떤 선택을 했든, 그 순간 그 선택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듯이,

우리 또한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합리적인 행동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삶입니다.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려워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면서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겁니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로크의 안간힘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상처를 받고 어쩌면 그를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아무리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덜 주는 선택을 하려고 해도

그 선택으로 인해 배제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나도 모르게 버려졌을 누군가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미안해 하는 것,

나를 배제해 버렸던 누군가의 (그에게는 어쩔 수 없었을)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것,

그것밖에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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