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7 01:14
나이도 있고 제 성격으로 봐서 결혼은 힘들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생각은 점점 더 굳어질 듯해요.
형제들도 각기 가정을 꾸렸고 남은 건 부모님입니다.
가끔 우리 부모님처럼 자식을 잘 키운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들어가기 전부터 좋은 대학과 성적으로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었고 잘 부양하고 싶었죠.
부모님이 숨이 막힐 것 같은 애정을 쏟지만 저도 못지 않았어요. 아마 제 머릿속에 들어오면 깜짝 놀라실거에요.
딱 22년만에 경제적 독립을 했고 냉정하게 정산하자면 저에게 쓴 돈의 배 이상을 돌려드렸어요.
우수한 투자대상이었던 거 같습니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절 많이 의지하시죠.
동물의 왕국을 보면 솜뭉치같던 어린새가 조심조심 나는 연습을 하고 마침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날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둥지를 떠납니다.
인간이나 새나 그 본질은 같다고 봐요.
새야 성장이 단 몇달에 끝나지만 인간이야 수십년이니 다르다고 생각해도 주말 부모님집에 가면 이 둥지를 평생 버리지 못하고
마침내 헤어지는 그날이 와도 이것을 버리지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계획이 있었어요.
몰래 집정리를 하고 중국행 비행기표를 사는 겁니다.
도착한 후 최대한 간단하게 이별을 고하는 전화를 하는 거에요. 회자정리, 무소식이 희소식 등등
즉시 내륙이나 아믛든 깊이깊이 오지라고 불릴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집을 구하고 중국어가 익숙해지면
가짜 신분증을 구해서 구석구석 살아보는 거에요.
중국인 행세를 해도 좋겠죠.
뜬금없이 중국어를 공부했던건 그 생각때문이었는데
이 꿈도 어물쩡 바래질 무렵 문득 중국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격렬하게 반대를 하는거에요.
어쩐지 가면 안돌아올것 같다고 해서 내심 놀랬었지요.
돈도 있고 건강도 있고 젊지는 않지만 늙지도 않은 나이에요.
이 소원을 그냥 소원으로 간직하다 어느날 문득 어머 벌써 60살이 되었네.
어쩌다 이렇게 늙어버렸지...
이럴까봐 두렸습니다.
그리고 이 소원이 한때의 객기이며 하루하루 자족하며 살아갈것을 결심할 것 같은 예감도 두려워요.
2014.09.17 01:26
2014.09.17 02:35
흠... 슬프네요.
제 삶의 의미가 이젠 부모님이에요.
그외엔 목표가 없어졌어요...
그러면서도 부모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결혼은 정말 어렵네요.
살구님께서 마음의 평안을 찾기바랍니다.
인생 뭐 있나요... 누구나 똑같을 순 없잖아요...(격려가 안되죠?ㅠㅠ)
2014.09.17 08:55
2014.09.17 08:56
뭔가 비슷한 입장 (나이 있는 독신) 인데 얼마 전 운신을 못할 정도로 다쳐서 억지로 쉬고 있는 사람인데요. 개인적으로 다친 이후로 인생관이 바뀌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건강은 크게 잃을 리 없다고 생각했고 여행도 감사히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정말 더 나이가 들면 몸이 안 따라줘서 못 할 일이 많아지리란 게 무섭게 다가오더군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할 수 있는 걸 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정말 때라는 게 있으니까요. 도움 안 되는 리플이겠지만 좋은 방향으로 용기를 내 보시길 빕니다.
2014.09.17 13:09
여자몸으로 혼자 중국 오지에 들어가 산다...딸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실 것 같습니다.
결혼안해도 되니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시는 게 현명한 것 같습니다.
2014.09.17 13:24
살구님 글들 잘 보고 있는 입장에서, 뭐라 쉽게 말은 못하겠는 어떤 느낌은 있었는데 이 글은 왠지 더 마음이 아프네요, 그렇지만 저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모든 것들에 작별을 고하고 전혀 나를 모르는 아주 낯선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 방랑벽이나 역마살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그런 거, 저도 마음속에 절실히 꿈꾸고 있는 것이기도 해요. 정말 간절히 원하신다면 그리 (한 번쯤) 살아보셔도 좋을 거라는 말씀이 난 그렇게 못하니까 또는 나는 못하니 살구님이라도, 같은 얄팍한 대리만족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2014.09.17 18:02
세월이 지금 그대로 놔주지는 않을거란 생각입니다.
세월은 원래 슬프고 원망스럽지 않은건데 그렇기도 하니.
근데 왜 밀입국자로 살려고 하세요.
2014.09.18 11:59
회자정리까지는 아니고 여하튼 떠났다가 씁쓸하게 돌아온 적은 있습니다-영문과 출신이라고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도 수천번 되뇌이면서...어디든 한 번 다녀오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