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2015.05.27 04:19

여은성 조회 수:1267


 1.지금 나가면 도시의 어둠을 빠른 속도로 헤쳐갈 수 있겠죠. 나갈까 말까 하는 중이예요. 이 글이 언제 완성되는지에 따라 나갈지 말지가 결정될듯.

  

 2.생존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죠. 로스트에 나오는 소여 같은 놈이요. 하지만 생존을 위해 태어나는 건 죽음을 위해 태어나는 것과 같죠.


 3.어떤 사람이 저를 두고 이러더군요. 여은성의 만화나 소설에는 늘 3가지 요소가 등장한다고요. 그건 푸와그라와 백인 쓰레기, 그리고 감옥이예요. 듣고 보니 그럴듯한 거 같아요.


 4.휴.....


 5.다른 건 양념처럼 써먹을지 몰라도 감옥은 주로 써먹긴 해요. 감옥은 가는 순간 깨닫는 곳이잖아요. 이곳에서 죽거나, 다른 사람이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곳이요.


 6.그런데 감옥에 관한 얘기를 주로 하는 이유는 이거예요. 사람들은 감옥에 가고 나서야 비로소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거요.


 7.이 세상에 나와서 별 거 아닌 걸 떠올린 다음에 '우와! 역시 난 천재야!'해봐야 그건 몇천년전의 철학자들이 어렸을 때 이미 해본 생각인 경우가 많아요.


 8.하지만 한가지 깨달음만은 정말 좋은 깨달음이라고 봐요. 뉴턴의 사과 같이 말이죠. 


 9.그건 우리는 감옥에 가기 전에도 이미 감옥에 있다는 거예요. 


 10.아직도 죄수로 살고 있는 신세예요. 물론 예전에 있던 감옥보다는 나은 곳이긴 해요. 죽음인가, 다른 사람이 되는가를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진짜 감옥이나 어렸을 때 살던 세상보다는 나은 거겠죠.


 11.지금까지의 인생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어요. 계속해서 탈옥을 시도하는 거죠. 지금까지 있던 감옥에서 탈옥하고, 그 다음 감옥에서 탈옥하는 걸 반복해 오긴 했는데 이제는 더이상의 탈옥 가능성이 없이 이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걸까 하는 절망감과 공포감이 들고 해요. 이제는 감옥을 탈옥하고 다음 감옥...조금은 더 좋은 감옥으로 갈 역량과 운이 진짜로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종일을 보내곤 해요.  

 

 12.감옥에서는 3가지 일밖에 시도할 게 없어요. 탈옥, 적응, 죽음 셋 중 하나죠. 이 감옥에서 정착해서 사는 것...쇼생크탈출의 그 새를 키우는 할아버지같이 이곳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인간이 되어서 사는 것이죠. 다윈이 말했듯이 정말 여기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가장 강한 자는 적응한 자니까요.  


 13.OZ의 미겔 알바레즈 배우는 어느 드라마에 나와도 그냥 미겔 같아요. OZ에서 본 지친 표정이 너무 오버랩되어서요.


 미겔은 극중 내내 감옥에 있지만 그는 죄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아요. 처음에는 이곳에서 곧 나갈 사람처럼 행동하고 형기가 불어나자 이곳에서 언젠가 나갈 사람처럼 행동하죠. 큰 사고들을 치고 돌아온 뒤에도 붕 뜬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감옥을 유영하고 다녀요. 그러다가 그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 감옥과 싸우는 데 지쳤다고 말하고 감방 동료에게 혹시 마약 가진 거 있냐고 물어봅니다. 


 모든 걸 놓아 버리는 그 장면을 끝으로 미겔은 다른 죄수들처럼, 미겔 그 자신이 아닌 감옥을 구성하는 감옥의 일부가 되어버려요. 다시는 그의 단독 컷이 나오지 않고 중간중간 지나가는 장면에서 그냥 죄수A처럼 묘사되죠. 그 뒤로는 어떤 드라마에서 그 배우가 나와도 그 감옥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멍한 표정이 되어버린 미겔이 보여요.


 14.휴.


 15.브레히트였나? 그 사람이 7년인가 8년 헐리우드에서 일한 적이 있었죠. 헐리우드를 '허위를 매매하는 시장'이라고 칭하며 그곳에서 사는 동안 옷걸이 같은 걸 두지 않고 그냥 옷을 바닥에 뒀다고 읽었어요. 헐리우드 같은, 장사꾼들이 득실거리는 곳은 그에게 있어 옷걸이 같은 걸 둘 가치도 없는 '곧 떠날 곳'이었던 거죠. 브레히트는 그렇게 7년 동안 집에 돌아오면 옷을 바닥에 던져 두고 살았다고 해요.


 16.브레히트는 그 감옥에서 탈옥할 역량이 있었겠죠. 저런 감상주의적 태도는 별로지만 어쨌든 그는 탈옥을 포기하지 않은 거죠.


 17.이 감옥에 옷걸이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겠죠. 이곳을 떠날 수 없다면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요. 


 18.흠.


 19.어차피 금방 꺼질 도시의 어둠 속으로 가봐야겠군요. 


 

 

 어렸을 때는 빛이 꺼지고 어둠이 걷히는 건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어둠이 꺼지고 빛이 걷히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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