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를 사려다가....문득 의문이 들어서 주문버튼을 누르지 않고 글을 씁니다.

1인가구의 독신자가 집에서 요리하는 것이 자기만족이나 뿌듯함과 같은 정서적 가치 이외의 구체적 실효성이 있는 걸까요? 경제적 효용은 차치하고 말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경제적 지표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는 소비하는 양이 너무 적고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재료도 꽤 많아서)

우리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드립 머신을 사거나 스스로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가위를 장만하지 않고 혹은 허리를 줄이거나

바지단을 수선하기 위해 굳이 재봉틀을 마련하지 않듯이(그러시는 분들도 많겠지만야 그냥 평범한 기준에서)

굳이 다가구 가정도 아닌 독신이 꼭 밥해 먹을 필요가 있나....

(다가구 가정도 그럴 당위가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알 수 없는 것에는 입대지 않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아이나 노인이 있으면 달라지겠죠.)

18살 서울에 처음 상경했을 때는 제가 원하는 자아상인 세련된 자립여성이 되기 위해 지향해야 할 너무 당연했던 기치였던 것이 지금은 의구심으로 많이 희석되었군요. 물론 그렇다고 많이 해 먹은 건 아닙니다만


외모에 관심이 많은 대부분의 20대 여성이 그렇듯이

저는 옷을 꽤 잘 입어요. 화장도 잘하는 편이고 손톱도 네일샵에 가지 않고 혼자 해결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고데기와 구르프는 잘 못 다룹니다 고데기해야 하는 날은 미용실에서ㅠㅠ)

하지만 밥은요?  식사를 꼭 자기 손으로 해 먹어야 하나요? 이 질문은 부정성을 함의한 질문이 아닙니다. 정말 그래야 하는지 안 그래야 하는지 그 경계선에서 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거든요.

메이크업과 헤어를 미용실에 수주하는 비용은 꽤 비쌉니다.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나가요 언니가 아니라면...네일샵도 마찬가지. 젤네일 한번에 4만원이에요. 

정액권을 끊으면 좀 더 싸지만 어쨌든 한 번의 기분전환치고는 꽤 비쌉니다.

식사는 아니에요. 서울 시내권이라 해도 오천원의 기사식당~만원 사이의 괜찮은 밥집에서 한 끼 해결이 가능합니다. 학식이나 구내식은 더 싸요.

이 비용이 과연 집에서 만드는 수고로움과 시간을 감내할 정도로 비싼 건가요?

음.....건강?

식당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건강이나 다이어트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도시락 배달 업체가 많잖아요. 영양제도 넘쳐나지요.

아침은 유기농 무슬리나 시리얼, 샐러드나 요즘 유행하는 클렌즈주스로 해결할 수 있고 간식으로 소분된 견과나 베리류의 파우더같은... 직접 해먹지 않고도 건강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밥을 하려면 일단 1. 장을 보고 2. 재료를 손질하고 소분하고 3. 요리를 하고. 4. 설거지와 부엌과 식탁을 치워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냉장고 정리도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조리도구 일체를 구비해야 하고 추가적으로 식탁 세팅도 해야죠

이 과정들과 거기에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면서 제가 요리에 재미를 붙이거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경위가 있는지 대차대조해 보면 좀 아리까리합니다.

밥하기 라면 끓이기 만두 삶기 계란 프라이하기 고기나 생선 구워 먹기 정도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고 스스로와 합의가 되었는데 그 이상의 고층차 과정...그러니까 꼭 올인원 수제가 아니고

테이xx샵이나 푸x마x 같은 분업 아웃소싱으로 장보기와 레시피 찾기 재료 손질하기 같은 중간 경유 과정을 생략해서 효율을 올린다고 한다손 치면, 그렇다면 요리는 집에서 할 만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아직 미정입니다. 

음...아직 타임라인상으로 먼 일이지만 결론적으로는 결혼할 생각도 없고요. (유부녀라면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강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 그런 식의 사회적 프레셔 때문에 인과적으로 독신을 고수하겠다는 것도 전혀 아니지만..단지 파트너십을 체결하면 식사준비에 대한 압박이 좀더 거세지지 않을까 해서)


저는 현재 쇼핑 중독 상태이던 20대 초반을 벗어나 이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지는...의에서 식으로 향하는 여정에 있는데

장기적 관점에서 현재가 인도어 요리가 아웃소싱되는 과도기이고 결과적으로 블루프린트가 보이지 않는...효율성이 떨어지는 취미라면 지금 손 떼고 싶어서요. 미식으로 만족하는 게 좋을까요?

실지로도 이제 집밥이 중요시되는 나라는 거의 없지 않나요? 서구권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이든 동남아든..전부 다 아침까지 밖의 푸드 트럭이나 노점상에서 해결하는 경향이 강하죠.

그게 아니라면 입주 가사도우미를 들여서 가사 전체를 아웃소싱할 수 있을 정도로 비용이 저렴하던가(주로 홍콩이나 인도가)


제가 요리블로거나 미국 남부 바이블 벨트에서 케이크 궈서 남편 기다리는 스텝포드 와이프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연 내가 여기에서 실효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천착하는 것이 요즘 제 화두입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돈과 관심을 증여하고 싶은 것들은 항상 넘쳐나지요.

자랑거리나 폼이 난다거나 하는 남들의 칭찬 같은 값을 매기기 모호한 함의들 말고요.  


그럼...네가 치장을 좋아하는 것은 뭐 생산성이 좋은 취미라서 쇼핑중독에 걸렸었느냐라고 반문한다면

기꺼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만족 외에도 스타일이 좋은 여자가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혜택을 저는 차고 넘치게 충분히 누렸거든요.

어...정확히 말하면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에요. 결국 패션이나 미용은 자기만족에서 비롯되더라도 결국 대외적인  가치, 사회적 양태로 발현되거든요. 집밥은 결국 사생활과 프라이버시 내에서 발휘되고요.

부작용으로 집이 항상 어수선하고 벼룩하느라 귀찮고 행거가 자주 무너지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여자의 외모에 대해 비대칭적인 사회적 제반의 불공평함에 대한 논의는 생략할게요. 적어도 이 글에서는 부적절하지요.)

어쨌거나 지금의 저는 쇼핑중독의 결과물들을 처분하느라 지난했던 과정들을 거쳐서 현재는 꽤 검소합니다. 역설적으로 무절제한 낭비를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겠죠.

궁금한 것은 그러한 알고리즘이 현재 요리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화용론적 의문....뭐 그런....앞으로의 에피스테메는 과연 어느 쪽일지...

(저를 설득시켜 주실 분이 계셨으면 좋겠군요....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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