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코스모스>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으려고 했는데 


<코스모스>는 아무래도 다음 만남을 기약해야겠어요. 


제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심리묘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요즘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의식(혹은 무의식)의 흐름 따라 정처없이 흘러가는 이 소설에 집중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100페이지 가까이 읽으며 어떤 점에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고 


이런 책은 수박 겉핥기로라도 계속 읽는 게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요즘 제 마음이 


책 한 권에 침잠할 수 있는 고요한 상태가 아니어서 이런 책은 나중에 몸의 열기가 좀 가라앉았을 때 


다시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으니 이 소설은 제가 좀 더 준비가 됐을 때 읽어보겠습니다. ^^ 


<오만과 편견>은 의외로 술술 잘 읽히는 대중적인 연애소설이었어요. 5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인데도


(100페이지쯤인가에서 살짝 늘어졌던 것 빼고는) 끝까지 아주 재미있게 잘 읽히더군요. 


사실 영화로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뭘 얼마나 더 느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시작 부분부터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베넷 씨의 유머감각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어요. (이 소설에서 발견한 매력남 ^^)


가족에 대해 유머 감각을 발휘하기는 참 힘든데 베넷 씨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죠. 


재미있는 대화가 아주 많이 나오는 소설이었고 엘리자베스의 생각과 감정이 굉장히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그걸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이 소설의 남자주인공 다아시는 주위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거나 


춤을 청하지 않는 등등) 오만하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죠. 엘리자베스 역시 다아시가 처음에 자기한테 춤도 청하지 않고


자기를 별로 매력적인 존재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에 기분이 상해서 저도 모르게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키우게 되고요. 


다아시는 단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뿐인데 (말하기 싫으니 말 안 하고 춤추기 싫으니 춤 안 추고 ^^)  


쉽게 오만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 그리고 엘리자베스 역시 다아시가 처음에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은 것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편견을 쌓아간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한 작지만 중요한 통찰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을 공정한 눈으로 바라보기는 참 힘든 것 같거든요. 


인간이 갖고 있는 자존심과 허영심은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 볼 줄 모르는 사람,


판단력이 흐린 사람,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 예의가 없는 사람 등등의 딱지를 붙이게 만들고 그런 편견 위에서  


그 사람의 모든 행위를 판단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반면 나를 인정해 주고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은 사람 볼 줄 아는 사람, 지적인 사람, 예절바른 사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그런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 사람의 모든 행위를 판단하게 되고요. 


이 소설에서 엘리자베스는 상당히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언제나 자신의 생각의 근거를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인데도 그런 편견에 


쉽게 사로잡히는 걸 보면서 어쩌면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 방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무의식적인 태도를 손쉽게 비판하기보다는


인간의 어떤 한계로 인정하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오만하다는 것이 내가 무슨 자랑을 늘어놓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 듣는 말이 아니라 내가 뭔가를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 때, 혹은 그 관심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을 때 들을 수도 있는 말이라는 것,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나를 존중해 주지 않을 때 나는 쉽게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거나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본능적인 태도가 (논리적 사고 능력과 무관하게) 타인을 인식하는 틀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스스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한 편견을 쉽게 갖지 않도록 먼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본능적 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존재인 것 같으니까요. (저의 어설픈 일반화에 따르면 ^^)  


소설에 대한 감상이 뭔가 생활의 지혜 쪽으로 가버렸는데 어쨌든 제 예상보다 훨씬 술술 재밌게 읽히는 책이었어요. 



<코스모스>를 못 읽는 바람에 대신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와 <오셀로>를 읽었고 지금 <리어왕>을 읽는 중이에요. 


<맥베스>는 대화가 굉장히 비유적이고 압축적이어서 그렇게 쉽게 읽히진 않지만 이미 내용을 다 알고서 읽는 거라   


그렇게 읽기 어렵지도 않아요. (물론 겨우 한 번 읽고 그 문장들의 오묘한 뜻을 어찌 다 이해하리오마는... ^^) 


이 희곡을 읽다보니 셰익스피어 작품은 참 각색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어떻게 고치든 이 정제된 원문들의 결합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 수준을 뛰어넘기가 참 힘들 테니... 


<맥베스>가 4대 비극 중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던데 가장 간결하고 시적인 희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작품도 뭔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압축적이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오셀로>는 초반을 좀 지나면 아주 흥미진진하게 잘 읽히는 희곡이었어요. 아무래도 사랑과 질투, 계획된 음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희곡이다보니 4대 비극 중 가장 쉽게 읽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오셀로가 이야고의 계략에 왜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지, 근거도 없이 왜 자꾸 '정직한 이야고'라고 부르는지, 


이야고는 무슨 이유로 오셀로를 파멸시키려고 드는지, 카시오는 왜 자꾸 상관의 부인한테 복직을 부탁하려고 드는지, 


데스데모나는 왜 남편의 공적인 인사 관리에 개입하려고 하는지 등등, 여러가지로 이해 안 되고 복장 터지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런 답답함이 쌓여서 안타까움이 되고, 인간은 참 헛점이 많고 속기 쉬운 존재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중한 사람일수록 얼마나 더 많이 오해하고 더 심하게 미워하고 더 자주 괴롭히며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어요. (비극이에요, 비극 ^^)  


<리어왕>은 읽다가 어제 영화 보고 오늘 듀게 하고 띵까띵까 노는 바람에 40페이지밖에 못 읽었네요. 


오늘 도서관에서 다음 주에 읽을 <백년보다 긴 하루>를 빌려왔는데 다음 주에는 이 책과 <리어왕>, <햄릿>을 읽을까 해요. 


희곡을 읽은 김에 <밤으로의 긴 여로>(212p)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56p)도 다다음 주에 한번 읽어볼까 생각 중이고요. 


(희곡은 짧아서 좋네요. <맥베스>, <오셀로>, <리어왕> 다 합쳐도 <오만과 편견> 한 권보다 분량이 적음 ^^ 


<백년보다 긴 하루>는 380페이지인데 행간이 좁아서 x 1.5를 하면 다른 출판사책 570페이지 정도 분량이 되는군요. ㅠㅠ) 


물론 듀게분들이 저에게 읽히고 싶은 세계문학소설을 추천해 주시면 그걸 최우선으로 읽을 거예요. ^^ 


이번에도 듀게분들께 재미있게 혹은 감명깊게 읽은 세계문학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며 이만 총총... 


(이제 뭐 다 들통났으리라 짐작하지만 제가 은근히 소설을 많이 안 읽은 사람이라서요. ^^ 


누구나 다 읽은 소설 같아서 망설이게 되신다면 자신있게 추천해 주셔도 됩니다. 아마 안 읽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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