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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안두희. 그리고 그 안두희를 때려죽였지만 당시 국민 정서에 의해 의인 대접을 받고

3년 형을 받은 박기서씨에 관한 글입니다.



그리고 첫 댓글이 그래도 그건 아니다, 라는 거였는데 이후 몇몇 빼고 줄줄이 쿨병 걸렸냐,

죽인 거 잘한 거다, 법의 국민 정서 반영, 등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이 글의 참된 주제는 법의 상대성이나 시대상 반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적 복수는 허용되는가? 야 말로 정말로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볼 때.



시대가 그러하니 내가 나서야겠어, 라며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나,


시대가 이러한데 김구 같은 사람이 있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어, 라며 암살을 한 안두희나,


김구 선생님이 어떤 분인데 암살을 하냐 천인공노할 놈아, 라며 살인을 한 박기서나,


그때 시대가 그랬는데 그런 놈한테 무슨 인권이야, 라는 댓글러들이나.


같아 보이거든요.




즉 개인이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못 믿고 사적 복수를 할 수 있는 기준이 뭐냐는 겁니다.

각자 자기 기준과 정의대로 사적으로 일어나 공적 시스템을 붕괴시킨 저 사례들에서

어떻게 합의점을 찾냐는 거죠.






저는 사적 복수는 안 된다 라는 소수 댓글러 VS 너 쿨병 걸렸냐며 비판하는 나머지를 보고

한나 아렌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이차대전 후 전범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원래 망치기는 쉽고 그에 대한 재건은 시간이 걸리고 어렵잖아요.


나치가 세계에 던진 파문은 즉각적이고 컸으나

그걸 밝히고 벌을 주는 일엔 시간과 공이 드는 법이니까요.



그게 사적 복수와 공적 권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판이 벌어졌고 히틀러의 최측근인 아이히만, 이스라엘인들을 홀로코스트한 핵심 인물이 법정에 섭니다.


당시 이스라엘인들의 감정은(물론 지금도) 김구 선생님을 죽인 일에 대한 한국인들의 증오보다 더한 증오로 꽉 차 있을 거라 예상해봅니다.


그리고 철학자이자 지식인이자 이스라엘 사람인 아렌트가 법정에서 관찰한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긴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아이히만이 세상에 다시 없을 악마. 인간도 아닌 뭐뭐.

하여간 악에 최절정에 달한 무엇무엇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렌트가 관찰해보니 아이히만은 외려 말하기에 무능하고, 그래서 생각하기에 무능하다는 결론에까지 이릅니다.

그리고 악의 평범성에 대해 내놓습니다.


악의 평범성?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악의 보편성?


뭐라고 해석되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습니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말을 못하고 상투적 언어로 일관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홀로코스트란 거대한 악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그냥 시켜서 한 거고, 그 죄책감을 면하려고 언어 활용법을 바꾸면서까지 끔찍한 일을 끔찍한 일 아닌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요.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나 아렌트의 이 보고서에 대해 이스라엘인들은 즉각, 굉장한 분노로 화답합니다.



마치 저 댓글의 상태처럼요.




그는 존재해선 안 되는 악이고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를 해줘야하건만,

이스라엘 사람인 니가 감히 그의 악의 성향에 대해 이해해주는 글을 써?


라는 거였겠지만요.



실은, 그와 우리가 같다고? 라며 분노한 거겠죠.





한나 아렌트는 인간 전체에 대해 통찰하고 이런 일은 누구든 벌일 수 있다, 라고,

과연 철학자이자 지성인다운 결론을 내렸지만,



복수심(또는 애국심)에 붙타는 사람들에겐 머릿속에 든 거 많은 사람의 쿨병이요,

자기들의 복수심(또는 애국심)을 깎아내리는 시도였거든요.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 작동법에 대한 접근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가에 대한 이해는 사실에서 출발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아이히만은 실은 별 거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의 악은 인간 누구에게서나 발견될 법한 것이다.

라는 이해도 사실에 근거한 겁니다.



복수하고 싶고 사적으로 처단하고 싶은 것은 이해하는 바이지만

그렇게되면 각자가 자기 경험과 지식과 기준으로 사적 처단을 할지 말아야 할지를 정하게 되는데,



그러면 공적 시스템은 붕괴하죠.




즉 사적 복수도 나름 이해할만하고 그로 인한 공적 시스템의 붕괴에 대한 우려도 이해할만하다면,

둘 중 어느 걸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베니가 출연한 이미테이션 게임이란 영화에서 이와 유사한 주제가 나오더라고요.



이차대전 당시 영국인인 주인공들이 나치의 암호를 천신만고 끝에 알아냅니다.

대규모 공습이 있다는 것과 그 지역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베니가 분한 주인공은 그것을 모른 척 해야 한다는 겁니다.


공습이 있을 줄 알고 막게 되면, 암호가 뚫렸다는 걸 안 나치가 암호 체계를 바꿀테고,

그러면 이년 넘게 암호 체계를 풀려한 노력이 허탕이 되니까요.



그래서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몇 년 간의 전쟁에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

를 정하는 무거운 책무를 지게 됩니다.



암호 내용을 알지만 자기들이 아는 걸 나치가 알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했던 거지요.


목적은 이 전쟁을 승리로 끝내는 거니까요.




문제는, 처음 알게 된 공습 지역에- 암호를 푼 사람들 중 한명의 형이 있었다는 겁니다.


베니는 그걸 알려선 안 된답니다. 그러면 그의 형은 죽죠.

그는 울부짖습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하지만 결국 형은 죽게 되고, 동료의 베니에 대한 증오는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그의 감정은 이해할만하지 않습니까?

당장 형이 죽게 됐는데 전쟁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하지만 베니가 공적 태도를 유지한 덕분에 전쟁이 하루라도 일찍 끝났으며,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즉 공적 시스템이란 건 최악을 막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불완전함이란 것입니다.


사적 복수는 당장의 시원하고 그럴듯한 해결을 찾는 불완전함이고요.



사적 복수는 공적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옵니다.




둘 중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옳은 것이냐는 자명하지만, 개인의 감정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렇기에 세상엔 공적 사명이 투철한 인간들의 인간적 이해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공적 사명이 투철해서 법대로, 절차대로, 라고 하는 사람에게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고민이 없다면

공적 권력이란 게 결국 기계적 처리에 불과할테니까요.



동료의 증오를 받아내고 그의 멸시와 복수를 묵묵히 견디고.

그들 덕분에 전쟁이 승리로 끝났지만 정부의 지시대로 공로를 발설하면 안되는,


아마 세상 누구와 견주어도 어렵다할만한 책무를 맡은 베니가 분한 주인공을 통해

공적 시스템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엿보고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사족.



베니가 맡은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 뛰어난 수학자였는데 동성애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 법정에 고발당하고 화학적 거세란 형을 받아 약을 투여받았다고..


그 일로 자살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자기들을 전쟁이란 참혹에서 구해준 사람을 이렇게 참혹하게 죽였으니,

당장 눈에 거슬린다고 함부로 대했다간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겠구나...


세상 사 눈에 보이는 게 다도 아니고 끝까지 진짜 은인이 누구인지 모를 수도 있으니

그저 만사 조심하는게 최선이다.. 싶었습니다.



증오는 이해할만한 감정이지만

증오가 맹목을 부른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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